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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짜리 불합격

전업 작가 생존기

by 담작가

면접 전날, 창 밖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급히 옷장을 뒤져 보았지만 하얀 셔츠 비슷한 것조차 나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사 두었던 검은 바지에 최대한 단정하게 코디해 보려고 했지만 죄다 요란해 보였다.

옷장을 뒤지고 거울 앞에 서성거리길 삼십 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옷을 사러 가야 한다.




나름 괜찮은 면접이었다고 자부한다. 물론 그 준비가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이러나저러나 대답만 잘하면 되는 게 면접 아니겠는가. 실제로 나는 인생 첫 면접을 볼 때, 시간 계산도 잘못하고 위치도 제대로 찾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며 면접장 앞에 겨우 도착했으니까. 마지막 순서라 땀 식힐 시간이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게 본 면접도 붙었는데, 이렇게 분위기가 좋았던 면접에서 떨어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상한 질문이 많이 나왔고, 대부분의 질문에는 내가 준비한 대답 안에서 잘 버무렸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필요한 경력을 강조했던 걸로 봐서는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이 무색하게 나는 무참히 불합격을 통보받았다. 심지어 예비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채.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면접을 보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있어서.

나는 전화로 자초 지총을 물었고, 담당자는 말을 얼버무리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미 나는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거나, 욕을 하거나, 셋 중 하나는 했어도 마땅한 구차한 핑계를 들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알겠다고 과할 정도로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끊었다.

아주 오랫동안 허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이의제기를 하거나, 부정채용 신고를 할 수도 있었다. 뭐라도 했어야 했지만 할 수 없었고, 해서는 안 됐다. 이 바닥은 좁았고, 까딱해서 찍혔다간 내 이름은 채용해선 안 되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갔을 테니까. 그 사실을 알고도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오랜만의 면접이 처참하게 흩어졌다. 차라리 이런 일들을 모르고 떨어졌더라면 기분이라도 덜 나빴겠지. '아, 내 자리가 아닌가 보다'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에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번 건 달랐다. 나는 그저 병풍이 되기 위해 면접을 봤고, 바보 취급을 당했다. 나는 그런 일에는 심각했다.

공공기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하루 이틀 관찰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피해자가 되고 나니 타격감은 배가 됐다. 그런 일을 겪고도 언젠가는 다시 여기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내 인생에서 느낀 가장 쓴 굴욕감이었다.

그래, 이런 곳이었지. 그래서 나가려고 했지.

새삼스럽게 퇴준생 보고서를 썼던 이유를 느꼈다. 일을 하지 않는데도 퇴사 욕구가 샘솟게 만들다니. 나는 영원히 이런 기회를 누리는 수혜자가 되진 못하리. 오히려 그 생각 덕분에 나는 깊은 패배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내가 꼭 '완전한 퇴사'를 하고 이 불편한 진실들을 세상에 낱낱이 까발리리. 그렇게 다짐하는 것 밖에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종아리에 들러붙는 축축한 흙탕물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여러 옷 가게를 둘러보았다. 붙을지 말지도 모를 면접 한 번 보자고 비싼 옷을 사고 싶진 않았다. 허용 가능한 범위는 딱 만원 초반대였고, 그 이후로 벗어나면 옷이 아무리 괜찮아도 구매욕구가 사라졌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들린 작은 옷가게에서 나는 딱 만 원짜리 블라우스를 발견했다. 색깔도, 소재도, 디자인도 딱 '만 원스러운' 적당함이었다. 돌이켜보니 만 원짜리 옷을 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님 만 원짜리 옷을 샀기 때문에 떨어진 걸까.

면접을 보기 위해 준비한 시간만큼은 만 원어치가 아닌데.
결국 내가 얻은 건 만 원짜리 불합격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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