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만 조금은 바람이 부는 선선한 여름날에
넓은 마당에 앉아 잔잔히 흔들리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한 손은 바닥에 손을 짚고
남은 한 손은 목 뒤 옷깃 아래로 효자손을 넣어
위아래로 여유롭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
그것이 나의 효자손에 대한 이미지였다.
나에게는 그리 큰 의미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 항상 있었지만
어느 순간엔가 사라졌고,
있었던 때에도 그리 큰 추억과 사용의 기억은 없는,
견학 가면 나무로 만든 물건들을 파는 공방에서
항상 발견할 수 있었던 물건.
딱 그 정도.
그냥 무심히. 간지러운 곳을 긁으려고 있나 보다 싶은 그런 것이었다. 처음에 이 물건을 만든 사람의 유레카! 가 나에게는 그리 큰 감명을 주지 않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랬는데. “효자손” 이 물건에 대해 새로운 감정을 가지게 된 계기가 생겼다.
몸이 안 좋고 난 뒤 거의 세 달 가까이 걷지 못하고 지냈다. 그중 한 달 반은 앉지도 못하고 거의 누운 상태에서 모든 일들을 했다. 오래 누워있다 앉을 수 있게 되었을 때, 한 번씩 손이 닿지 않는 몸 구석구석이 간지러울 때가 있었다. 흉부 수술 후라 상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더 그랬다.
그중 한 날, 잠시 보호자로 계셨던 엄마가 간지러운 부분을 간지러 주셨었다. 그 순간의 기분과 감정을 잊지 못한다. 그때 딱 느꼈다. 아 이래서 효자손이 필요한 거였구나.
부분의 간지러움이 해소되었을 뿐인데 몸 전체가 상쾌해지고 혈액순환까지 되는 기분이었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효자손. 이름을 참 잘 지었다. 나의 가렵고 답답한 부분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효자!
어떤 이에게는 존재의 이유를 고민도 하지 않는 스쳐가는 물건이겠지만(이전의 나처럼), 효자손 없이는 가려운 부분을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사람도 있다.
처음에 언급했던 효자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모습 속에서 효자손이 좀 더 반짝거려 보인다고나 할까?
그 이후에 효자손을 사거나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몸이 간지러울 때 뿐 아니라 마음속이 답답하고 간지러운 일이 생길 때면 효자손이 생각난다. 나쁘고 힘든 것들을 다 시원하게 쏙쏙 긁어내 주었으면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