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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Nov 10. 2016

어느 가을 날의 추억

- 동화보다 더 동화 같았던 어느 어린 시절 -

198X년 9월인가 10월 어느께......

그때 우리 가족은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손불면이란 곳에서 살았다.


물 맑고 공기 좋던 마을 앞 개울엔 빨래터가 있었고, 그곳은 아주머니들이 온갖 빨랫감을 가지고 나 시어머니와 남편 흉을 보며 스스로 힐링(?)을 하는 곳이었다.


“쉬~~~...... 쉬~~~......”     

오줌 마려운 어린아이들의 소변을 재촉하는 듯 한, 뜻 모를 소리를 내며 손빨래를 하시던 아주머니가 계신가 하면,

“퍽! 퍽! 퍽! 퍼벅!”     

전 날, 남편과의 불화를 빨래방망이로 푸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렀고 개구리며 송사리, 붕어와 메기가 사는 그런 개울이 있었다.


개울 건너엔 초가집도 한 채 있었다.

그 집엔 누가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이란 바람이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휘몰아치고난 한참 후인 그 당시에 초가지붕을 얹은 집이 있을 정도로 그곳은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아버지의 발령 때문에 전남 여수에서 손불이란 곳으로 이사 간 우리 가족은 주인집의 사랑채 같은 집에서 세 들어 살았었다.

돈이 무엇이고, 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의 의미를 모르던 국민학교 2학년 시절.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어도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부슬비가 오늘처럼 내리던 198X년 초가을 밤.

집에 정전이 생겼다.


전력 상황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던 그때는 정전이 자주 일어났었다.

정전이 생겨도 두꺼비 집에 손을 못 댔던 어머니는 숙직하느라 안 계신 아버지를 기다리며 촛불로 어둠을 밝히셨다.

촛불 하나로 밝혀진 어두침침한 방안에서 어머니를 가운데 두고 나와 여동생은 어머니 품 안의 온기로 어둠이 주는 두려움을 잊곤 했다. 아니 어머니의 따스한 체취로 그 어둠을 사뭇 즐기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와 여동생만을 남겨두고 연탄불을 갈러 가신 어머니.


문틈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일렁이는 촛불은 사위의 그림자들을 무서운 괴물과 도깨비로 만들었었고, 동생은 그 두려움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체 숨죽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겁먹지 말라며 동생의 손을 잡아주었으나 그것은 내가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도 두려웠기에 내 옆에 누군가 같이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서였다.


나와 동생이 맞잡은 두 손이 긴장감에 흥건히 땀에 젖었을 때, 어머니께서 양손을 조심히 모으신 체 들어오셨다.


“얘들아... 일어나서 이거 한번 봐볼래?”

두려움에 절어 맞잡은 두 손을 체 놓지 못한 나와 동생은 이불속에서 조심히 나와 어머니의 손을 주목했다.


우리 앞에 살그머니 앉으신 어머니는 곧 부화할 계란을 쥔 듯, 살포시 겹쳐 잡은 두 손을 우리 앞에 내미셨다.

“잘 봐... 놀라지 말고...”

어머니의 양손이 봉인에서 해제되자 그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작은 불빛 하나가 떠오르며 공중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이~~~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동생과 나는 그 춤추는 신비한 불빛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어머니는 그런 우리를 사랑스럽고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 불빛은 촛불이 주는 무서움과는 다른 것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심연으로부터 행복감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엄마! 저게 뭐야?”

“반딧불이란 거야”

“반딧불이???”


흔히들 말하는 개똥벌레라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봤었다.

연탄불을 갈러갔던 어머니가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잡아오신 반딧불이......

그 녀석은 지치도 않는지 한참 동안이나 방안을 이리저리 천천히 날아다녔다.


그 놀랍도록 아름답던 불빛.

지금에서야 야광색이니 형광색이니 하며 대체할 표현의 단어라도 있겠지만 ‘야광’이라고 하면 손목시계의 시분 침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때는 그 생경한 불빛을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었다.


느리지만 결코 방정맞지 않은......


그 녀석의 비행은

잠자리처럼 교만하지도,

나비처럼 교태스럽지도,

메뚜기나 방아깨비처럼 촐싹거리지도 않는 우아한 것이었다.


어린 나와 동생을 배려라도 하듯 그 반딧불이는 천천히 어둠 속을 날갯짓하며 아름다운 불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은 화가의 붓끝처럼 어둠이란 검은 도화지 위에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엄마, 우리 이거 기르자!”

“그래! 이거 집에서 길러 엄마!”


그 신비한 빛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내 동생도 했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어머니를 졸랐다.


그런 우리를 안타깝고 근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그래. 집에서 기르면 좋겠지만, 어떡하지? 이게 아기 반딧불이인데 집에서 엄마 반딧불이가 기다린데......”

라고 말씀하셨고, 그 순간 나는 엄마와 떨어져 이 어두운 공간에 있어야 하는 아기 반딧불이가 불쌍해졌다.


“엄마! 빨리 보내주자!”

“그래 엄마, 아가가 엄마한테 가고 싶나 봐”

엄마와 떨어졌다는 이야기에 나와 내 동생은 마치 우리가 엄마와 떨어진 양, 걱정하고 슬퍼했었다.


“그래, 엄마 반딧불이랑 같이 아침이슬 먹으려면 빨리 살려줘야겠다. 그치?”

그 황홀한 불빛이 다시 어머니의 양손에 붙들렸고, 방안엔 다시 촛불의 서늘한 흔들림만이 남았다.


“같이 나갈까?”

양손이 봉인(?)된 어머니를 대신해 격자무늬에 창호지 발라진 방 문을 내가 열었다.

비는 그사이 그쳐 있었고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 듯 촘촘히 박혀 있었다.

모 소설가가 메밀밭을 표현한 것을 빌리자면 검은 장막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한, 그런 그림 같은 밤하늘이었다.


“자...... 잘 가라고 인사하자!”


“잘 가. 반딧불아~~~”

“잘 가, 아가야~~~”


어머니 손에서 떠난 반딧불이는 하늘에 떠있던 별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내며 별과 하나가 됐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소유’보다는 ‘자유로움’을 주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처음 느꼈다.


하지만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아름다운 빛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사라져 버린 그 경이로운 빛에 대한 우리들의 서운함을 눈치채신 어머니께서 우리를 잠자리에 뉘어 놓고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셨다.


“밤하늘의 별 하나가 인간 세상을 구경하려고 반딧불이가 됐는데......”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일을 경험했던 그때......

어머니의 창작동화에 스르륵 잠이 들었던 그때......

.

.

.     

살폿 분 바람에 떨어지던 낙엽을 보며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았던 오늘......

그 예전, 가을의 문턱에서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했던 추억 하나를 떠올려본다.


(*사진 - 네이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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