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 똥 굵다, 어쩔래?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기 위해] 리뷰

by 담작가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기 위해
줄거리

나도 글 잘 쓰는데, 나는 왜 베스트셀러 안 돼?

남들이 잘 말하지 않아서 나도 꽁꽁 감춰두고 있었지만, 줄줄 세어나오는 출세욕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이주윤 작가의 출세욕 이야기.


그래, 내 똥 굵다, 어쩔래?
숨은 의미 찾기

최근의 나는 백수가 될 날만 카운트하는 중이다. 그래서 더 자기계발에 박차를 가하기는 개뿔, 무기력에 빠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애쓴다. 해야할 일들은 쌓여만 가는데, 나는 여전히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냥 쉬고 싶은데 억지로 붙잡고 있다.

이 책은 읽은지 한참 됐다. 정말 3개월 정도 된 것 같은데, 왜 이제야 리뷰를 하느냐. 안 했던 리뷰 뒤적거리던 나에게 "정신차려, 빨리 글 써!"라는 잔소리를 해줄 것 같은 책이어서랄까.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정말이지 나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가 만든다. 이 책은 그런 매력이 있다.


나도 좀 잘 나가고 싶다.

이런 생각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 세상에는 욕심없이 소소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큰 욕심 아니던가. 이효리와 이상순의 '스몰웨딩'이 '스몰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모두들 잘 나가고 싶어한다. 지금보다 나은 월급, 지금보다 나은 집, 지금보다 나은 직급, 지금보다 나은 삶...

인생에서 가장 처음, 그래서 가장 타격이 큰 팩트폭력은 바로 고3 때 온다.

왜, 그런 말 있잖은가. 중학교 땐 누구나 다 '서연고' 가는 줄 알았고, 고1 때는 나는 '서연고' 갈 수 있을 줄 알았고, 고2 때는 서울 상위권 정도면 어떻게 비빌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그러고서 고3이 되면 '제발 인 서울이라도' 라며 빌게 된다고. 물론 어느 정도는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한 번쯤 수험생활을 해본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이 말이 영 우습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현실에 내몰리게 되면서 점점 꿈을 줄여간다.

내가 상상하고 소망하는 것들을 함부로 내뱉었다간 웃음거리가 될까봐 그게 무서운 거다. 허황된 욕심 갖지 말고, 이거나 잘해, 저거나 잘해.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입을 다문다. 크고 원대하고 대단하고 멋진 꿈보다는, 당장 실현 가능한 것들만 나열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점 움츠러든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다 안 된단다, 세상은 안 되는 것 투성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한다.

욕심은 사라지고, 현실적인 만족만 남는다.


그런 현대인에게 이주윤 작가의 솔직한 외침은 파도처럼 부딪힌다.
금방 부서질 걸 알면서도, 계속 계속 밀려들어오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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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하고 싶다는데. 내가 욕심 난다는데. 남들이 뭔데 그게 되네, 마네 한단 말인가. 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하고 싶다고 욕심 부리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 정도는 자유 아닌가. 잘나고 싶은 게 어디 개인의 소망이랴. 누구나 다 속에 감추고 살 뿐이지, 오늘보다 멋진 내일이 있기를 기다리지 않는가?

그냥 되뇌이는 것 뿐이다. 나 잘 되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하고 싶다.

누구한테 해를 끼치지도 않고 나쁜 일도 아니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잘 되고 싶다'는 말을 말하는 것 조차 욕심이 되었나. 우리는 왜 현실적이지 않으면 전부 이뤄지지 않을 욕심이라고 여기는가.

물론 뒤틀린 욕망, 노력없는 허상까지 옹호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이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뿐.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현실에서 길을 찾아가는 게 욕 먹을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기만 한다면. 예를 들어 '글 써서 인기 작가 되고 싶다'는 잘못된 게 아니지만, '인기 작가들 다 돌로 내려쳐서 내가 인기작가 될거야' 라든가, '나는 인기 작가 될 거니까, 뭐' 라고 아무것도 안 하는 행동까지 글에서 말하는 '욕심'의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내 안의 욕심이 정당하고 순수한 욕심이라면 이제부터는 감추지 말자.

