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집착

[넷플릭스 인비저블맨] 리뷰

by 담작가
인비저블맨
줄거리

자신에게 집착하는 천재 과학자 애드리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위험천만한 탈출을 감행한 세실리아.

세실리아가 탈출하고 얼마 뒤, 애드리안은 그녀 앞으로 거액의 유산을 남긴 뒤 자살한다.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세실리아는 그 뒤로 이상한 인기척을 느낀다.

어쩌면 애드리안은, 죽어서까지 그녀를 쫓아다니고 있는 게 아닐까?

탈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투명한 집착
숨은 의미 찾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를 원치 않으시면 영화를 감상한 후 읽어주세요.>


어쩐지 영화를 보면서 많은 비슷했던 다른 작품들이 생각났다.


첫 번째로 생각난 작품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였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너무 의존적인 어떤 인간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갈만큼 타인에게 집착하기도 한다.

그들의 행동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상대를 위해 산다고 말하면서, 상대 역시 자신을 위해 살기를 강요한다. 상대가 그것을 거부하면 그들은 괴로워하며 상대방을 죄책감에 빠지게 한다. 그들은 자신만 파멸하려 하지 않는다. 집착하는 인간들의 끔찍한 면모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심시선'에게 집착했던 '마티아스'가 딱 그런 유형의 인간이다. 자신 없이 행복한 심시선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쨌는지. 그는 심시선이 괴롭기를 바라며 자살한다. 이는 권력을 악용한 것이기도 한데, 인종과 성별의 문제도 뒤섞여있는 것이지만, 그런 나머지를 뺀 인간 대 인간 관계로만 두고 보면 결국 집착이다. 죽어서까지 시선의 꼬리표처럼 붙어다니기 위한 치밀한 자살이었다.

애드리안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없는, 자신이 없어야만 행복한 세실리아를 기어이 따라다니기 위해 자살한다. 그런데 차라리 마티아스처럼 그대로 죽었다면 좀 나았을까. 그는 죽음을 연결고리 삼아 영원히 그녀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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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은 엄청난 상징성을 지닌다. 마티아스도, 애드리안도 남들이 보기엔 좋은 남편, 좋은 연인이었다. 이런 이들은 대게 연기력이 뛰어난 이중인격자이다. 피해자 앞에서는 폭군이지만, 겉으로 비춰지는 모습은 자상하고 친절하다. 이미지 관리를 통해 타인에게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끊임없이 인식시킨다.

그러고는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면 그를 '부족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넌 지금 아파. 제정신이 아냐. 내가 있어야만 해."

타인의 눈에는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세실리아는 투명한 애드리안으로부터 도망간다. 하지만 카메라에 찍힌 것은 그냥 세실리아가 실성한 사람처럼 뛰어다니는 모습 뿐이다. 사실은 있는데 진실은 없다. 분명 세실리아는 폭력당하고 있지만, 타인의 눈으로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 영화에서는 타인이 눈치챌 수 없는 가정폭력의 끔찍함을 '투명인간'이라는 끔찍한 소재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생각나는 작품은 '더 보이'였다.

두 개의 작품은 '가해자가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가해자는 어딘가에 숨어있지만, 피해자를 늘 지켜보고 있다. 피해자는 어디에 숨어도 가해자에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브람스'는 인형의 눈을 통해 '그레타'를 늘 지켜본다. 그리고 애드리안의 투명 수트에서는 수십, 수백 개의 카메라가 달려있다. 눈구멍이 없는 수트이기 때문에 바깥 상황을 보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사실상 진짜 목적은 세실리아를 지켜보기 위함이다.


"그는 갈수록 나를 통제하려 했어. 내 일거수일투족, 내 생각까지도."

세실리아는 탈출하고 난 후에도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려 바깥에 나가지조차 못한다. 혹시라도 그가 자신을 발견할까봐, 자신의 곁을 맴돌까봐. 보이지 않는 억압과 공포가 그녀를 옥죈다. 언제 어디서든 그녀는 고통받는다. 물론 애드리안이 이런 상황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닐테다. 분명 그녀가 겁에 질린 모습을 보는 것도 그의 즐거움 중의 하나겠지.

하지만 진짜 목적은 세실리아의 생각을 통제하는 것이다.

세실리아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렇게 해서 다시 자기에게 돌아가는 것. 그 과정을 통해 그녀를 길들이고, 자신의 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 보이지 않는 가해자가 자신을 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보이는 가해자가 자신을 지켜보는 게 차라리 나으니까.


결국 세실리아는 자기가 당했던 방법 그대로 복수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애드리안이 죽는 것을 확인했을 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는 걸 원하는 마음 자체가 비이성적이고 비윤리적이지만, 애드리안이 죽지 않았더라면 세실리아는 영원히 감시당할 테니까.

제임스는 몰래 상황을 엿듣고 있다가 애드리안이 죽었다는 말에 헐레벌떡 뛰어간다. 그리고 수트를 가지고 나오는 세실리아를 발견하지만 막지는 못한다. 제임스는 경찰이다. 법이 피해자를 도울 수 없어 피해자가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찜찜한 것은 세실리아가 투명 수트를 가지고 나왔다는 점이다.

자신이 애드리안을 죽였다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이겠지만, 진정으로 애드리안으로부터 탈출한 그녀의 표정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투명인간이 나를 지켜보는 것은 공포지만, 내가 투명인간이 되는 것은 자유가 되는 것이니까. 그녀도 마지막 복수를 통해 그것을 눈치채지 않았을까?

마치 그 수트가 또 사용될 것만 같아서 속시원하지만은 않은 마무리였다.


찐 추천 영화
감상문

오랜만에 별 생각없이 봤다가 대박을 건졌다는 느낌.

알고보니 이 영화 겟아웃, 어스 제작진이 만든 영화라고. 어쩐지 영화 전반에서 오는 아이디어나 전개가 과감하다 했다. 그러면서도 은근 섬세하다. 솔직히 겟아웃이 정말 완벽하게 만들어진 영화였고, 어스가 너무 도전적이라 애매모호한 영화였다면, 인비저블맨은 대중성까지 잡은 예술+상업 영화랄까.

어떤 인간도 인간을 억압하고 통제할 권리는 없다.
상대에게는 통제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같은 인간을 소유물이라 여기는 몰상식하고 비윤리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간관계 안에 서로를 가둘 수 없다. 선천적으로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것 같아보이는 인연 마저도, 결국에는 끊으려면 끊어지는 게 인간 관계다. 그럼에도 여전히 억압하고 통제하는 인간들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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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편으로 투명 수트 한 벌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실리아가 마지막에 투명 수트를 가지고 나온 게 마음에 걸렸던 이유다. 억압과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물건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자유롭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마저 욕망이 아닐까 싶다. 재미있으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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