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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Nov 10. 2016

< 이등병의 날 -Part 6->

- 아버지의 자존심 -

아버지와 내가 사열대 앞에 도착했을 즈음, 상대편도 거의 동시에 도착을 했다.

사회자는 우리 두 팀이 수고했음을 알리며 관중들에게 박수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한동안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힐끗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각색의 머리핀들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아버지의 머리는 엉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곱슬기가 있는 아버지의 짧은 머리카락에 모양도 색깔도 각각인 머리핀들이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머리를 빽빽이 채운 나비 모양의 핀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움을 느끼게 했다.


마치 시골 장터 엿장수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머리 모양새를 아버지는 하고 계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전혀 우습지 않았다.

오히려 목울대가 메이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버지는 언제나 강한 분이셨다.

특히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더욱 그랬다.

공안 계열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일수도 있겠으나 몸도 마음도 절대로 굽히지 않는 슈퍼 히어로, 그것이 나에겐 아버지였다.


간혹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각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나의 아버지를 이렇게 소개하곤 했다.

‘시베리아 호랑이를 맨 손으로 때려잡고, 철근을 떡볶이처럼 씹어 드시며, 달리는 마을버스 2-1번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시는 분’

한 때 유행했던 개그맨의 유행어에 빗댄 나의 표현에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만나본 나의 친구들은 그 말에 웃으면서도 수긍했었다.

그만큼 아버지는 강한 분이셨다.


외적 강함만큼이나 아버지는 내적 자존심 또한 강한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들려주신 인생 조언 중 하나는

“사람이 진짜로 거지가 되는 순간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존심을 팔 때다”였다.

그만큼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건 자존심을 지키며 사셨고, 나 또한 그렇게 살길 바라셨다.


그런 아버지가 광대 같은 모습으로 내 옆을 지키고 계셨다.

누구보다 강하고 자존심을 목숨처럼 생각하시던 분이 아들의 휴가를 위해 우스꽝스런 광대 같은 모습으로 서 계셨다.

검은 무쇠보다 단단할 것 같았던 아버지의 강함은 ‘나’라는 존재를 위해선 하얀 두부처럼 한 없이 약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듯했다.

그렇기에 여러 사람 앞에서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에도 저렇듯 열심히 신듯 했다.


“아... 그런데 이쪽 아버님의 머리가......”

사회자가 아버지의 머리 모양새를 가리키며 웃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치기 시작했다.

‘아버지......’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없었다.

잠깐이나마 휴가증에 욕심을 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화가 났다.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커질수록 눈앞이 더욱 흐려져 눈물을 참기 힘들어졌다.


‘제발, 그만... 그만... 그만......’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아버지를 향한 ‘조롱’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지켜보는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대대장이 앞이라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아버지. 저 휴가증 같은 거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그 자릴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대대장이란 사람은 한 이등병에게 ‘절대적’인 사람이었고(적어도 군이라는 조직 내에선), 무엇보다 내 자신이 그럴만한 배짱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내내 흔들림 없이 진지하셨다.

‘너만 밖으로 보낼 수 있다면야, 이런 것들 쯤이야!’

마치 아버지의 마음의 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럼 미션을 얼마만큼 잘 수행했는지 그 결과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사회자가 진행을 이어갔다.

“우선 모자를 가져온 팀부터 얼마나 미션을 잘 수행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상대편 이등병 쪽으로 다가가 그의 아버님이 쓰고 있던 모자의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세는 사회자도 모자를 건네는 이등병과 아버님도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집중하며 한 목소리로 같이 숫자를 세어갔다.

하지만 겨우겨우 눈물을 참고 있던 나는 어서 이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수록 빌어먹을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어느덧 숫자는 ‘스물’을 향하고 있었다.

얼마나 그들이 쉽게 모자를 얻었는지를 보았기에 그들의 미션 성공은 당연한 듯 보였다.     

“열여덟... 열아홉... 열아홉...... 아......”

당연히 스물을 채울 것 같았던 숫자가 열아홉에서 멈췄고, 사회자는 자신의 일인 양 짧은 탄식을 섞었다.

“아... 안타깝습니다! 열아홉 개! 한 개가 부족합니다!”

‘한 개가 부족하다고?’

미션 실패란 말에 나도 어리둥절했지만, 그들 또한 어이가 없었는지 상대편 이등병과 아버님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얼핏 보기로 사열대로 뛰어오는 과정에서 뭔가 하나를 떨어뜨리는 것 같더니, 그것이 모자였던 듯했다.


분위기가 묘하게 우리 쪽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승리를 확신하셨는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자신감이 가득 차 계셨다.

자신의 모습이 지금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지도 잊은 체 ‘아빠만 믿어!’라고 말하고 계시는 듯했다.

‘그래! 아들 휴가 보내려고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슬픔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상대편에게 미션 실패를 선언한 사회자가 우리에게 왔다.

“머리 모양이 아방가르드한 아버님이십니다.”

또다시 사회자와 관객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만 좀 하라고 이 자식아!’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부르르 쥐어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사회자는 진행을 이어갔다.

“그럼 이쪽 이등병 팀들은 미션을 잘 수행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세어보고 말 것도 없었다.

머리핀의 개수는 스무 개를 훨씬 넘겼다.


“이 팀은 목표를 초과 달성했습니다! 미션 성공입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상대편 이등병과 아버님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셨다.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머리핀이 떠난 아버지의 곱슬기 있는 짧은 머리카락은 흡사 가위를 처음 잡아본 미용사가 술 취해서 잘라놓은 머리 마냥 들쑥날쑥했다.

차라리 머리핀들이 꽂혀 있을 때가 더 나은 듯했다.

“아버지. 머리 정돈하셔야겠어요.”

사회자 놈이 또 놀릴까 싶어 나지막이 아버지께 말했다.

“괜찮다. 괜찮어.”

손가락으로 머리빗을 만들어 대충 쓸어 넘기시던 아버지는 무심하게 내뱉으셨다.


나는 조심히 아버지의 삐져나온 옆머리를 손으로 가라앉혔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셨다.

“아버지......”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불렀다. 그리고 목구멍까지 슬픔이 차올랐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셨던 걸까?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보며 빙그레 웃음을 보이셨다.

그리고 말하셨다.

“괜찮다. 괜찮어.”


그 괜찮다는 말이 그렇게 아프게 들릴 수가 없었다.




                                                  - Part 7(마지막 편)에서 계속 -


< • 군에서의 제 개인적인 경험을 쓴 글일 뿐, 군이나 군 문화 전체를 비방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국군 장병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사진 : 네이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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