칭찬을 듣고 '아니에요' 겸손 떠는 짓은 그만 두자. '알아요, 저 잘난 거' 라고는 말 못해도 적어도 '감사합니다'라며 내 잘남을 인정하겠다. 잔소리가 무서워서 '아, 네네' 적당히 둘러대는 말들은 그만 두자. 맞받아치지는 못해도 '그래도 전 그게 좋아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하고 조금은 싸가지없게 웃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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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내 욕심을 드러내는 게 왜 부끄러운 일인가? 이뤄지지 않을테니까? 이루기 전에 떠벌대는 건 우스우니까? 뭐가 그리도 나쁜 것이란 말인가. 이뤄지면 좋은 것이고, 이뤄지지 않으면 이뤄질 때까지 노력하면 된다. 이주윤 작가는 '성공할 때까지, 될때까지 한다. 출세할 거다!'라고 숨김없이 외친다. 이거야 말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당당한 삶의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오늘부로 선언한다.
나 잘났어! 성공할거야! 대박 스타 작가 될 거야!


팔리는 글이란
감상문

세 달 전쯤, 브런치 매거진 '퇴준생 보고서'에 올린 '직장 왕따기'가 조회수 10000을 돌파했다. 그 덕에 구독자도 꽤 올랐다. 브런치를 2년 가까이 했지만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살다살다 브런치 홈 메인에도 걸려보고. 알고리즘의 세계란 참 놀랍고도 신비하구나.

이주윤 작가의 말에 힘입어, 나는 '왜' 이 글이 인기글이 되었는지 분석해야만 했다. 그래야 다음에 또 조회수 폭발할 기맥힌 글을 쓸테니까. 그 전에 썼던 글은 뭐가 부족했길래 인기글이 되지 못했을까. 이건 전에 쓴 글이랑 뭐가 달랐을까.


당연하지만, 아마 '왕따'라는 소재 때문이겠지.

남의 이야기를 읽을 때, 뻔하고 진부하고 재미 없으면 안 본다. 흥미로운 소재만이 눈을 사로잡는다. 그렇담 흥미로운 소재란 무엇이냐. 사람 심리라는 것이, 차마 내가 말하긴 어려운 얘기도 남이 하면 시치미 뚝 떼고 듣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관심 없는 척하는데 막상 보면 관심 무진장 많이 갖는 그런 이야기. 왕따도 그런 이야기다.

이 키워드를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런 소재를 '솔직하게' 써냈다는 데 있다. '과연 이딴 쓸모없고 거지같은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하고 의문을 가진 적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읽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잖은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전부 존재한다.

복잡하고 더러운 인간사에 대한 환멸과 고통. 나는 그런 것과 관련없고 싶지만, 사실 우리네 인생이 전부 꽃밭은 아니니까. 잘 꾸며놓은 꽃밭에도 누군가는 쓰레기를 투척하고 가는 법이니까.


그럼 결론적으로 나는 앞으로 무얼 써야 하느냐.

개똥같고, 거지같고, 힘들고, 추잡하고, 우울하고, 지랄맞은 내 얘기를 써야 한다.


일하기 싫고, 출근하는 거 힘들고, 사람들 피곤하고, 현타와서 우울하고, 그냥 일상이 다 뭣같다는 내 속마음이라도 써내야 된다. 힘들고 지친다는 생각마저도 글로 옮겨 적어야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믿음으로. 아마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도 결국 사람이라면 똑같이 살기 싫은 하루를 꾸역꾸역 버텨낸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바탕 수다나 떨자는 권유를 하기 위해.

작가란 그런 사람이란 걸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환멸을 느낀다면 그 환멸에 대해, 고통을 느낀다면 그 고통에 대해서라도 써야 한다. 그것이 작가의 삶이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글쓰기를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게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고, 달라 보이지만 비슷하다. 누구나 불행한 순간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불행함을 늘상 기록해야만 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추잡하고 우울하고 징징대는 이야기를 많이많이 쓰겠습니다.
많이많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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