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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전업 작가 생존기

by 담작가

바쁘게 소설을 쓰는 와중에도 자소서를 썼다. 괜찮은 자리가 났다.

웃긴 일이었다. 나는 소설을 계속 쓰고 싶어서 자소서를 썼고, 일을 하는 힘을 얻기 위해 소설을 썼다.

두 가지 중 하나만 쓰고 싶은 것은 어쩌면 나의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마땅한 자리가 나올 때마다 나는 자소서를 썼고 이력서를 냈다. 물론 그 결과는 한 번도 붙은 적이 없다. 슬프지만 실업급여가 끝난 순간부터는 수입이 전혀 없는 생활을 견딜 수가 없어 무조건 일을 해야 했다.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머리 굴리며 자기소개서를 썼다.


자기소개서의 한 문단을 작성하고 나니 아직 일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쳐 버렸다.

글로 돈을 벌고 싶어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못 찾는 걸 수도 있고,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네가 그만큼 쏟아붓지 않았잖아!'라고 말한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생계를 위해 아등바등 사느라 그만큼 신경 못 쓴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어쨌건 나는 성인으로서 혹은 사회인으로서의 내 역할을 해야만 했다. 당장 가지지 못한 직업에 돈을 주는 고용주는 없었다. 나는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았고, 글이 아닌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사실 지금도 도서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설을 쓰지만, 내가 배우고 경력을 쌓은 거라곤 도서관 일 뿐이다. 그러니 끝끝내 이력서를 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종종 현타가 온다.

이렇게 비굴하게 굴면서까지 써야 하는 건가. 내 인생은 영원히 이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선택권이 없다. 나는 아마 평생토록 글 쓰기를 포기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나마 돈을 벌면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삶이 싫은 때도 있었다. 능력도 없고 재능도 없으면서 미련하게 군다고 자신을 몰아세울 때도 있었다. 누굴 탓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 자신을 탓하는 게 익숙해졌다. 그냥 전부 포기하고 살면 편할 텐데. 그런 삶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억지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연민을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을 온전히 미워하지도 못하는 이유는 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는 책과 사람이 가득하다. 넓은 도서관, 수없이 늘여놓은 서가 속에 내가 쓴 책이 한 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오로지 그 생각 하나만으로 버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공간에 대한 나름의 특별함도 생긴다. 책을 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책으로 강연하는 사람이 되어 이 공간을 찾을 것이라는 각오를 새기게 되니까 말이다.

도서관은 나름대로 나의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그곳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나를 부추겨 기어코 쓰게 만든다.

그런 공간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더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는 버팀목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하는 생각 때문에라도 나는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도서관에 자기소개서를 낼 것이다.




소설과 자기소개서 중 하나만 쓰고 싶다는 것은 과연 욕심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예전에 내가 작가가 되는 모습을 상상했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글만 쓰는 삶을 떠올렸다. 하지만 요즘에는 점점 내가 일을 하면서 글을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결국 자기소개서와 소설은 영원히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짝꿍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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