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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근 Apr 07. 2023

진달래는......

- 할머니의 눈빛 -

 무심히도 봄이 왔다.

누구 하나 신경 쓴 이 없었건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겨울은 갔고 또 아무렇지 않게 봄은 왔다.


 봄이 왔음을 자각케 해 준 건 산책 삼아 다니는 동네 뒷산에 지천으로 핀 진달래였다.

그 여리여리한 가지 마디마디마다 핀 분홍색 꽃들과 바람에 실려오는 은은한 향이 마치 주문처럼 마지막 겨울의 기운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진달래는 보기에 연약하기 그지없는 꽃이다.

꽃나무 자체도 그리 크지도 굵지도 않거니와 꽃잎은 얇아서 따다 보면 쉬 찢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추위가 다 물러나기도 전에 먼저 꽃을 틔우는 강인함과 그로 인해 겨우내 굶었을 벌들에게 꿀을 제공하는 넉넉함을 가진 꽃이기도 하다. 또 번식력이 좋아서 이 산 저 산에 군락을 이루며 살아간다.


 잊힐만하면 들리는 소식이 철쭉과 진달래를 구분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고다.

진달래는 식용이 가능하나 철쭉은 그렇지가 않다.

외양 상으로 보면 혼돈하기 쉬운 꽃들인데, 가장 쉬운 구별법은 진달래는 꽃이 먼저 활짝 피고 잎이 생기는 반면 철쭉은 잎이 무성히 자란 후에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물론 두 꽃을 자주 접한 사람들이야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진달래와 철쭉 사이의 그 미묘한 생김과 색의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는 꽃과 잎을 피우는 시기를  보고 구분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다만 진달래도 약간의 독성이 있으므로 꽃 술은 제거하고 드셔야 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만개한 진달래 꽃들을 보고 있자니 얼마간 따가 술도 담그고 화전도 만들어 먹어볼까 싶었지만 등산로 입구에 ‘임산물 채취 시 처벌받는다’는 현수막이 떠올라 참았다.

 그 몇 송이 따는 걸로 처벌한다니 너무 한다고도 싶지만 겨우내 산짐승들 먹을 도토리 한 톨까지 깡그리 훑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또한 우리들의 과한 욕심이 부른 결과가 아닌가 싶다.


 나는 진달래를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정확히는 할머니의 눈빛.


 어린 시절 어느 날, 온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를 보며 “와! 할머니! 산에 진달래 진짜 많이 폈다.”라는 나의 말에 그윽한 눈으로 그 꽃들을 보며 할머니께선 말하셨다.

“진달래 많이 핀 곳은 사람들이 많은 죽은 곳이지......”

그때의 그 눈빛, 나는 할머니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고단했던 인생에 이젠 후회도 회한도 다 사치일 뿐이라며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했던 눈빛.

전쟁 같은 시간들을 겪어온 사람으로서 다가오는 시간들에 대한 여유로움이 담겼던 눈빛.

그리고 그 여유로움이 가져다주는 앞날에 대한 덤덤함이 묻어났던 눈빛.

하지만 그 모든 감정들의 바탕에 슬픔이란 존재가 잔잔히 흐르던 눈빛.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셨고 젊은 나이에 청상(靑孀) 돼, 두 자식은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여덟 자식들을 혼자 농사일로 다 건사하셨던 할머니.

아마 할머니는 어린 나에게는 다 말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많은 생각들을 진달래를 보며 하셨던 것 같다.


 진달래는......

할머니에게 무슨 꽃이었을까.


 진달래는......

나에게 할머니의 눈빛이다.


그 눈빛 닮은 슬픈색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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