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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Nov 15. 2024

4부 3화)도주계획

다미가 9살이 되었을 때에 여전히 남은 아이 2명은 다미와 현석이었다. 

현석은 형누나들이 모두 입양되어 양부모들 품으로 떠났다고 엄마에게 들었다. 

‘나는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난 행복한 사람이야.’ 

친구라고는 고아들 밖에 없고 지금도 그러한 현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가 없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원장님이 아빠처럼 잘해주었고 친구 중에 아빠엄마가 다 있는 아이가 없어서 그것이 부럽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순진한 소년이었다. 그런 마음의 넉넉함은 올바른 방향으로 발현하여 우월감보다는 친구들에 대한 동정심을 더 많이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일은 아니었다. 형누나들이 잘못하는 일이 있어 혼날 때에도 쓸대없이 형누나편을 울면서 들었다. 이 일로 현석은 원장에게도 혼나기도 했다. 동갑 친구인 다미 역시 수녀님들 방해하지 말라며, 수녀님은 안불쌍하냐며 비아냥대기도 했었다. 어린 현석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서럽게 울었다. 그가 그런 일로 울때마다 어미인 정아는 아들을 더 사랑스럽게 안아주었고 그 때마다 현석은 꽃을 포함해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에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일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형누나들이 자신처럼 부모가 있게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다미는 달랐다.

한 아이가 사라지기 전후 한달 정도로 수녀원의 분위기, 수녀들의 표정, 말투, 기분, 흥분정도, 대답하는 방식이 평소와 달라진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때마다 다미는 에밀레종 이야기와 아브라함의 이삭을 바치려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지고 있는거야.’

다미는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죽을 것이라는 것도 생각했다. 다미는 현석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수녀들 앞에서도 그런 생각은 추호도 안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이 되면 늘 두려워했다. 몇 시간 동안 의식없이 누워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마치 죽어있는 것과 똑같은 그 상태가 되는 것이. 그 때마다 다미는 작은 목소리로 기도를 외웠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허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9살의 다미는 전부터 보인 천재적인 머리를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한 수녀에게 스페인어를 배웠는데 한 번 들은 것은 잊지 않고 모두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천재성은 수녀들을 골치 아프게 했다. 뭘 해도 재미있어 하지 않았다. 공부는 시시하다는 식이었고 놀이는 유치하다는 식으로 표정에서 드러냈다. 몸으로 하는 운동은 처음에는 재밌어했지만 금방 또 질려했다. 

“혼자 책이나 읽을래요.” 이 말을 하루에 많게는 다섯 번도 하였는데 또 다섯 번을 넘는 날도 없었다. 나름 수녀들에 대한 배려였다. 수녀들은 세르히오에게 다미를 다루는게 편하면서도 불편하다는 말을 했고 세르히오는 그런 수녀들의 말을 귀찮아했다. 직원들은 모두 다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현석은 다미를 친누나마냥 쫓아다니고 의지했다. 다미를 불쌍해하는 사람은 서정아뿐이었다.


     


정아는 고등학교 3학년 때 7살 차이가 나는 담임선생님의 아이를 임신했다. 이 일로 그녀는 집에서 쫓겨났지만 그래도 책임을 지려는 아이의 아빠는 그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녀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고나서 적당히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남편은 이번에는 동료 교사와 바람이 났고 정아는 순수한 자신의 사랑이 배신당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혼했다. 돈도 벌지 못하는 정아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버렸던 부모였다. 용기를 내서 먼저 옛 집을 찾았지만 그녀가 알게 된 것은 떠나버린 딸의 일탈을 비관하다가 음주운전으로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의 음주운전은 그들뿐만 아니고 엉뚱하게도 젊은 변호사도 죽게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정아는 부모를 대신해 오히려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했다. 그렇게 부모 잃은 슬픔과 자책감, 주변의 손가락질에 광장 구석에서 유모차앞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한 남성이 다가와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고개 숙이고 울면서 위로하는 말을 듣기만 할 때에는 몰랐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말하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그 때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었다. 

“괜찮아요? 엄마가 우니까 아이도 울어요.” 

정아는 처음 마주하는 서양인 앞에서 대답을 못하였고 서양인은 계속 말하였다. 

“아이 아빠는요?” 이 말에 정아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더 비참하게 울었다. 

“이런. 이렇게 예쁜 아이랑 사랑스러운 아내를 슬프게하다니. 남편 분이 모질군요.” 

