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 생존기
"그래도 해 봐. 안 될 것 같아도 해 봐.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그만두는 게 어딨어?"
나에겐 고등학교 때의 즐거운 추억이랄 게 크게 없다.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늘 학교에 붙잡혀 성적순으로 차별대우당했던 기억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딱 한 가지 또렷하게 기억하는 말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내게 했던 말이다.
그때 나는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교외 장학금 때문에 급하게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다. 쓰다가 지친 나는 교무실을 찾아가 그냥 안 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선생님이 심하게 꾸짖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의 일까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 내가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제출 기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공모전을 알게 되었다.
보통의 나라면 머리 좀 굴려보고 포기했을 것이다. 몇 년간 장편소설에만 매달리니 단편 소설을 쓰지 않은지도 오래됐을뿐더러, 한 달 안에 써낼 자신이 없었다. 당장 소재를 생각하고 구상하고 틀 잡는 것만 해도 한 달이 걸릴 것 같았다. 게다가 어떻게든 써낸다고 해도 퇴고는 꿈도 못 꾸고 초고본에나 그칠 테니 당선 확률은 낮을 것이다. 상황 판단을 마친 나는 마음을 접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번만이 아니야.
앞으로 살면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만둘래?"
그때 그 말이 나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말투까지 생생하게. 호되게 타박한 건 아니지만 조곤조곤 맞는 말만 해서 내가 다시 자소서를 들고 반으로 돌아가게끔 만들었던 그 다그침. 다른 점은 이번에 선생님 옆에 서 있는 사람도,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도 나였다는 것.
솔직히 이상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을 살피고 승산이 없을 것 같으면 빠질 때도 필요한 법이다. 조금 더 준비해서 완벽하게 꾸리고 도전하는 태도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사람이 언제나 열정 넘치고 뜨겁게만 살 순 없으니까. 차갑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순간들이 우리 삶에는 훨씬 잦다.
도서관에 다닐 때 일이었다. 함께 일하던 내 또래에 경력도 비슷한 사람이 새로 개관하는 신규 도서관의 정규직으로 합격하는 일이 있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선생님이 아직 젊어서 뽑았을 거라는 말들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너도 젊으니 쟤처럼 아무 데나 넣어봐라'라는 망언을 종종 하곤 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나에게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어려서 뽑힌 게 아니라 일단 집어넣고 봤기 때문에 붙었다는 것이다. 경력이 부족하더라도, 이력서가 텅텅 비고 자소서가 엉망이라도, 면접 때 벌벌 떨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보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안 될 거라고 재고 따져서 포기했더라면 붙을 일도 없었다.
"머리로 생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행동을 함으로써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뜻이야.
일단 해보면 새로운 길이 생기지."
내가 좋아하는 만화에 이런 말이 나온다. 늘 무턱대고 달려드는 주인공에게 언제나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고 움직여야 된다던 선생님이 한 수 배우는 에피소드이다. 움직이고 행동했을 때는 생각할 때 찾지 못했던 것들을 얻게 된다. 세상은 가만히 준비만 하는 사람보다 일단 달려들고 보는 사람에게 먼저 기회를 준다.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생각해보니 지금 내 삶 자체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데, 뭘 더 따지겠다는 건가 싶었다.
정말 승산 있는 싸움을 하려거든 당장이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정규직 준비해서 취업을 하는 게 맞다. 취업준비로 24시간을 바쁘게 지내도 모자란 판국에 방구석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노트북 두들기는 형국부터 비합리 그 자체란 말이다. 나는 이미 다른 사람에 비해 불리한 무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승산이니 뭐니 잘난 척 떠들 때가 아니라 주변에 있는 돌이라도 쥐어서 '미쳤다' 생각하고 적진을 향해 돌진해야 한다. 무기가 없으면 이로 물어뜯고 손톱으로 할퀴어서라도 나의 삶에 드리우는 커다란 기회들을 붙잡아야만 한다. 이렇게 사는 삶에 최선조차 다하지 않는다면 남은 내 미래가 불쌍하니까.
뭐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거나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가는 길에 필요한 일이라면 그게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도 일단 달려들어서 끝장을 봐야 한다. 윤리적,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걸 안 하면 뭘 쓸건대?
그다음 공모전에는 뭘 낼 건데?
그럼 다음 공모전은 낼 거야?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딱히 변명거리가 없었다. 언제나 미루기만 하고 포기하다간 결국 그만두는 길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삶을 예방하기 위해선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해야 했다. 될지 안 될지 공모전 하나 낸다고 머리 쥐어뜯으면 단편 소설 하나 쓴다고 내 인생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쓰면 달라질 수도 있다.
지난날의 나는 시작해서 가다가 금방 지치거나, 내 예상대로 되지 않으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극도의 우울감에 빠졌다. 문제는 나의 태도에 있었다. 이상만 높고 현실에서는 안주하려는 나태함과 미련함은 나를 더욱 몰아세울 뿐이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마는 게 자연의 이치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많은 교사와 학생이 오가는 교무실 안에서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의 종류가 어떤 것이었을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자존심 강했던 그 당시의 나라면 단순히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혼을 내?'하고 불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미 그 순간에 내 마음속 깊이 숨겨둔 양심을 찔렸던 게 아닐까.
지름길을 찾는 영리함도 삶에 필요한 태도지만,
일단 써내는 것이야말로 '작가 다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