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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과 처음 쌍둥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형제

by 담작가

첫 만남, 첫 사랑, 첫 눈.

'첫'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설레게 한다. 몽글몽글한 감정의 폭풍우 속에서 어렴풋이 피어나는 불꽃처럼 조심스럽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때론 뭉뚱그려진 기억에 '첫'이라는 말을 붙여 아름답게 포장하기도 한다. 분명 우리의 첫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을텐데 말이다.

다시 돌아가서, 다르게 표현해보자. 그 날 처음 만난 사람, 그 시절 처음 해본 사랑, 그 해 겨울 처음 내린 눈. 의미는 상통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하고, 딱딱하다. 사람들 대부분이 '처음'이란 명사보다 '첫'이라는 관형사를 더 선호하는 이유다.


첫은 조심스럽게, 있었는지도 모르게 이미 우리 인생에 도착해 있다.

첫 뒤에는 둘과 셋, 그리고 무수히 많은 순서들이 기다린다. 마치 방석 게임을 하는 사람들처럼. '첫'이 찰나의 순간 인생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는다. 그 뒤로 순서들은 줄줄이 하나 남은 방석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때론 분명 이번 차례에 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서 대신 다른 순서가 앉을 때도 있다. 올 거라고 믿었던 일 대신 예상치 못한 일이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방석을 마련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 인생에 찾아온다.

첫의 위치는 그래서 중요하다. 다른 순서들은 오로지 첫의 뒤통수만 보고 앉기 때문이다. 길잡이가 되는 이 '첫'은 대체 어떻게 이리도 조용히 우리 곁에 몰래 다가올 수 있는 걸까.


한편, 처음은 매 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충분히 내뿜으며 다가온다.

우중충한 먹구름을 잔뜩 몰고 급작스럽게 들이닥쳐서는 우산도 없는 이에게 물음표와 느낌표를 미친듯이 쏟아낸다. 처음을 만나면 긴장되고 겁을 먹는 이유다.

우습게도 처음은 곧 마지막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사실 그대로를 읊는 것과 다름없다. 처음이 지나면 그 다음은 없다. 첫이라는 관형사에겐 뒤따르는 순서가 있지만, 처음이라는 명사는 혼자다. 홀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곤 떠나버린다. 그에게는 어떤 친구도 없다.


첫과 처음, 과거와 현재.
닮은 듯 다른 그들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쌍둥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다.
처음이 왔다 간 자리에는 언제나 첫이 앉는다.

우리 인생엔 외로운 사투를 펼쳐야 하는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처음은 매 순간 나 자신에게 태풍처럼 몰아친다. 그 고독의 시기를 이겨내면, 내 마음은 조금 더 넓어진다. 그제야 마른 방석을 어느 한 구석에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둘과 셋의 자리가 생기고, 더 많은 순서들이 내 마음을 채워 풍요로워졌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처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처음이 마지막이 되지 않게 하려면, 처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우린 믿어야 한다. 언젠가 이 고난의 순간도 지나갈 것이라고. 내 인생에는 둘도, 셋도, 넷과 다섯도 있다고. 나는 그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모든 것이 처음과 마지막으로만 이루어진 삶은 슬프지 않은가.


나에게는 지금 '처음'이 왔다.

처음의 두려움을 첫의 설렘으로 이겨내고 싶었으나, 아직 나의 방석은 축축하고 폭풍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둘과 셋을 찾기 보단, 지금 이 폭풍을 견뎌내는 것에 더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언젠가는 날이 개고 '첫'이 찾아올 그 날을 위해서.

먼 훗날, 첫의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을 떠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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