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콜] 리뷰
콜(CALL)
줄거리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서연.
기차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바람에 박스에 처박혀있던 낡은 전화기를 꺼내 드는데.
전화기 너머로 연결된 것은 본인의 핸드폰이 아닌, 20년 전 같은 집에 살았던 영숙.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같은 공간에서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정을 쌓아간다.
영숙은 과거에서 서연을 발견하고 그녀의 인생을 뒤바꿀 엄청난 선택을 하게 되는데...
공동의 적 앞에서
숨은 의미 찾기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고, 과거가 바뀌면 미래가 바뀐다.
한국에서 이런 타임리프 물 중에서 가장 성공을 거뒀다고 단언할 수 있는 '시그널'조차 과거를 쉽게 바꾸지는 못한다. 그들은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과거를 바꾸려고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과거를 바꾼다기보다 과거의 문제를 미래에서 해결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과거도 변하긴 하지만, 미래에서 선뜻 지령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이를 통해 과거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룰이 건재함을 알린다.
물론 변화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시공간이 무너지고 뒤틀리는 CG처리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세월이 소멸하고 없었던 세월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꽤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건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애당초 타임리프 물 자체가 과거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공식을 깨기 위한 것이다. 다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놓고도 과거를 함부로 건드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금기시되는 어떤 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래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도, '과거는 함부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생겼다.
그럼에도 서연과 영숙은 과거를 바꾸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그들은 뒷일을 염려하기보다는 과감한 선택을 감행한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 '어? 이렇게 쉽게 바꿔버린다고?' 하며 조마조마해진다. 주인공들은 단순하지만 명쾌한 판단력으로 타임리프의 룰마저도 시원하게 깨버린다.
오영숙의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깨어나고 점점 날뛸수록 돋보이게 된다. 소화기는 불을 진압할 때 쓰인다. '불'이 흥분, 광기, 난폭, 자극의 의미로 해석이 된다면, '소화기'는 차분, 안정, 침착, 온순의 의미로 해석된다.
'소화기가 있어도 불을 끌 수가 없음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영화에서 소화기는 오히려 눈을 뜬 살인마의 폭주를 돕는 역할을 한다. 화재현장에서 소화기가 있는데도 아무도 불을 끄지 못한다. 소화기의 상징을 생각하면 이는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아는데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 서연이 영숙에게 전화를 걸 방법은 없다. 오직 영숙만이 과거에서 미래로 서연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 서연은 그저 과거가 해결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화기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감탄했다.
하지만 소재를 디테일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속에서 소화기는 계속 영숙의 손에 들려있다. 그런데 마지막에 서연 엄마가 소화기를 들고 때리는 데에서 그쳐서 아까웠다.
보통의 영화와 달리 결말을 두 개 보여준 것도 재미있었다.
보통의 타임리프 물은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절박한 느낌이라면, 이 영화는 그저 과거의 선택들이 하나의 튜토리얼처럼 느껴진다. 만약 과거가 이렇게 진행되었더라면 이런 엔딩이었겠지? 하는 게임 같은 느낌.
한 마디로 서연이 게임 캐릭터라면 영숙이 악역 NFC인데, 서연이 게임을 클리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결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과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머릿속에서 기억이 변화하게 되는데 서연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스스로 고군분투하며 찾아다니는 모습에 '엥?'스러웠다. 하지만 이마저도 서연이 살인마와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참신한 느낌을 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엔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엄마들과의 관계'이다.
영숙과 영숙 엄마는 서로를 죽이려 한다. 서로가 가진 불만과 문제를 이해하고 변화하려 하기보다는 서로를 죽임으로써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서연과 서연 엄마는 서로를 살리려 한다. 합심하여 공공의 적으로부터 서로를 지키고자 한다.
초반에 서연과 서연 엄마 사이에는 오해가 있었다. 깊은 오해의 골을 풀어준 것은 공동의 적인 영숙. 현실에서는 고난과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갈등을 두고 와해되기 마련이다. 영숙과 영숙 엄마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한쪽이 사라짐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함께 해결책을 찾고 협동해야 한다.
서연과 서연 엄마처럼.
신선한 타임리프 물
감상평
배우들의 연기를 이러쿵저러쿵 하기에는 이미 영화로 증명해 보인 터라. 전종서 배우 이야기가 많던데 오히려 나는 박신혜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박신혜 배우의 이미지는 나에게 있어 '유약함, 수동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그때와는 180도 다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나에게 '진짜배기 배우'라는 인상을 강렬하게 심어주었다.
영화 내용은 사실 어떤 의미를 찾기보다는 재미를 위한 거였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무언가 찾아낼만한 요소를 쏙쏙 숨겨놓아서 재밌었다.
점점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늘어나는 게 기분 좋다.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 있는 작품이 늘어난다는 소리니까.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생겨서 더더욱 넓은 창이 열린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