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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May 18. 2021

퇴사했는데도 국민연금을 내라고요?

퇴준생 보고서 28 - 퇴사는 처음이라서요

백수가 되고 나니 통 나갈 일이 없다. 사실 외출할 돈이 없는 거지만.

몇 날 며칠을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다가 오랜만에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날. 내 앞으로 우편이 하나 왔다. 그런데 겉봉투에 적힌 이름이 심상치 않다. 국민연금공단? 퇴사와 함께 나와는 연이 끊긴 줄 알았던 이곳에서 대체 내게 뭔 볼 일이 있다고 친히 우편까지 보낸단 말인가. 순간 불안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돈 내라는 거 아냐?"

에이, 아닐 거야. 떨리는 손으로 우편을 뜯어보았다. 아아, 왜 그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고객님께서는 사업장 상실 등으로 지역가입대상이 되셨기에 자격 취득에 대한 안내를 드립니다."

당연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강매는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국민연금의 이미지는 약간

"어이, 젊은이~
좋은 말로 할 때 월급을 내놓으시지?
내가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조금씩 나눠줄 거라구~"
이런 친절한 안내... 필요없어...

이런 느낌이랄까. 분명 좋은 의미인데 좋게 안 들린다. 뭔가 내긴 내야 하는데 강매스러워서 약간은 억울한... 설날에 어른들한테 열심히 세배하고 세뱃돈 받은 걸 엄마가 가져가면서 '나중에 필요할 때 줄게' 하는 그런 거 말이다.

나는 원래 직장가입자였지만, 이제부터는 지역가입대상이므로 가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 그것도 모르고 나는 선량한 백수가 당장 저금할 돈이 어딨다고 이러나 싶어서 눈물 날 뻔했네. 솔직히 직장 다닐 때 꼬박꼬박 통장 내역에 '퍼가요~' 뜨는 것도 벅찼구먼. 늙은 다음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돈이 없어 죽겠다.


사진 참조 : 픽사베이

가뜩이나 쥐똥만 한 월급으로 이미 몇십 개월치 국민연금을 납부했건만. 납부기간이 120개월 이상이어야만 연금으로 수령이 가능하단다. 그러니까 이 말인즉슨, 일단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만 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소리다. 억울해서라도 기간을 채우긴 채워야겠는데, 실업급여 첫 달만에 생활고에 시달린 내가 '까짓 거 뭐'하고 선뜻 내기에는 망설여졌다.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검색해보니,
'실업 크레딧'이라는 게 있단다.

원래 국민연금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동안은 회사와 근로자가 반반씩 나누어서 납부하게 된다. 그런데 실업크레딧이란,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국민연금을 납부할 시에 국가에서 75%를, 본인은 25%만 지급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평생 되는 것은 아니고  사람의 생애에  12개월만 지원해준다고 한다. 요즘같이 온라인 실업인정 신청이 가능한 때에는 당일에 신청서를 제출할  실업크레딧을 신청한다고 클릭하기만 하면 된다. 아쉽지만 지나간 달에 대해서는 소분 지급이  된다. 그러니까 실업크레딧을 신청한 달부터 다시 국민연금 납부 횟수가 채워진다고 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추가글 : 제대로 신청 들어갔는지 확인하려고 상담원에게 문의했더니 지나간 달에 대해서도 전부 소급처분이 된다고 한다!

사진참조 : 픽사베이 / 전.. 핫도그 위엔 머쓱타드 뿌리는 편...

그런데 이 간편하고 좋은 제도가 있었는데 나는 왜 몰랐냐고? 알고 보니 실업급여받기 전 보았던 동영상에도 나오는 내용이었다. 원래 집중력이 오래가는 학생이 아니었던지라...(머쓱) 듣다가 딴짓하고, 듣다가 딴짓하고 하면서 나름 듣는 부분은 열심히 듣는다고 집중했는데. 딴짓하는 부분에서 나왔나 보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실업급여 신청할 때 동영상 교육 열심히 들으시라, 이 말씀입니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에이~ 이런 것도 몰라?
실업급여 첨 받는 티 나네ㅋㅋ"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헐? 나도 곧 퇴사하는데... 이런 게 있었어?"

하는 퇴사 초보자 분들은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조금만 검색해봤다면 알 수 있는 문제를 몰랐다는 부끄러운 고백의 글을 굳이 쓰는 이유는, 나처럼 당혹스러울지 모를 사람들을 위해서다.

퇴사를 난생처음 해보는데 어쩌겠나.

뭐든지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법이다. 이렇게 문제에 맞부딪혀서 직접 찾아보고 알아내면서 차차 나아지는 것이지. 어떻게 모든 걸 처음부터 잘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번에 배웠으니, 다음번에 또 퇴사하게 되면 그땐 바로 실업 크레딧 신청해야지!

실업급여받는 분들 모두 실업크레딧 하세요!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고용센터에 처음 갔던 날, 내가 직원에게 뭔가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국민 연금 계속 내실 거냐고, 그 내용이에요."

서류를 작성할 때, 다른 건 겨우 알아먹고 체크했는데 딱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그렇게 답해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실업크레딧 신청 여부’였나 보다. 곱씹어 보니 살짝 기분이 나빠질 뻔했다. 내가 질문을 할 때 ‘이건 뭐냐’고 물었다면 제도 자체를 모른다는 건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직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일하던 때가 떠올라서였다.

그 직원은 하루에 몇 번이나 똑같은 대답을 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똑같은 질문을 할까.

나도 그랬다. 방금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런데도 묻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이지 화딱지가 치밀어 오르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민원이 생길까 봐 불안해서, 위에서는 친절과 의무를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설명해주곤 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친절하게 안내문도 붙여줘, 홈페이지 들어가면 팝업도 띄워줘, 늦기 전에 문자도 보내줘, 근데 내가 뭐하러 두 번이나 말해줘야 해?’라는 생각에 구태여 두 번 말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아마 그 직원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날 내가 그 질문을 했을 때, 진절머리가 났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동영상을 다 수강하고 왔고, 거기에 내용이 다 나와있지 않은가.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은 나니까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은 나다. 내가 신경 써서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분이 내게 꼭 설명해줘야만 하는 의무는 없다.

사람은 역지사지라더니. 예전 같으면 기분 나빠졌을 일에도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가게 된다. 일하기 전이라고 사람들한테 막 대했던 건 아니지만, 일을 해보고 나니 더욱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 날 어마 무시하게 많은 사람들이 고용센터에 바글바글 댔다. 고된 하루에 내가 귀찮음을 한 스푼 더 얹어주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앞으로는 챙겨야 할 부분은 스스로 야무지게 챙겨 먹자는 다짐을 한다.

이렇게 또 하나 배워간다.
역시 퇴사는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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