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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

전업작가 생존기

by 담작가
"나도 이제 가장이네.
우리 고슴이 밥 먹이려면 돈 빡세게 벌어야겠다."

내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자취를 시작했던 친구의 집들이에 갔다. 그 친구는 작은 고슴도치 한 마리를 키웠는데, 자취를 하면서 데리고 나왔다. 한 생명을 오롯이 혼자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은 그런 것일까. 고슴도치를 쓰다듬는 친구의 어깨가 어쩐지 무거워 보였다.

가장(家長)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

이제부터 나는 나 자신을 먹여 살려야 한다. 어쨌거나 온전한 보살핌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밥벌이는 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 가장이었다. 돈을 벌어 가장의 역할을 해야, 글을 쓰고 싶은 자신을 챙기며 살 수가 있었다.




책상 위로 묵직한 모니터 두 대가 올라왔다. 컴퓨터 본체까지 올려놓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세팅하니 꽉 찼다. 이 모든 게 나의 작업용 장비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새로 산 널찍한 책상을 재택근무 알바용 장비에게 빼앗겨버렸다. 구석에 처박힌 맥북을 보고 있으니 눈에 습기가...

나는 아동을 대상으로 비대면 화상수업 알바를 한다. 하도 꿀알바라고 홍보해서 들어왔는데 구라였... 아무튼, 쉽게 말하자면 구X 선생님과 패드를 통해 수업을 하는 격이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데, 그 생각보다 많은 수업을 내가 진행한다.


아이들이 눈앞에 있지도 않은 선생님에게 집중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가만 보면 어떤 아이들은 나를 거진 NPC 취급한다.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질 않나, 밥을 먹느라 대답도 안 하질 않나, 책상에 발 올려놓고 화면은 천장을 보고 있질 않나... 주어진 20분 동안 책 읽고 기타 등등의 활동까지 하는 것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심하게 힘든 일이다.

나는 타들어가는 마음과 자꾸 찌푸려지는 미간을 펴고 자본주의 미소를 발사한다. 이런 나의 특기는 도서관에 어린이실에서 일할 때부터 강화되었다. 소리 빽빽 지르고 책을 집어던지는 아이일지라도, 나는 결고 인상을 찌푸리고 버럭 해선 안 된다. 사근사근, 그러면 안 돼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어쨌든 돈은 벌어야지.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다. 물론 하라면 할 순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건 물론이고 그보다 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바로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안정적인 현재의 통장잔고에 조금씩 만족이 축적되다 보면 점점 글을 쓰려는 의지는 도태된다. 간혹 '글 쓰려는 의지'가 거의 퇴화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어쩌면 이게 행복일지도...' 하면서 자신을 자꾸만 돈에게 팔아넘기려 했다. 정확히는 나의 가능성을 팔아넘기곤 '항상 가능성 있는 상태' 속에 자신을 가두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돈 얼마 못 버는 알바를 선택한 건 아니다. 글을 쓰면서 할 수 있을만한 일을 찾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된 것이지. 재택근무를 하니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저녁에 일을 하니 낮에는 글 쓸 시간이 생긴다. 물론 그보다 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욕심이겠지.

그래도 정식으로 취업해서 일 다니는 것보다는 글 쓸 여유를 찾는 것이 우선이라 취업은 미뤘다. 자격증 있고, 경력 있으니까. 언젠가 맘먹고 취업하려면 할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지금 당장은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매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온전한 자유는 아닐지라도, 이런 시간 역시 삶에는 필요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내 자아가 두 개로 분리된 기분이 든다. '작가로서의 자아'와 '가장으로서의 자아'.

가장으로서의 나는 작가로서의 나를 위해 오늘도 돈을 번다. 먹여 살리려면 일해야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더니,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관리비,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식비... 그냥 집에 틀어박혀 사는데 왜 배는 이렇게나 고프고 땀은 왜 나는 거야. 뭔 놈의 돈이 이렇게 많이 나가! 갑자기 성질 뻗치네.

나도 엄연한 가장의 마음가짐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엄마 집에 얹혀살면서 내 자금을 야금야금 모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 이 집에서 쫓겨난다는 현실 공포가 내 어깨에 드리웠다. 이젠 정말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글로 돈을 못 버니 밥벌이를 위해선 인형이라도 흔들고 목이 터져라 동화책을 읽는 수밖에.

오늘도 고생하는 모든 가장들을 위한 파이팅을
살포시 건네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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