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자존심 -
아버지와 나의 시간을 무시하듯 사회자가 진행을 이어갔다.
“그럼 대대장님의 말씀을 듣고 휴가증을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이뤄진 게임들을 보더라도 매 게임마다 대대장의 짧은 연설을 듣고 휴가증을 받는 게 수순인 듯했다.
사회자가 의자에 앉아있던 대대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대대장은 거만하게 의자에 기대앉아 사열대 아래에 있는 두 아버지와 두 이등병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굵고 낮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런데 오늘, 이등병의 날에 오신 가족분들의 소감을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쪽 아버님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아버님, 오늘 행사에 참여하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대대장의 돌발 질문이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혀 당황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행사 진행을 돕는 사병이 건넨 마이클을 잡으시고는 차분히 이야기하셨다.
“오늘 같은 뜻깊은 날을 갖게 해주신 대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가 대대장을 바로 보며 말하셨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대대장은 의자에 앉은 체로 내려다보며 듣고 있었다.
“아들 군대 보낸 부모 마음이야 다 같을 거라고 봅니다.
잠을 자도 자는 것이 아니고, 밥을 먹어도 먹는 게 아닙니다.
특히나 군대에 막 보내 놓은 이등병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장내가 죽은 듯 조용해졌다.
군의 최 말단 계급인 이등병을 둔 부모들이었기에 함께 공감한 ‘무언의 동의’인 듯했다.
“그런 부모들의 마음까지 헤아려 이런 행사까지 마련하신 대대장님이시니 이등병들을 포함한 전 장병들의 내무생활에 대해서도 살뜰히 신경 써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부디 먼 곳에서 아들 보내 놓은 부모들이 마음 편할 수 있게, 여기 있는 아들들을 대대장님의 아들들처럼 여기고 잘 보살펴 주십시오.”
아무래도 구타당하고 있는 나에 대해 돌려서 말하신 듯했다.
아마 ‘이런 하루 보여주기 식 행사할 바에 이등병들이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눈 크게 뜨고 잘 살펴라!’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듯했다.
그래서 말하시는 내내 대대장을 노려보듯 똑바로 쳐다보신 듯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 행사에 참석한 부모님들의 마음과 같았던 걸까? 아니면 아버지의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져서였을까?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그 어느 때보다 큰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그 박수 소리에 사회자는 약간 당황하는 듯했지만 대대장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저 박수 소리가 잦아들길 덤덤히 기다릴 뿐이었다.
장내가 가라앉자 대대장이 말했다.
“아버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버님을 비롯한 여기 오신 모든 부모님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부대는 장병들의 내무생활 개선에 항상 신경 쓰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진심 어린 말에 대한 답변은 고작 판에 박힌 행정적인 말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다만 시종일관 거만하게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는 저 사람에게서 ‘휴가증’만 받아 빨리 부대 밖으로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어차피 경기 결과는 아버지와 내가 이겼으니까......
“자... 그럼, 휴가증을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고 고대하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대대장이 잠깐 뜸을 들였다.
“그런데......”
그 후에 이어진 대대장의 말에 나도 아버지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데...... 오늘 모자를 쓰고 오신 분들이 적었던 반면, 상대적으로 여성분들이 많아 머리핀을 모으는 일은 쉬웠던 관계로 휴가증은 게임의 결과와 상관없이 저 쪽 팀에게 드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너무 황당하니 화도 나질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멍하니 얼이 빠져 쳐다볼 뿐이었다.
당황스럽기는 상대편 이등병과 그의 아버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 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다 우리 쪽을 건너보길 반복했다.
“이등병은 대대장님 앞으로!”
사회자의 명령에 정신을 차린 상대편 이등병이 단상 위로 뛰어올랐다.
대대장은 전생에 의자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휴가증을 건네는 그 순간까지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거만한 손에서 휴가증을 건네받은 이등병은 날아갈 듯 자신의 아버지에게 뛰어갔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아닌데......’
정말 이렇게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상황을 바르게 고칠 방법이 없었다.
