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왜
브런치에서 연말 선물로 브런치 작가 카드와 활동 결산 리포트를 보내주었다.
나는 카드와 리포트에 적힌 것들을 읽으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애매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실 이 카드와 리포트를 받고 기뻐해야 할 나 자신에게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먼저였다.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내 마음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9년도 9월, 나는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부터 늘 써왔던 책이나 영화 리뷰도 꾸준히 올렸고, 취업한 이후로는 더 힘들게 자신을 굴리기 위해 에세이도 병행했다. 내 목표는 늘 ‘꾸준한 업데이트’였다. 기본값은 일주일에 글 두 개였지만 바쁘고 힘든 기간에는 최소 일주일에 한 개 정도라도 업데이트하려고 애썼다.
그로 인해 나는 몇몇 제안을 받아보기도 했다. 잡지에 글을 실어 돈도 벌어봤다. 그걸로 자부심을 가진 적도 있었다. 내가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내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왔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이라고. 자신을 믿고 계속 그렇게 나아가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랬던 나는 2년 만에 지쳐버렸다.
더워지는 날씨에 퇴사를 했는데 이제는 추워지고 있다. 퇴사 이후의 삶도 나름 성실하게 꾸며왔지만 늘 ‘충분한가?’에 대해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이게 내 한계가 아니라면 더 할 수 있을 거란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글이 많이 읽히길 바라며 업데이트 빈도수를 높이거나 주목을 받을만한 주제를 찾아 헤맸다.
넷플릭스, 사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쓴 키워드라는 넷플릭스 콘텐츠는 내가 정말 좋아서 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나마 ‘넷플릭스’라는 타이틀이라도 달아야 조회수가 높아질 것 같아서였다. 나는 악착같이 넷플릭스에 뜨는 작품들을 보고 써냈다. 그중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재밌었던 것도 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하염없이 붙들고 있었던 작품도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점점 회피하게 됐다.
브런치 인생 처음으로 주목받았던 글은 퇴준생 보고서에서 ‘직장 내 왕따’ 당했던 썰을 푼 글이었다. 처음으로 메인을 장식하고, 조회수가 10000이 넘어가고, 지인이 아닌 모르는 사람에게 라이킷이라는 걸 받아보게 해 준 그 에세이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일단 한 번 조회수가 많이 늘어나고 나니, 그다음 글은 더 신경 쓰게 되었다. 공들인 것만큼 조회수와 라이킷이 많이 나오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점점 자극적인 소재를 고민했고,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하기보단 주목받을만한 글귀를 담아내려고 악을 썼다.
자연스럽게 늘어난 구독자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구독자가 두 세명 정도 줄었던 적이 있는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왜?’라는 질문에 휩싸여 지내야 했다.
그렇게 혼돈의 시기를 거친 지금, 내가 받아 든 이 카드를 보니 아등바등 날짜를 맞춰가며 의욕과 패기 넘치게 글을 써내던 지난날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다. 나도 누구보다 진심으로 글에 임했고, 그 덕분에 더 많은 공부를 할 수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구나’라는 생각에 당연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숫자로 점철된 수치를 받아 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었다.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어서, 양질의 콘텐츠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브런치에 유입되는 작가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브런치에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처음 목표했던 것과는 달리, 점점 수치와 통계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하고 난 뒤의 충격이란.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브런치 안에서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은 없다는 좌절감. 그것들을 이겨낸 지금에서야 나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겠다.
나는 브런치 작가 카드가 조금은 불편했다.
브런치팀은 비영리 집단이 아니다. 몇 명의 작가가 유입되어 몇 개의 글을 발행하고 몇 건의 책이 계약되었는가는 분명히 기업 입장에서는 중요한 사항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욕을 갖고 양질의 글을 생산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브런치에서는 조회수와 라이킷이 늘어나면 작가들에게 알람을 울려주고, 내 글을 누가 얼마나 읽었는지 통계도 제공한다. 작가들도 자연스레 그 숫자를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그래도 그 덕분에 이만큼의 보답을 얻었잖아?’라고 한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너무 결과에 신경 쓰게 된 나머지 허무하다는 부작용도 얻게 되었다. 리포트에 적힌 키워드를 보니 스스로가 좀 한심해 보였다. 전문 리뷰어도 아니고 그냥 ‘넷플릭스 관련 콘텐츠 많이 제작한 사람’이라는 것 같아서.
어쩌면 반대로 가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들어 부쩍 브런치에 글 올리는 빈도수가 줄었다. 게다가 글 목록을 내려보면 알 수 있겠지만, 리뷰 글도 더 이상 올리지 않는다. 쓰는 공간을 분리하고 싶어서 리뷰는 블로그와 포스트에만 작성하고 브런치는 완전히 에세이를 올리는 플랫폼으로만 이용한다.
뻔한 결과겠지만 라이킷이나 조회수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 말을 최대한 진솔하고 확고하게 적어내서 신중하게 발행하게 되니 더 이상 줄어드는 알람에 신경질적이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는 여전하지만, 동시에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 역시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아무도 물어본 사람 없고, 궁금해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근황 TMI를 좀 방출하자면, 최근에는 나의 창작물에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브런치 조회수와 라이킷에 연연하느라 제대로 쓰지 못했던 소설을 더 쓰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삶에 충분하 반영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아무렇게나 막 갈겨쓰는 글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는 글을
써내려고 한다.
사실 이런 말을 굳이 덧붙이는 것은, 내가 글을 올리면 꾸준히 읽으러 와서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몇몇 분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채널에 굳이 찾아와서 매번 흔적을 남기는데 이름을 외우지 못할리는 없다. 알람이 뜰 때마다 낯익은 이름들이 보이니까 말이다. 이 글은 그런 분들에게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보여드리기 위한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사실 몇몇 분들은 채널을 찾아가서 글을 읽어보기도 했다. 참 좋은 글을 쓰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 모든 분들이 수치와 통계를 위한 글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글을 오래도록 발행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으며 오늘도 발행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