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 생존기
손가락부터 손목까지 군데군데 빨갛게 부었다. 한 시간 내내 손을 잘근잘근 씹었기 때문이다.
조금 씹다가 빨갛게 자국이 나면 다른 곳을 씹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양손 모두 빨개졌다. 손을 씹는 행동은 불안할 때 나오는 나의 버릇이다. 잇자국이 많아질수록 내 마음도 심란해졌다.
공모전이 2주 정도 남았을 때, 나는 쓰고 있는 소설을 룸메이트에게 보여주어 중간 점검을 했다.
내가 쓰면서도 막막하고 자꾸만 답답했는데 룸메이트는 그 점을 콕 집어주었다. 장르와 주제, 타깃까지 전부 모호하고 단편으로 마무리하기에는 설정이 너무 과하다. 장점은 하나도 살리지 못했는데 단점만 부각되었다. 과하게 솔직한 평가에 마음속의 또 다른 나는 휘청거렸다.
심장이 마음대로 부풀었다가 쪼그라들었다가 난리를 피웠다. 일단 겁부터 났다.
이 많은 문제점을 어떻게 덜어내고 좋은 점들은 또 어느 세월에 쓸어 담지?
덜컥 겁을 먹은 나는 그만두고 싶어졌다. 나보다 더 철저히 준비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겨우 한 달 쓰고서 요행을 바라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빨갛게 부어오른 손가락을 자꾸만 잘근잘근 씹었다. 내가 하는 일들은 항상 이 모양이라는 자책과 함께. 또 내게 남는 건 실패의 역사뿐일까 봐 불안하고 초조했다. 더 이상 물어뜯을 곳도 없이 손이 화끈화끈해져서야 나는 씹는 일을 그만두었다.
일단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간 정말 낭떠러지에서 안전 장비 하나 없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룸메이트가 말한 대로 같은 소재에 대해 다룬 영화나 게임에 대해 찾아보았다. 소재를 어떻게 흥미롭게 다루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얼마나 디테일하고 촘촘하게 이야기를 짰는지 눈에 보였다. 꼭 대단한 설정이나 넓은 배경이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빨갛게 부어오른 손가락은 가라앉았고, 내 마음속의 또 다른 나도 하산을 했다. 더 이상 위험하지 않았다.
괜찮아, 아직 시간 있어. 다시 쓰면 돼.
나는 소설을 갈아엎기로 마음먹었다. 완전히 새롭게, 대신 내가 쓸 수 있는 만큼만. 내가 다룰 수 있는 방향으로 상상하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스토리 라인을 짜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깔끔하고 확고하게 내가 갈 방향성을 정했더니 전보다 훨씬 쉽게 느껴졌다.
그날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 낭비를 한 건 아니었어.
항상 어떤 일에 대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시간 낭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치부하기엔 내 인생에 흘려보낸 모든 시간과 경험들이 아까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고,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주진 않았지만 깨달음을 얻었다. 더불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방법을 찾았으니까 그걸로 된 거다.
글이라는 건 너무 어렵지만, 그만큼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때론 며칠간 쓴 분량을 다 버려야 할지라도, 그것이 새로운 글의 거름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갈아엎어야겠지. 난 새로운 소설이 잘 자랄 수 있게 땅을 갈아 거름을 뿌렸다. 다음 작품은 부디 완성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