부당하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대대장은 제왕이었다.
부대 안에서 우리는 제왕의 말에 절대복종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복종의 룰’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나와바리 내에선 아버지도 예외일 순 없었다.
아들이 머물 이곳의 룰을 따진다고 해서 나에게 이로울게 하나도 없을 거란 걸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다.
게임은 그렇게 아무런 소득 없이 허망하게 끝이 났다.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에게 돌아갔고 어머니는 풀 죽은 나의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복종의 룰이 주는 무언의 압박감을 어머니도 느끼셨는지 더 다정히 내 손을 쓸어내려주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살폈다.
그리고 아주 조심히 서로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얼마 후 아버지와 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머리핀을 각자의 주인에게 돌려주며 감사하단 인사를 드렸다.
특히 큰 조력자 역할을 해준 나비 핀을 무더기로 꽂았던 아가씨에겐 그 고마움이 더욱 컸다.
“많이 아쉽겠어요.”
그녀에게서 빌린 머리핀을 건네자 그녀가 말했다.
“아닙니다. 덕분에 머리핀 잘 썼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래도 게임에서 이기셨는데... 좀 억울하시겠어요.”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네... 그럼 오늘 좋은 시간 보내세요. 앞으로 힘내시구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고, 나의 일에 같이 슬퍼해주고 위로해주는 감정의 대화를 얼마 만에 해봤던 것이었을까.
그 아가씨와 헤어져 뒤돌아서는 그 순간, 군대에선 접하지 못했던 사람과 사람과의 따뜻한 대화를 나눔에 눈앞이 흐려졌다.
단지 휴가증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군대에서 보낸 지난 시간들 속에서 참았던 감정들과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한 흐린 감정들이 한꺼번에 솟구쳐 올랐다.
그때 나는 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감정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철조망 밖 강원도의 산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산들 사이로 난 긴 도로는 명필가의 붓끝에서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만들어진 작품 같았고, 산맥을 향해 휘달리던 석양이 만들어낸 노을은 낮달을 바알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런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눌러온 설움이 복받쳤다.
‘아버지......’
자꾸만 휴가증 때문에 애쓰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서글퍼졌다.
‘내가 뭐라고......’
정말 나라는 게 뭐라고 그렇게 애를 쓰셨는지 안타깝고 죄송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커질수록 머리핀으로 엉망이 됐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웠다.
츄리닝 같은 편한 옷으로 밖에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아시고, 문 밖으로 한 발짝만 나서실 때에도 옷매무새에 신경 쓰시는 분이 아버지셨다.
누구에게 지는 걸 싫어하시고, 누구보다 자존심 강하신 분이 아버지셨다.
그렇게 단정하고 근엄하며 강한 분이 아들이란 존재 앞에선 그 신념과도 같았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으셨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것이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눈앞까지 왔다 사라져 버린 휴가증의 ‘불운’도 나 때문이 것 같았다.
부대를 에워싸고 있던 철조망에 기대앉아 고개를 묻었다.
자책의 물방울들은 메마른 흙바닥에 그대로 떨어졌고, 아직은 따가웠던 햇살은 내 뒷목덜미를 따끔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달력 종이만한 감정들을 접고 또 접어 그것들이 껌 종이만 해졌을 때, 부모님께로 돌아갔다.
행사는 거의 막바지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행사가 끝났음을 사회자가 알렸고, 대대장의 폐회사로 행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고참 녀석에게 맞아 팅팅 부은 볼로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휴가증을 얻어 보려 진땀 빼며 뛰어다녔다가 부당한 결과만 떠안아야 했던 그 ‘이등병의 날’이 끝이 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예상보다 많은 수의 부모님들이 와주시고 호응해 주신 것에 기분 좋아진 대대장이 전 이등병들에게 외박증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비록 다음날이면 부대에 복귀해야 했지만 먼 길 와주신 부모님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다행이었다.
간단한 외박 신고를 마치고 아버지의 차를 타고 부대 밖으로 나왔다.