그 남자는 그녀 옆에 앉아 능숙하게 팔을 뻗어 그녀를 감쌌다. 정아는 고등학생 때의 버릇을 없애지 못하고 그에게 편하게 안겼고 결국 그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아는 현석과 다미와 함께 세 명이서 잤다. 처음에는 현석과 자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많을 때에는 아이들이 시기한다는 이유로 현석과 같이 자는 것이 허락되지 않다가 아이들이 사라지고 나서 허락이 되었다. 조건은 바로 다미도 같이 자는 것이였다. 정아가 가운데에, 다미는 왼쪽, 현석은 오른쪽에 누웠다. 다미와 정아는 똑바로 하늘을 보고 누웠고 현석은 몸을 돌려 정아의 품에 안겨서 누웠다. 현석은 정아의 품에서 늘 일찍 잠들었다. 그러고나면 어두운 밤에서 정아와 다미 두 여자만의 대화시간이 되었다. 정아는 이 아이도 곧 악마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와 정을 쌓고 싶지 않았다. 다행인지 모를 일이지만 다미도 그래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 그들의 정원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이모.”

“응?”

“이모는 내가 불쌍해요?”

“무슨 말이야?” 

정아는 흠칫 놀랬지만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분명 9살 아이의 혀짧은 소리임에도 예리한 칼처럼 날카로웠고 정말 그 칼이 자신을 콕콕 쑤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 다음은 현석이일걸요. 불쌍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얘가 뭐라는 거야. 다 알고 있는 거야?’ 

정아는 그녀의 심장이 떨리고 있다는 것에 또 더 긴장되었다. 게다가 다음은 현석이 차례라는 말은 자신을 감싸는 세계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아니야. 세르히오가 약속했어. 그런 일은 없어.’




“하지만 나 다음 바로 현석이인 것은 아니에요.”

“다미야. 무슨 만화라도 본거야? 이모는 무슨 말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모를 먼저 죽인 다음 현석이 차례일거에요.”

“뭐? 뭐라고?”

“당연하죠. 아이 엄마가 울고불고 난리칠텐데 아이 엄마부터 없애버리지 않겠어요?”

“저...정말?” 정아는 어느새 다미의 편이 되어있었다.

“여기서 탈출해야해요.”

“어떻게?” 

정아는 이번엔 세르히오의 편이 되었다. 다정한 사람이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머리 속에서 잠깐 지워도 금방 다시 살아났다. 그런 그를 상대로 탈출한다는 것은 명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고 차라리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게 더 희망적일 정도로 느껴졌다.


“현석이 공개 수업날에 저도 데려간다고 말하세요.”

“원장도 같이 갈거야. 원장은 안가더라도 적어도 나만 보내진 않아.”

“공개 수업이 금요일이잖아요. 금요일에 원장님은 하루 종일 안들어와요.”

공개수업까지 한 달 남아 금요일인지 신경도 안쓰고 있었던데다 세르히오가 금요일날 종일 자리를 비운다는 것도 예전에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지만 어차피 밤 아니면 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정아는 이 아이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는지 놀라울 따름이였다.

“그래도 수녀님 한 명이 따라올거야.”

“제가 아프다고 병원에 가자고 할거에요. 병원 안에서 따돌릴게요.”

도저히 9살이 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아는 야무지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아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공포는 먼저 자리를 차지한 것이 후발 주자보다 더 강한 법이었다.

“이모는 현석이랑 택시를 타서 병원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으세요. 제가 택시를 타면 그때에 도망가면 돼요.”

“어디로 가?”

“경찰서로 가야죠.”

“가서?”

“말해요. 여기에서 있었던 일 전부 다.”

‘내가 알고 있다고 아는거야, 네가?’ 한 번도 머리 속에서조차 일어나지 않았던, 너무 무서운 일이 이야기되고 있었다. 그 괴물같은 스페인 놈을 상대로 이런 대담한 짓이 가능한가 싶었다. 








“잘 될거에요.” 

다미는 정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아도 그러길 원했고 그렇게 될거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다미가 애처로우면서도 귀하게 여겨졌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모.”

“응?”

“우리 여기서 나가게 되면...” 다미는 머뭇거렸다.

“말해봐.”

“엄마가 되어주세요.”

다미는 아담의 염려대로 갓난 아이때 헤어진 아빠에 대한 기억을 잃었고 정아는 어렴풋한 아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응.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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