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소설 [내일은 내일에게] 리뷰

by 담작가
내일은 내일에게_줄거리


연두는 툭하면 눈물이 터지는 고1이다. 새엄마가 화를 내도 울고, 새엄마의 딸 보라가 맞아도 울고, 죽은 아빠 이야기를 해도 운다. 그녀의 소원은 고3이 되기 전에 몸속의 모든 눈물을 말려버리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연두는 한바탕 싸우던 엄마와 보라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한밤중에 집에서 뛰어나온다. 그 날 이후 엄마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보라와 단 둘이 남겨진 연두는 생계유지 때문에 걱정이 많다. 마침 집앞에 새로 생긴 카페 '이상'의 주인과 얼굴을 트게 되고, 카페에서 알바를 하기로 한다.

학교에서는 늘 그랬듯이 친구 없이 혼자 지낼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만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기에, 누구에게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연두. 그런데 의외로 관심가는 짝궁 '유겸'. 반에서 유일하게 핸드폰이 없다는 접점을 빌미로 연두는 점점 유겸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_소설 추천

연두의 삶은 불공평하다. 가족이란 것이 나의 선택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니만큼 연두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했다. 덕분에 이 세상에 의지할만한 자신의 편도 없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상대도 없다. 매일매일 살아감이 전투와도 같다. 죽을 각오로 살아가야만 하는 지겨운 나날들. 그 속에서도 연두는 살고 싶다고 말한다. 절박하고 간절하게도, 불공평 레이스를 달리고 싶어한다.

그런 연두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삶이 힘들어서, 살아가는 게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나약한 건가? 고민이 된다. 하지만 연두는 그저 아픔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게 내 인생이다. 이게 내 삶이다. 이건 내 아픔이다.'


슬프지만 이게 나에게 주어진 인생인걸 어찌하리. 연두는 불만스러운 삶에 대해 불평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일찍이 죽은 친엄마, 아빠에게로 옮겨왔지만 친아빠마저 죽었다. 눈칫밥 먹으며 새엄마와 새여동생 사이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불만보단 살아있을 궁리를 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살아있음이 아무리 괴로워도, 우리는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늘 살고싶어한다. 살고 싶기에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고,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고, 애정을 담을 대상을 정해 마음을 쏟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특히 무언가 애정대상이 있다는 것은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자신이든, 반려동물이든, 연인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깨지면 종종 죽을만큼 고통스럽지만, 또 다시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해 줄 무언가를 인간은 반드시 찾고야 만다.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자신이 원한 삶이 아니더라도, 죽지 않을 권한 정도는 내게 있으니까.


연두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내비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았던 것이다.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 대해 살아보겠노라고, 악착같이 삶을 원했던 것이다. 늘 흘렸던 눈물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연민과 위로였다. 연민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지만, 그 뒤에는 늘 따뜻함이 숨겨져있다.

이런 연두의 모습에서 나는 문득 내 삶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거지같고, 개같은 세상에서도 나는 결국 계속 죽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 죽으려는 마지막 순간마다 결국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던 것. 연두는 그런 우리 모두에게 눈물만큼 짭짤한 위로를 흘린다.




내일의 아픔은 내일로 미루자_감상평

소설 초반부만 하더라도 뻔한 이야기, 뻔한 소설일 거라 생각했다.

구질구질한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구질구질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 짜증나는 신파극이거나, 오글거리는 희망연주곡이거나. 하지만 이 소설은 구질구질함을 숨기고 다른 이들과 똑같은 척 하려는 우리 모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걱정은 매일매일 생겨난다. 걱정 하나를 해결해도 결국 내일의 걱정은 또 다가오고, 언젠가는 거대한 아픔의 물결이 나를 덮칠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연두가 아는 것은 좀 다르다. 연두는 내일의 걱정을 오늘 해봤자 소용 없다는 것을 안다. 오늘의 걱정으로도 이미 버거운데, 내일의 걱정을 미리 앞당겨서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걱정한 것이 사실로 이루어져도, 그것은 내일의 문제지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픔이 내게 오기 전에 손 놓고 비관하라는 말은 아니다.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닥쳐 올 일들을 막으려고 죽어라 애쓰는 것 뿐이다. 그렇게 해서 오늘을 살고, 내일도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최선을 다했고, 내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거다.


연두 또한 내일의 아픔을 막기 위해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연두의 용기와 삶의 의지를 응원하게 된다.

그렇게 죽어라 살아가다보면, 그렇게 악착같이 오기로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오지않을까?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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