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보다 더 동화 같았던 어느 어린 시절 -
198X년 9월인가 10월 어느께......
그때 우리 가족은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손불면이란 곳에서 살았다.
물 맑고 공기 좋던 마을 앞 개울엔 빨래터가 있었고, 그곳은 아주머니들이 온갖 빨랫감을 가지고 나와 시어머니와 남편 흉을 보며 스스로 힐링(?)을 하는 곳이었다.
“쉬~~~...... 쉬~~~......”
오줌 마려운 어린아이들의 소변을 재촉하는 듯 한, 뜻 모를 소리를 내며 손빨래를 하시던 아주머니가 계신가 하면,
“퍽! 퍽! 퍽! 퍼벅!”
전 날, 남편과의 불화를 빨래방망이로 푸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렀고 개구리며 송사리, 붕어와 메기가 사는 그런 개울이 있었다.
개울 건너엔 초가집도 한 채 있었다.
그 집엔 누가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이란 바람이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휘몰아치고난 한참 후인 그 당시에 초가지붕을 얹은 집이 있을 정도로 그곳은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아버지의 발령 때문에 전남 여수에서 손불이란 곳으로 이사 간 우리 가족은 주인집의 사랑채 같은 집에서 세 들어 살았었다.
돈이 무엇이고, 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의 의미를 모르던 국민학교 2학년 시절.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어도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부슬비가 오늘처럼 내리던 198X년 초가을 밤.
집에 정전이 생겼다.
전력 상황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던 그때는 정전이 자주 일어났었다.
정전이 생겨도 두꺼비 집에 손을 못 댔던 어머니는 숙직하느라 안 계신 아버지를 기다리며 촛불로 어둠을 밝히셨다.
촛불 하나로 밝혀진 어두침침한 방안에서 어머니를 가운데 두고 나와 여동생은 어머니 품 안의 온기로 어둠이 주는 두려움을 잊곤 했다. 아니 어머니의 따스한 체취로 그 어둠을 사뭇 즐기기도 했었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일렁이는 촛불은 사위의 그림자들을 무서운 괴물과 도깨비로 만들었었고, 동생은 그 두려움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체 숨죽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겁먹지 말라며 동생의 손을 잡아주었으나 그것은 내가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도 두려웠기에 내 옆에 누군가 같이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서였다.
나와 동생이 맞잡은 두 손이 긴장감에 흥건히 땀에 젖었을 때, 어머니께서 양손을 조심히 모으신 체 들어오셨다.
“얘들아... 일어나서 이거 한번 봐볼래?”
두려움에 절어 맞잡은 두 손을 체 놓지 못한 나와 동생은 이불속에서 조심히 나와 어머니의 손을 주목했다.
우리 앞에 살그머니 앉으신 어머니는 곧 부화할 계란을 쥔 듯, 살포시 겹쳐 잡은 두 손을 우리 앞에 내미셨다.
“잘 봐... 놀라지 말고...”
어머니의 양손이 봉인에서 해제되자 그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작은 불빛 하나가 떠오르며 공중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이~~~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동생과 나는 그 춤추는 신비한 불빛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어머니는 그런 우리를 사랑스럽고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 불빛은 촛불이 주는 무서움과는 다른 것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심연으로부터 행복감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개똥벌레라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봤었다.
연탄불을 갈러갔던 어머니가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잡아오신 반딧불이......
그 녀석은 지치도 않는지 한참 동안이나 방안을 이리저리 천천히 날아다녔다.
그 놀랍도록 아름답던 불빛.
지금에서야 야광색이니 형광색이니 하며 대체할 표현의 단어라도 있겠지만 ‘야광’이라고 하면 손목시계의 시분 침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때는 그 생경한 불빛을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었다.
느리지만 결코 방정맞지 않은......
그 녀석의 비행은
잠자리처럼 교만하지도,
나비처럼 교태스럽지도,
메뚜기나 방아깨비처럼 촐싹거리지도 않는 우아한 것이었다.
어린 나와 동생을 배려라도 하듯 그 반딧불이는 천천히 어둠 속을 날갯짓하며 아름다운 불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은 화가의 붓끝처럼 어둠이란 검은 도화지 위에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엄마, 우리 이거 기르자!”
“그래! 이거 집에서 길러 엄마!”
그 신비한 빛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내 동생도 했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어머니를 졸랐다.
그런 우리를 안타깝고 근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라고 말씀하셨고, 그 순간 나는 엄마와 떨어져 이 어두운 공간에 있어야 하는 아기 반딧불이가 불쌍해졌다.
“엄마! 빨리 보내주자!”
“그래 엄마, 아가가 엄마한테 가고 싶나 봐”
엄마와 떨어졌다는 이야기에 나와 내 동생은 마치 우리가 엄마와 떨어진 양, 걱정하고 슬퍼했었다.
“그래, 엄마 반딧불이랑 같이 아침이슬 먹으려면 빨리 살려줘야겠다. 그치?”
그 황홀한 불빛이 다시 어머니의 양손에 붙들렸고, 방안엔 다시 촛불의 서늘한 흔들림만이 남았다.
“같이 나갈까?”
양손이 봉인(?)된 어머니를 대신해 격자무늬에 창호지 발라진 방 문을 내가 열었다.
비는 그사이 그쳐 있었고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 듯 촘촘히 박혀 있었다.
모 소설가가 메밀밭을 표현한 것을 빌리자면 검은 장막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한, 그런 그림 같은 밤하늘이었다.
“자...... 잘 가라고 인사하자!”
“잘 가. 반딧불아~~~”
“잘 가, 아가야~~~”
하지만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아름다운 빛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사라져 버린 그 경이로운 빛에 대한 우리들의 서운함을 눈치채신 어머니께서 우리를 잠자리에 뉘어 놓고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셨다.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일을 경험했던 그때......
어머니의 창작동화에 스르륵 잠이 들었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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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폿 분 바람에 떨어지던 낙엽을 보며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았던 오늘......
그 예전, 가을의 문턱에서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했던 추억 하나를 떠올려본다.
(*사진 - 네이버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