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식 머더구스 해석

소설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

by 담작가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
줄거리
"난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1년 전 죽은 오빠 고이치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동생 나오코는 오빠가 죽은 별장에 찾아간다.

경찰은 자살로 종결을 냈지만, 오빠는 분명 살인 당했다!


머더구스 해석사건
숨은 의미 찾기

소설 속 인물들은 '머더구스'를 기준으로 삼고 해석 겸 추리를 해나간다.

머더구스란 영국의 고전동화 격이다. 그러나 이야기에 집중하고 권선징악 등의 교훈을 주는 우리나라 전래동화나 이솝우화와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운율에 맞춘 시나 동요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된다. 흔히 나라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특색있는 동요나 동화가 있듯이 영국에는 머더구스가 있는 셈이다.


소설의 배경은 산 속에 홀로 고립된 산장이다. 이 산장은 머더구스를 컨셉으로 잡고 만들어졌다. 방 이름이나, 방마다 걸려있는 노랫말이 그 예이다. 그냥 이 산장을 한 번 둘러보기만 해도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깊은 산 속의 산장, 의미심장한 방 이름과 노래들. 이렇듯 배경만 봐도 추리 소설의 배경으로는 적격이다.

그러나 그 뿐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소설의 대부분의 내용이 머더구스를 해석하는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장편 추리소설보다는 암호를 푸는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사실 그렇게 말하기에는 오랜 시간 누적된 살인사건을 차례로 풀어나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해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아쉽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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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복잡한 인물관계에서 나오는 갈등, 트릭의 해소과정이 너무 간단하게 서술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인간 내면의 심리와 서로 다른 입장에서의 갈등 구조를 가장 즐기는 편이다. 그런 심리가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자연스럽게 사건으로 빵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갈등 관계가 너무 쉽게 풀려서 나에게는 재밌는 소설이 아니었던 듯.

살인 사건의 이유가 너무 충동적이고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나 할까. 사실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는 살인의 동기가 드러나는 과정에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쾌감이 적다.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 같이, 주인공 혼자 알고 있다가 마지막에 모두 앞에서 '짠!' 해버리는 느낌이 너무 강하달까. 그런 건 재미있고 통쾌하긴 하지만, 추리소설만이 주는 고구마의 목맥힘이 다소 약하다. 앞부분에서 내내 막혀있다가 뻥 뚫릴 때의 쾌감이 쩌는데...

오히려 나는 에필로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걸 짤막하게만 내보낸 건 아무래도 반전을 위해서겠지. 하지만 최근의 히가시노 게이고였다면 이 이야기를 본편으로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초기작이라서 그런지 상상력을 풀어내는데 집중한 듯 하다.

오히려 머더구스를 이과적 감성으로 해석(맞춤표와 쉼표를 가지고 다른 노래를 하나로 합친다든지, 그렇게 해서 나온 구절을 대입한다든지, 모든 게 같은 형식인데 하나만 반대로 쓰여있다는 점에 착안해 동사를 반대형으로 바꿔버린다든지)한 것은 재미있었다. 히가시노 만의 감각이 가득 묻어있다는 느낌.


오히려 순수하게 추리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리를 해가는 과정이 약간 탐정소설처럼 전개되기 때문에, 가볍게 읽기에도 좋다. 다만 머더구스를 독자가 해석하기보다는 소설에서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연쇄적인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이 꽤나 고전적이다. 예전의 말실수나 어폐를 떠올리고 잡아내는. 지킬 건 다 지키면서 자신만의 추리기법을 얹은 퓨전 요리 같은 느낌이다.

재미 없지는 않은데, 나에게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을 소설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재밌었다로 종결
감상평

숨은 의미 찾기가 아니라, 거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분석한 꼴... 그래도 늘 히가시노 작품은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고 꼼꼼히 뜯어보게 된다. 덕후인 것도 있지만, 정말 이 작가가 정성들여 썼다는 걸 매번 느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이런 초기작품들은 작품 내면의 인물 위주가 아니라 구성이나 구조를 자세히 보게 된다. 뭐, 배울 겸 보는 것도 있으니까.

머더구스를 해석하는대로 끌려가긴 하는데, 문제는 기억에 잘 안 남는다는 점? 차라리 한 개의 머더구스에 초점을 맞춰서 사건과 연결짓고 풀어나갔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머더구스를 다 건드리겠다는 야심이 느껴진달까. 욕심을 부렸는데도 이 정도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건 엄청 대단하지만...

여러모로 양면성이 있는 소설. 그래도 재미있냐고 물으면 재미는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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