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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Apr 15. 2016

< 곰탕집 두 여인 >

- 한 공간 속, 다른 삶 -

아직 겨울의 기운을 다 이겨내지 못한 쌀쌀한 아침.


노란 구루마를 힘겹게 끌던 미화원 아저씨의 거친 숨소리는 자동차 배기음에 묻혀가고 있었고, 주차장 한구석에 좌판을 편 나물 파는 할머니는 목도리로 칭칭 감은 목을 더욱 움츠리고 있었다.     


든든한 밥 한 끼와 따뜻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그런 아침의 모습들.

그 속에서 나는 어느 곰탕집에 들어갔다.

   

TV에 소개된 적 있음을 알리는 문구와 인증사진들이 마치 훈장처럼 건물 내 외벽에 덕지덕지 붙여진 식당엔 이른 시간임에도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식당의 들어서는 입구 쪽에는 고기 국물이 넘칠 듯 끓고 있는 두 개의 큰 가마솥이 걸려있었고, 한쪽 벽면엔 가게를 다녀간 여러 연예인들과 유명인들의 싸인이 난잡하게 붙어있었다.

    

그런 곰탕집에서 두 여인의 다른 얼굴을 보았다.

  

인니(印尼)의 처자 같은 여종업원의 표정은 우울하고 습한 무채색이었다.

하지만 문전(門前)부터 성시(成市)를 이루는 식당 여주인의 미소엔 탐욕이라는 혼란하고 혼탁한 색 배합이 보였다.

   

어느 열국(熱國)에서 열대의 과일로 술을 빚고, 꽃들을 희롱했을 것 같은 그녀의 참한 손은 물에 허옇게 불을 대로 불어 있었지만, 칼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않았을 법한 여주인의 손엔 화려한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고 온갖 금붙이가 들러붙어 있었다.

   

위생모 사이로 삐져나온 이색(異色)의 그녀의 귀밑머리는 땀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더운 고향에선 입어보지도 않았을 니트의 소매는 헤지고 닳아있었다.

그에 비해 새하얀 피부의 여주인은 한껏 멋스러운 파마를 하고 있었고 봄처럼 화려하고 제비처럼 날렵한 옷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야자수 그림자처럼 검은 그녀의 얼굴은 곧 바스러질 것처럼 푸석거렸고, 짙은 화장 위로 기름기까지 도는 여주인의 얼굴은 번들거렸다.


적도의 강렬한 태양을 담았을 그녀의 큰 눈망울은 절망 속에서 살아가려는 간절함을 담고 있었지만, 매일 현금과 전표를 마주하는 여주인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특유의 유들유들함이 묻어났었다.

  

한 공간 안에서 너무나도 다른 삶의 무게들이 느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파가 듬뿍 올려진 국밥 그릇을 내온 귀밑머리 젖은 이국(異國)의 그녀가 식당 모퉁이 작은 의자에 힘겹게 걸터앉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겨우 의자 모서리에 엉덩이만 걸친 모습.

아슬아슬하게 의자에 걸린 엉덩이 면적이 이 식당에서 주어진 그녀의 쉬는 공간 전부였다.

   

밥알 넘기기가 힘들었다.

불어 터진 손을 주무르고 있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더욱 그랬다.

다가가 어떤 말을 건넬 수도, 힘내라 다독여줄 수도 없었건만, 내 마음속에서는 숱한 위로의 말들이 썼다 지워지길 반복했다.


그러다 감정의 너울댐의 느끼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려 고개를 숙인 체 밥을 떠 넘겼다.


식사를 마치고 화려한 매니큐어와 금붙이로 치장된 여주인의 손에 값을 치르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정오로 향하는 햇빛으로 대기는 따뜻해져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연한 구름이 드문드문 떠있던 그림 같은 봄날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우울한 날이었다.


물에 불은 허연 손...

젖은 귀밑머리...

위태롭게 앉아있던 모습......

  

이 모습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벚꽃들이 잔인하게 만개한 3월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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