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 생존기
벌써 술에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과 급히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 올라탔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택시는 여전히 복잡한 홍대의 상상마당 사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밤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빨간불인데도 무작정 횡단보도를 건너는 탓에 차는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질 못했다.
"아예 가질 못하네요."
"그러게요. 여기만 빠지면 금방 갈 텐데요."
"코로나 규제 풀리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더 늦으면 택시 못 잡을까봐 빨리 나왔어요."
"사람 많으면 택시 잡기 힘들긴 한데, 그래도 손님 방향은 택시 기사들이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요? 저번에는 되게 안 잡혔는데요."
"그게 왜 그러냐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대화는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끊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만났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거의 3, 4년 만이었다. 실로 오랜만의 만남에 다들 들떠서 부어라, 마셔라 하며 속도를 높였다. 막차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슬슬 걱정이 됐다.
엄마 집에 얹혀 살 때는 즐거운 분위기를 깨고 홀로 나서야 하는 게 싫어,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다. 별 시덥잖은 장난과 옛날 이야기가 오가는 술자리에 끼어 알딸딸한 분위기에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독립하고 나니, 내 한계점이 딱 3차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건 즐겁지만, 그렇게 밤을 꼴딱 새는 건 골수 E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몇 안 되는 사람과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하는 건 파워 I인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은 나 말고도 딱 한 명 더 있었다. 아내에게 아기를 맡기고 퇴근 후에 놀러 온 유부남. 나는 유부남이 술집을 나설 때를 노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집에서 나오긴 했지만 막차가 끊겨서 택시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서 있는 택시 안에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밖에서는 시끄러운 클럽 음악이 창문을 때리고 술 취한 사람들의 고함이 들렸다. 결국 내가 어색하게 입을 떼었고, 기사님은 마치 나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술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예전에 택시 기사들은 하루 종일 혼자서 일하기 때문에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문득 그 생각이 나서 열심히 기사님과 대화를 나눴다.
택시 기사님은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주로 하셨다. 나는 맞장구도 치고, 부모가 모르는 자식 입장에서의 이야기도 해주며 나름 선방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게 어려보이는데 굉장히 생각하는 것이 남다르다고 칭찬하시는 기사님에게 내가 글 쓰기 위해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조금 털어놓았다.
집 앞에 도착했을 쯤에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절반쯤은 알고 있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란 것이 꼭 내 나이 또래에 같은 집단에 속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택시에서 내리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말했다.
"나중에 베스트 셀러 작가님이 돼서 다시 만나면 정말 좋겠네요.
손님, 힘내세요."
빈말이라도 고마운 말이었다. 비틀거리고 힘든 나에게는 이만한 응원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말했다.
"저도 꼭 작가 되면 다시 기사님 택시를 타서 아드님 이야기 듣고 싶어요.
기사님도 힘내세요."
어쩐지 앞뒤가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과 근황을 공유하긴 했지만, 서로의 속마음까지 세세하게 털어놓지는 않았다. 우리는 힘들고 심란한 일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마시고 즐기며 신나는 하루를 보내자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속에서는 은근히 불편하고 속상한 일들에 대해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나보다. 처음 만났고, 다시 만날 일도 없는 택시 기사님께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것을 보면.
택시에서 내릴 땐 내가 기사님을 인터뷰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건 인터뷰보단 즐거운 대화에 가까웠다. 이렇게까지 마음 쓰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털어놓고, 남의 말에 귀기울일 수 있었던 게 몇 번이나 되었던가.
어쩌면 이런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닐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태도. 서로 간에 응원하고 위로받아 다시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글. 택시 기사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 나아가 본질적으로 내가 글을 쓰려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언제나 '대화'가 고팠다. 나를 잘 알고 나도 잘 아는 상대방과는 대화가 어렵다. 심도 깊은 토론을 하거나, 아니면 슬픔을 다 끄집어내는 토로만이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나를 완전히 모르고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와는 아무런 정보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해서 대화할 수 있다. 오가는 말 속에서 심심한 위로를 받으며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곤 하는 것이다.
한 때는 화려하고 멋진 글을 쓰고 싶었다.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매끈한 글을 추구하며 자신을 혹사시킨 적도 있다. 철로 뒤덮은 완벽한 구체를 만드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 어려운 일은 그 구체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아주 작은 단 하나의 흠도 용납할 수 없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도 미끄러운 구체 위에는 설 수도, 걸을 수도 없다. 넘어져서 구체와 영영 멀어질 뿐이다. 그러니 누구든 발을 딛을 수 있고 걸어갈 수 있는, 조금 울퉁불퉁해도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글이 어쩌면 훨씬 더 좋은 글은 아닐까.
"잘 쓴 글과 좋은 글은 달라요."
대학에 다니던 시절 교수님은 늘 말했다. 나는 어쩌면 그 차이를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솔직한 고백과 순수한 응원이 오가는 대화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꼭 생판 처음보는 남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누군가와 진솔한 대화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이 사회에는 대화가 점점 줄고 효율적이고 일방적인 인터뷰만 차고 넘친다.
이 냉담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들 그런 방식을 받아들이지만, 사실 우리는 누구나 위로받고 싶어한다. 구닥다리 방식의 대화가 느리고 촌스럽다고 할지라도, 누구도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대화이고 소통이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입술을 열어 마음을 꺼내 보이는 것.
예전에 [버스 기사님께 귤을 드렸다]는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이 공감했던 글이다. 사람들이 그 글을 좋아했던 것은 단순히 '따뜻한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나의 출퇴근길을 책임지는 버스 기사님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글을 비롯해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듯 예술가의 마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글을 쓴 작가와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은 언제나 연결되어야만 한다. 때때로 우리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인물이 남긴 기록과 흔적에서 그 마음을 찾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