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작가 생존기
"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다른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해도 작가 할 거야?"
엄마는 고작 11살 밖에 안 된 나한테 물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나는 엄마한테 혼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던진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당시에는 저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일단 지금 하고 싶은 게 작가니까, 어린 마음에 그렇다고 했을 뿐이다.
나의 작가명 변천사는 다 늘어놓자면 길다. 그중에서 대표적으로 쓴 것은 두 개다.
브런치를 하기 전부터 블로그에도 꾸준히 리뷰 글을 올리면서 시도 때도 없이 이름을 바꿔댔다. 정체성이 없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바꾸는 일이 파다했다. 정체성을 잡지 못하고 혼잡스러운 시기를 지나 정착하게 된 것이 바로 '소설 쓰는 사서'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서인데 소설을 쓰니까, 소설 쓰는 사서.
그러다가 계약이 끝나 도서관에 다니지 않으면서부터 이름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고민 끝에 결론 내린 이름은 '자 스토리(ja's story)'였다. 내 이름 중 한 글자를 따서 나만의 이야기 즉, 나의 스토리라는 의미로 지었다. 히스토리(history)와 비슷하게 나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두 이름 모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첫째로 '소설 쓰는 사서'는 오래가지 못할 이름이었다. 나는 [퇴준생 보고서] 매거진을 통해 도서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담아냈다. 결국 '사서'라는 이름 자체를 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 쓰는 사서'라는 이름으로 살려면 영원히 사서를 해야만 했다. 그러니 나에게는 소용없는 이름이었다.
둘째 '자 스토리'는 흥미를 끌지 못했다.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나에 대해 낱낱이 밝혀야 하는데 그러긴 싫었다. 솔직한 나의 모습을 까발리진 못하고 그저 컨셉질이나 하다가 끝나버릴 것 같은 그런 이름이었다. 그런 이에게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작가 인생 존망의 기로에서 나는 고민했다.
내가 써야 하는 글은 무엇이며 나는 왜 쓰는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름에 드러나야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어떤 이름이든 내가 보잘것없어서 전부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 작가!"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최 작가'라고 불렀다. 주변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불러줘야 그런 힘이 생기고 변화가 일어난다고. 엄마는 철저히 '말하는 대로'의 법칙을 받아들여 작가라는 나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왔던 것이다. 나한테는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을 때면 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의 꿈에 대해 나조차 의심하던 순간에도 엄마는 의심한 적이 없다.
그 굳건한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네가 알아서 잘하니까 하고 싶으면 해'
엄마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처음 작가를 하고 싶다고 말한 8살 꼬맹이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지독한 효녀인가 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세상이 나를 협박해도, 하고 싶은 것에 죽자고 매달려 여태껏 단 한 번도 포기한 적 없으니까. 엄마와의 약속은 사실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지금의 난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적어도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나도 작가라고 불릴 자격, 있지 않을까? 나라도 나를 작가라 부르지 않으면 누가 불러주겠어. 자신에게 당당하게 작가라고 이름 붙이고, 이젠 정말 작가로 살기 위해 독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누가 뭐래도, 나는 영영 작가로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