때는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이었다.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밥을 먹는 내내 분위기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날아가버린 휴가증에 속이 상하셨을 것이고,
어머니는 내 부은 볼을 보며 안쓰러워하셨고,
나는 그런 부모님 뵙기가 힘들었다.
그저 “많이 먹어라”, “언제 또 먹것냐. 부대 들어가기 전에 먹고 싶은 거 있음 다 시켜라”라는 말씀과 내 숟가락에 얹어주시는 반찬들이 그분들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자 아버지는 소주 대여섯 병과 안주거리를 사 오셨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샀냐는 아버지의 주량을 고려한 어머니의 핀잔이 있을 법도 하건만 그날만큼은 어머니도 아버지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위수지역(衛戍地域 : 여기서는 외출·외박 시 이동 가능 지역 범위) 문제로 부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잡자마자 아버지는 소주를 꺼내 드셨다.
속이 타니 그 갈증을 술로 채우시는 듯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그 소주를 나눠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아버지께선 이것저것 나에게 물으셨다.
밥은 잘 나오는지, 내무반 생활은 할 만한지, 훈련은 힘들지 않은지......
나는 모든 질문에 ‘괜찮다’는 대답만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내 옆에 앉아 부은 내 볼을 쓰다듬으며 한숨만 쉬셨다.
그 무거워 질대로 무거워진 공기에 압사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그래. 너무 멀리 가진 말고...”
숙소 밖으로 나오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공중전화부스였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뚜~~~’
딱히 전화할 곳은 없었다.
하지만 맘 같아선 아무 전화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받는 사람에게 마음속 말들을 질러대고 싶었다.
‘대한민국 군대 X 같다’고,
‘오늘 우리 아부지가 아들 휴가증 받아내려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내 감정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들을 말로 쏟아내고 싶었다.
‘뚜! 뚜! 뚜! 뚜!’
하지만 내가 그러지 못할 거란 걸 알아차린 전화기는 통화대기음을 성나게 바꾸며 수화기를 내려놓길 강요했다.
결국 힘 없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숙소 앞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친 허파 속에서 걸러진 담배 연기가 서늘한 밤공기에 섞여 부옇게 사라져 갔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나오셨다.
“여기 있었냐.”
“네.”
아버지는 내 옆에 앉아 내 어깨에 손을 올리시곤 다독여 주셨다.
“많이 힘들지?”
“아닙니다.”
“그런데 휴가증은 좀 아쉽다. 그치? 원래 그거시 우리 것인디......”
못내 받지 못한 휴가증이 아쉬우신 듯했다.
“아닙니다. 곧 백일 휴가도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래. 곧 백일 휴가도 이쓴께 좀 서운해도 잊어버리자.”
그 후 얼마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다독여 주셨다.
그리고는 어렵게 입을 여셨다.
“너 그렇게 구타당하는 것이 혹시 전라도라 그런다냐?”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 아시는 듯했다.
“하......”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셨다.
아버지의 속상함이 그 한숨 속에 섞여 나오는 듯했다.
“아들아!”
아버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하셨다.
“힘내라! 그리고 기죽지 말고 항상 당당하게 살아라!”
내 손을 강하게 잡는 아버지의 손에서 그렇게 살길 바라는 아버지의 의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을 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셨다.
“아버지......”
“왜? 할 말 있냐?”
“저... 아버지... 죄송해요.”
“응? 뭐가?”
“...... 이것저것 다요......”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다만 고개 숙인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뿐이었다.
“담배라도 한 대 더 태우고 들어오거라.”
“네......”
아버지가 들어가신 후 담배에 불을 붙여 길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길게 내뿜었다.
가을을 이제 막 맞이하는 강원도의 서늘한 밤공기가 내 이마와 뺨에 부딪치고 있었고,
투명한 밤하늘엔 차가운 별들이 어지럽게 떠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내 젊은 날의 한 조각의 가을은 지나가고 있었다.
- < 끝 > -
< • 군에서의 제 개인적인 경험을 쓴 글일 뿐, 군이나 군 문화 전체를 비방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국군 장병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사진 : 네이버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