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도록 설계된

우울한 것도 어쩌면 정상

by 담작가

못 견디게 우울하다.

우울하다는 건 슬픈 것과 다르다. 그냥 멍하다는 말에 더 가깝다.

그래서 눈물도 나지 않는다. 다만 내 주변의 공기가 끈적끈적해진 것처럼 심장이 축축 늘어진다.


나는 항상 365일 중 300일 정도는 못 견디게 우울하다. 우울함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근원은 보통 같다. 나 때문이다. 내게 닥친 이러저러한 상황들과 내가 그것들을 헤쳐나가는 과정들에 있어서 나는 보통 우울해진다. 어떤 날은 내가 그냥 이렇게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대부분 해결 못할 걱정들이고, 그럼 난 당연히 우울해진다. 어떤 날은 과하게 희망찼다가, 그 희망들에 대한 현실적인 생각을 하면서 우울해진다. 엄청난 조울증은 아닐까 생각한다.


인생을 즐겁게 웃으며 지낸 순간은 많지만, 즐거운 순간으로만 가득 찬 하루는 거진 없었다.

하지만 그게 인생 아니겠는가.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는 슬픔이가 있었기에 행복한 핵심 기억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 내 인생은 대체로 기뻤다가 추락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이제 작은 나락에는 큰 감흥을 못 느끼게 되었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이러고 말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슬픔에 무뎌진 나를 보며 안쓰럽다고도 했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이렇게 살아본 결과, 솔직히 덤덤해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덤덤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 안타까우면 어쩔 건데. 자기가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못 견디게 힘겨운 순간을 덜어줄 것도 아니라면, 그냥 '힘들었구나'하고 말아줬으면 좋겠다. 내 힘듦을 힘듦 그대로 인정해주는 건 나에 대한 존중이 되기도 하니까.


대체로 우울한 인생을 살다 보면 강박적이게 된다.

그게 나를 괴롭히는 완벽주의의 발병지다. 우울한 마음을 어떻게든 메꿔보려는 발버둥이다. 나 자신을 어떻게든 채워보겠다는 발악이다. 숭숭 구멍 난 마음에 자그마한 뿌듯함이나마 덕지덕지 붙여보려고. 그런데 웬걸, 작은 구멍 막으려다가 늘 구멍이 더 커지는 일만 발생한다. 옘병할 일이다. 수천수만 번 '염~병'하고 외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원래 내 인생은 우울한 건데, 내가 애써 우울하지 않으려는 건 아니고?"

그냥 우울하게 생겨먹었으면 우울하게 사는 게 답일지도 모른다. 애써 밝고 명랑하게 사는 건 해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 겁나게 우울해요'하면서 울상 짓고 입꼬리 쳐지는 글을 쓰는 게 내 숙명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솔직하게 굴면 적어도 구멍이 커지지는 않는다.


내 인생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게 설계된 것 같다. 암만 애써도 안 되는데 굳이 할 필요 있나.

콩쥐도 참 바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굳이 부으려는 이유는 뭔가. 아, 근데 콩쥐는 뭘 해도 될 년이었던가. 밑 빠진 독을 막아줄 두꺼비가 있었으니까. 콩쥐니까 두꺼비가 도와줬지, 나라면 두꺼비가 첨부터 찾아오지도 않았을 일이다.

그럼 콩쥐는 콩쥐니까 그렇게 살라지. 나는 구태여 밑 빠진 독에 물 안 부어. 그냥 우물에 던져버리고 침이나 뱉으면서 '옘~병~ 더러워서 내가 집 나가고 만다' 하고 콱 소리나 질러버리지, 뭐. 그러다가 대박이 나서 나 비웃던 사람한테 비웃음 되돌려줄 수 있을지 어떻게 알아.


그냥 우울하게 살련다. 안 우울한 척하는 것보다 그냥 우울하다고 말하면서 사는 게 더 나은 삶 같다.

아, 그래도 맞춤법 검사는 돌린다. 이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완벽의 기회니까. 그런 것까지 마다하지는 말자. 누구든 제게 돈을 주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동정은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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