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리뷰
시선으로부터
줄거리
자신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던 심시선의 말이 십 년 째 지켜지는 중이었다.
그러나 십 주년 만큼은 한 번 쯤 지내보고 싶다는 큰 딸 명혜의 말에 온 가족이 하와이로 모인다.
뜬금없는 하와이행에 모두들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시선을 기리는 모험을 시작한다.
살아남음으로부터
숨은 의미 찾기
고달픈 시절과, 직접적인 테러와, 간접적인 편견에.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정하거나 선택하거나 만들지 않은 것들이다. 그 안에서 야자수에 매달려 태풍을 만난 코코넛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고 할큄당하며 흔들린다. 그럼에도 결코 가지를 잡은 손은 놓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기도 하나, 다르게는 내가 손을 놓치면 나머지도 손을 놓칠 것을 알기에, 포기할 수 없음이 반일 것이다.
외부의 충격에 흔들려본 모든 것들은 그렇다. 동물도, 식물도, 하물며 인간도.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와 포기하고 싶은 절망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그 중에서 살아남은 것들만 남아 다음 세대를 꾸린다. 심시선은 살아남았다. '가슴이 터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었다. 물론 뻗은 가지들도 다른 태풍에 휘둘린다.
공감가는 장면이었다. 일을 얼마나 사랑해야 할까 가늠이 안 간다는.가끔은 일이라는 것과 아주 멀리 떨어져서 보기도 싫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붙들고 사는 것은 왜일까.
"그 때 안 그만뒀으면 지금쯤 그래도 팀장은 달고 있지 않을까?"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20대에 들어갔던 첫 직장에서 자기가 큰 실수를 한 나머지 그만둬 버렸다고.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하게 남아 있을 걸, 사수가 제대로 안 봐준 건데, 한다. 만약 그 때 일을 좀 더 사랑해서 남았더라면, 지금처럼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노라고 한다.
어쩌면 난 이런 엄마를 보고 살아왔기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사랑하는 걸지도 모른다. 싫어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사실은 앙숙관계를 사랑한다고 포장하는 건 아닐까. 그런 끝없는 고민의 굴레를 잘 표현만 지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직장에서 끝까지 살아남기란 얼마나 힘든 건지, 일을 다니며 몸소 느낀다. 겪어보지도 않고 편견을 갖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내가 직장에서 직면한 것은 여전한 성희롱적이고 여성비하적인 발언이었다. 저가 기계를 망가트려 놓고 내가 고치고 있자니, '남자 직원'을 부르자며 쫑알거리던 것. 화장 안한 직원에게 너무 편하게 다닌다며 핀잔 준 것. 여자 직원들 몸을 위아래로 훑으며 몸매가 좋다고 말하던 것. 2020년도에 일어났다고는 믿기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그게 아니고도 여전히 문제는 많다. 육아휴직계를 쓰고 복직한 많은 여자 직원들이 일하며 애를 먹는다. 시간표가 나오기 무섭게 애를 봐줄 사람을 찾는다. 매일 집과 회사를 왕복 4시간씩 오가며 육아하는 직원도 있다. 그러나 탄력근무제를 신청하려 했더니 윗선에서 막는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닐지 모르겠으나, 둘째라도 생기면 승진은 끝이다. 이곳이 유독 승진이 더딘 곳인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결혼하거나 아이가 있는 직원에 비해 아닌 직원의 승진이 더 빠른 것 또한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겐 심시선이나 그의 딸들같은 할머니도 엄마도 없다.
우리 할머니와 엄마와 하물며 이모들까지도. 모두 심시선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상상할 수 없는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생소했다. 오히려 괴로웠느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던 것은 사회 배경 때문이었다.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심시선이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도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기에.
이렇듯 내 주변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심시선이, 나와 똑같은 배경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왜 심시선은 여전히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폭력에 노출되고 두들겨 맞아야만 하는가. 왜 죽은 후에도 그녀는 가해자의 그림 속에서 고통받아야 하는가.
그나마 위안이 됐던 것은, 그럼에도 우리 할머니와 엄마와 이모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폭력에 익숙해져서 자신이 고통받고 살았는지도, 지금 폭력을 당하는지도 모를지라도. 여전히 우리들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세상의 편견과 차별의 태풍 속에서도
잔가지들끼리 옹기종기 얽혀매고 붙들고 있을 것을 알기에.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시선으로부터' 나왔기에.
그것 한 가지만 기억하고 있어도 우린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살아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질리지 않는 재능
감상평
소설을 읽으며 인물들이 너무 양극단에 치우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시선으로부터' 나온 이들과 아닌 이들, 심시선과 마티아스 마우어로만 인물이 나누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 그들의 표현은 태호가 '장모님 김치 먹는 게 소원입니다'라고 하거나, 상헌이 '내가 그 새끼야? 왜 나를 미워해?'라고 하거나, 규림이 도영의 행동에 대해 방관했다거나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국 변할 것이다. 깨달았으면 좋겠다.
시선이, 화수가 당했던 끔찍한 가해가 가해였음을. 가해자를 가해자 그대로, 피해자를 피해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생각해보면 나도 쓰는 일을 질리지도 않고 10년 넘게 해왔으니 이 정도면 나름 질리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뭐든 하나를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도, 될때까지 붙들고 있는 성격도. 어쩌면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일일것이다.
난 쓰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투쟁하고 쟁취하며 살아남는다.
심시선이 우리에게 했던 말은 그것일테다. 질리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가슴이 터져 죽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투쟁하고 쟁취하기 위해서는 살아야 한다.
그래, 사랑하는 이름들을 힘껏 지키는 일에 질리지 말아야 한다.
심시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자신,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나온 가지들이었다.
나 역시 지키고 싶다. 나를, 내가 나온 뿌리를, 내가 뻗을 가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