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근 Apr 14. 2016

< 벚꽃 엔딩 >

- 놓치며 살아가는 소중한 것들 -

자신의 화창함에만 오롯이 주목을 못 받음에 질투가 난 날씨가 비를 뿌린다.

마치 자신의 관심을 뺐어간 벚꽃들을 단 한 잎이라도 남기기 않을 듯이 빗줄기는 세차기만 하다.

그리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버텨낸 그 한 잎, 한 잎들은 내리는 빗방울에 분분히 떨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연들과 여한들을 품은 체 떨어진 꽃잎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로변 배수로로 아무렇게나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봄이 또 이렇게 가는구나......’

   

화창한 봄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하고 보내버림이 안타까웠다.

내 청춘에 남아 있을 봄의 달력 한 장을 그렇게 날려버림이 후회스러웠다.     


‘내가 앞으로 누릴 수 있는 그림 같은 봄날은 과연 며칠이나 남았을까?’     


배수로의 물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벚꽃들을 보며 추억했다.

.

.

.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대학 2학년의 봄.

교정은 바람이 실어오는 풀꽃 냄새와 신입생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났고 대기의 훈훈함은 가슴속 심연의 차가움마저 달게 녹일 듯 따뜻했다.     


태양의 치부마저도 핑크빛 로맨스로 빛낼 것 같은, 어느 봄날의 전공과목 수업시간.

전공과목 교수님 분들 중 유일한 여교수님의 수업이었던 그 시간에  우리 과 학생들은 전에 없는 전원 출석을 했다.     


출석을 일일이 부르시던 교수님께서 출석부를 덮으시며 말하셨다.

“웬일이니? 너희들이 전원 출석을 다하고?”

그러자 한 학생이 우리들의 올(ALL) 출석을 자신의 덕분 인양 큰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수업이 너무 듣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학생의 농담에 피식 웃으시던 교수님이 물으셨다.

“너희들은 놀러 안 가니?”

방학도 아니고 학기가 시작한 지 이미 한 달여 정도 지난 상태에서 놀러 안 가느냐고 묻는 교수님의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얼굴에 물음표가 한가득 이었다.

이런 우리들의 생각을 읽으시곤 교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아니,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놀러 안가?”

   

수업 시간에 놀러 안 가느냐고 물으시니 한편으론 ‘이거... 없는 약속이라도 잡아서 나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쯤, 좀 전에 전원 출석을 자신의 공 인양 큰소리로 말한 학생이 대답했다.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날씨 좋다고 밖으로만 다니면 되겠습니까?”

학생은 마치 자신이 똑 떨어지는 정답을 이야기한 것처럼 으스대고 있었다.     


교수님은 대답한 학생을 지긋이 쳐다보시다 이내 시선을 다시 우리 전체에게로 주셨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연 교수님은 그 학생의 정답(?)이 철저히 오답임을 말해주셨다.     

“너희들 지금 젊으니까 이런 날들이 많을 것 같지?”

“......”

“생각해봐. 너희들 인생에서 봄이 과연 몇 번이나 남았을지......

그리고 오늘처럼, 신이 어렵게 인간에게 허락한 날 같은 이런 완벽한 봄날을 너희들이 앞으로 몇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장난으로 시작한 출석 이야기가 자뭇 심각해지자 다들 교수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했다.

그리고 나는 교수님의 말씀에 평생 잊지 못할 의식의 꿈틀거림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공부... 중요하지.

공부해서 성적관리 잘하고 학점 잘 받는 거 중요해.

그런데 이런 화창한 날씨 속에서 친구들과 야외에 나가 시끌벅적하게 수다 떨고, 연인과 손잡고 함께 걷는 그런 추억을 만드는 것도 얼마나 소중하니?

“......”

“이런 날을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는 것으로 보내버린다면 나중에 너희들이 나이 들어 지금을 추억했을 때 뭐가 남아 있겠니?

너희들의 추억 속에 봄날이 있긴 하겠니?

친구들과의 추억이 있겠니?

연인과의 사랑이 있겠니?”   

  

모두들 말이 없었다.

그저 숨죽이고 교수님의 숨소리 하나하나에도 귀 기울이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법을 알게 되는 것 같아 온 몸에 전율이 돌았다.

    

“인생이란 건 살아가는 건데, 살아가는 중에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정답 없는 문제지를 푸는 것과 같은 거야.

저울의 양쪽에 선택지를 올려놓고 가치 있는 쪽에 저울추가 기울면 과감히 선택해!”

“......”

“오늘처럼 그림 같은 봄 날을 그저 그런 날로 여긴다면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보내는 것도 괜찮아.

하지만 정말 오늘 같은 날은 어딘가로 나가고 싶고, 이성친구가 미칠 듯이 보고 싶다면 지금 강의실을 나가도 좋아.

그리고 앞으로 그런 순간을 느낀다면 내 강의 들어오지 말고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겨!

그리고 너희들이 진심으로 그 순간을 즐겁게 보냈다면 출석한 것으로 처리해줄게!”  

   

수업에 들어오지 말고 놀러 가라니......

다들 상식을 파괴하는 교수님의 발언에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뭔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의식적 발아(發芽)를 경험했다.

교수님의 말씀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서로 뒤엉켰다를 반복하면서 온몸을 전율케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머리와 몸으로 익혀왔던 고정된 습관과 사고방식 그리고 군대에서 보낸 3년의 세월 동안 굳어졌던 내 의식들이 마치 굉음을 내며 갈라지기 시작하는 듯했다.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뭔가 내 스스로 기준을 잡고 결론을 내린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말씀들은 한동안 ‘화두(話頭)’가 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세상을 보고 세상을 대하는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과 방식.......

나는 막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전율이 일었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

.

.

내게 주어진 봄날의 시간들......

즐기지 못한 순간순간들과 후회들이 떨어져 배수로로 빨려들 듯 벚꽃잎들은 그렇게 휘돌며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진정 가치 있게 보내야 할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 버렸던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혹 저와 같은 후회를 하기 싫으시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이 좋은 날들을 무심히 보내는 분들이 계시다면 생활의 결석(?)을 각오하시고 밖으로 나가보심이 어떨까 싶다.

그래서 친구들과 연인들과 가족들과 함께 봄날의 추억 많이 쌓으셨으면 한다.

그리고 각자의 인생에 주어진 봄날들에 최대한 충실하시길 바란다.


그때 교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살면서 바로 눈 앞에 있는 것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지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