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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

전업작가 생존기

by 담작가

거울을 보지 않아도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뒤통수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럼 지끈거렸다. 연쇄작용처럼 속이 뒤틀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의 오장육부를 주물럭거리는 기분에 불쾌한 울렁거림이 일었다. 그 사이 손은 슬그머니 위로 올라와서 내 심장을 세게 쥐어잡았다.

깜짝 놀란 심장이 미친 듯이 뛰더니 이내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키보드에 올리고 있던 손이 벌벌 떨렸다. 숨을 쉬려고 짧은 호흡을 급히 들이마시고 내쉬는데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공황이었다.




나는 공모전에 출품할 때 '기대함'과 '기대 안 함'의 비율을 잘 섞을 줄 안다. 쓸 때만큼은 최선을 다 하기에 기대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지도 않으려고 애쓴다. 너무 기대해버리면 나중에 돌아올 실망에 흠씬 두드려 맞고 좌절해서 다시 일어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이전에 냈던 공모전 예심 결과에 내 작품이 없는 걸 확인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뭐, 다 그렇지, 쯧. 혼자 계속 혀를 찼다.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써 침착한 말투로 혼자 중얼거렸다. 머릿속에선 나를 싫어하는 자아 한 명이 이리저리 널뛰었다. 처음에는 내 작품에 대해, 그다음에는 나의 실력에 대해, 그리고 결국에는 나 자신에 대해 욕설과 비방을 마구 늘어놓았다.


처음 보는 불합격도 아니고, 내 자아의 존재를 몰랐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날따라 그리도 불안했을까.

갑자기 날 감싸고 있는 이 모든 세상이 무서웠다.

앞선 증상들이 순식간에 일어나더니 머리가 얻어맞은 것처럼 띵-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고막이 닫히는 느낌과 함께 삐-하는 이명 소리가 들렸다. 멈추지 않고 빠르게 운동장을 다섯 바퀴쯤 뛴 사람처럼 숨이 찼다. 숨을 몰아쉴수록 오히려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길게 호흡하려고 애쓰면서 등받이에 편하게 기댔다.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계속 손으로 쓸어내렸다. 괜찮지 않다는 걸 다 알면서도 괜찮다고 자신을 달랬다. 나마저 나를 달래지 않으면, 정말 쓰러져서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으므로. 그렇게 겨우 진정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야 내가 방금 좀 이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황
두려움이나 공포로 갑자기 생기는 심리적 불안 상태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공황을 겪는다고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저 저혈압이라서, 빈혈이라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생각만 하다가도 숨이 안 쉬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했던 건 처음이었다.


난 뭐가 그리도 불안했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나는 차라리 신이 있다면 빨리 날 죽여달라고 빌고 싶은 사람이다. 다시 우주를 떠도는 미세한 우주먼지가 되어서 아무 생각도 없이 흘러 다니고 싶다고, 그렇게 소원을 빌고 싶은 사람인데. 그런 내가 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공포를 느꼈을까.

아마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당장 앞이 보이진 않는다. 소설을 쓰고 있는 와중에 공모전에서 떨어졌다는 걸 확인했다면 누구라도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게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무시하려고 했지만 무시하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불안해하면서도 글을 쓰고 싶은 건가?

남들은 내가 대단하다고들 한다. 포기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평범하게 살지 않는다고. 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나도 매일, 매 순간 내려놓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산다. 나라고 꼬박꼬박 통장에 돈 들어오는 직장인이 부럽지 않을 이유가 뭐 있냔 말이다. 각자에겐 각자의 고충이 있는 법이다.

이렇게 두렵고 초조하고 숨 막히는 공포 속에서도 꾸역꾸역 키보드를 두드리며 꿈틀대는 파도를 외면하는 것이다. 내 안의 그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숨어버리면 정말로 모든 걸 포기하게 될까 봐.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정말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뿐이라 쓰는 것이다.




요즘 나의 하루는 게으른 듯 바쁘게 흘러간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은 딱히 돈이 안 된다. 현타를 느끼고 지쳐도 결국 나는 도돌이표처럼 다시 글을 쓰고 있기야 하겠지만, 요샌 '이젠 정말 뭐라도 됐으면' 하는 심정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아무리 응원해도 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 못하다.

내가 쓰고 있는 행위가 쓸모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은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는 것 밖엔 없으니까.

힘들었겠다는 위로와 잘 될 거라는 응원보다는 하트 누르고 링크 공유해서 나의 글을 조금이나마 널리 퍼뜨려줬으면 한다. 아, 아싸라서 안 되나. 그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께라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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