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힘껏 운명에서 벗어나자

넷플릭스 [내 몸이 사라졌다]

by 담작가


내 몸이 사라졌다
줄거리

음침한 해부학실을 탈출한 의문의 손.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거리를 누비며 어딜 향하는 걸까.

손의 여정과는 상관없는 듯, 펼쳐지는 나우펠의 이야기.

그에게는, 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있는 힘껏 운명에서 벗어나자
숨은 의미 찾기

잘린 손은 나우펠의 어두운 과거이다. 아픈 기억들은 모두 이 손을 거쳐갔다. 영화에서 계속 손등 위의 점을 클로즈업해 강조하듯이.

이 손은 계속해서 나우펠을 찾아간다. 어떻게 보면 끈질기다고 할 수도 있겠다. 몇 번이나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굳이굳이 나우펠을 찾아오는 걸 보니 말이다. 손이 걸어온 과정은 나우펠이 과거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암시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얹혀 사는 아이에게 뭐 그리 밝고 명랑한 미래가 있겠느냐만은.

손은 쥐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쓰레기 더미에서 가까스로 탈출하기도 하고, 비를 피하다가 개미떼에게 휩싸이기도 하고, 강물에 빠져 이리저리 휩쓸리기도 한다. 편견과 무시 속에서 그가 느꼈을 고독함, 우울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점은

이 손이 결국엔 그 모든 것을 헤쳐내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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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앞만 보고 질주한다. 때론 무모하다고 생각될만큼 잔인한 순간에도, 손은 미친듯이 앞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산을 펴고 날아오른다. 어릴 적 나우펠의 꿈이었던 우주비행사는 그에게 경례를 한다. 경례는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불행에 순응하지 않고 여태껏 버티며 살아온 나우펠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 건 아니었을까.


손은, 어두운 과거는 결국 나우펠의 잘린 손목까지 돌아온다. 하지만 나우펠은 잠결에 손을 피해 몸을 뒤척인다. 손이 나우펠을 찾아왔지만 나우펠은 손을 떠난다. 과거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였을까?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죠.
우리가 아예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모를까."

마치 자신은 엉뚱한 짓을 해본 적 없다는 듯한 말투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엉뚱한 짓을 충분히 많이 했다. 가브리엘을 따라갔고, 배달부를 때려쳤고, 집을 나와 목재소에 일을 구했고, 이글루를 만들었다. 보잘것 없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나우펠은 끊임없이 시도한다. 시작은 가브리엘에 대한 공감, 그녀가 준 위로의 따뜻함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점점 그는 모든 걸 즐기고 재밌어한다.

나우펠의 행복을 비웃듯, 파리는 다시 나타나 그를 귀찮게 한다. 어쩌면 파리는 그의 손, 나우펠의 과거 기억에 기웃거리던 죄책감이었을지도. 손이 잘린 후 열린 손가락 틈으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파리는 얄미워 보인다. 늘 이런 식으로 나우펠만 불행에 던져놓고 자기는 도망가니까.

하지만 나우펠이 잡은 파리는 어쩌면 집착이 아니었을까? 과거에 대한 미련.

잡아보아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우리는 늘 그것을 잡고싶어한다. 나우펠의 아버지는 나우펠의 성화에 못이겨 파리 잡는 법을 알려주지만, 사실 진짜 파리를 잡는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파리는 항상 너보다 한 발 빠르니까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이미 날아간 뒤라고.
뭐든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

굳이 먼저 가는 걸 잡아서 뭐하겠는가. 그저 지나가게 내버려두면 될 것을.


나우펠은 과거의 불행을 받아들인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불행해하지 않기로 한다.

많은 해석에서 사고가 나기 전 음성에 녹음이 덧대어진 것을 캐치한다. 근데 나는 좀 더 직설적으로, 녹음기를 건물 옥상에 버리고 뛰어가는 행위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몇 십 년을 고이고이 보관하고 있었을 그 녹음기를 버리고 갔다는 것만으로도, 나우펠은 한 짐 덜은 것이다.

비록 손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나우펠이 나우펠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손은 자신의 일부이다. 과거이고 상처이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는거라고들 말한다. 그 상처가 있었기에 현재의 나우펠이 존재한다.

나우펠은 운명을 받아들이지만 미래까지 운명에 맡길 생각은 없다.

스스로 운명에서 구제하기로 하고 뛰어 넘는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상처입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한번쯤은 쓰러지고 넘어지고 까지고 다친다. 그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이다.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다. 분한만큼 화를 내고 소리지르고 일어나라. 다시 일어나야만 화도 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상처입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만이 운명을 피해 폴짝폴짝 뛰어다닐 수 있다.

그러니, 있는 힘껏 운명에서 벗어나자.


끝은 또 다른 시작
감상평

영화를 다 보고 원작도서를 읽어보고 싶어 찾아봤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책이 없어서 아쉬웠다. 원작에서는 손이 화자가 되어 말을 한다고 하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움직임만으로 표현을 해서 그런지, 감각적인 느낌이 살아났다. (혹시 원작도서에 대해 아는 분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뻔하고 깔끔한 이야기는 그들만의 울림이 있다. 이 영화가 그랬다.

손이 잘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나우펠이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란 걸 알면서도, 그러지 않길 바랐다. 바보같이 그 순간에도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부질없는 희망을 갖고 산다. 그리고 그 희망이 빗나간 후에는 절망과 우울 속에 빠져 지낸다. 나 역시 나우펠을 보며 내가 손을 잃은 사람인 것처럼 우울해했다. 그를 동정했다.

나는 아마 가브리엘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봤던 것 같다. 도서관 사서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타인의 불행을 바라볼 때, 그가 그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착각 속에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 아닐까.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때론 그 상냥함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거만해지는 경향이 있는. 나우펠은 스스로 슬픔에서 벗어날 자격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걱정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뿐인데 말이다.

가브리엘은 부서진 이글루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의 끝은 '나우펠의 이야기 마침'이 아닌 '가브리엘의 이야기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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