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풀 보이] 리뷰
영화가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고민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영화.
여기 나오는 남자 배우를 동생이 알려줬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다ㅋㅋㅋ근데 팬 많던데...
배우는 모르겠지만 일단 영화 스토리를 보니
오잉 영화 괜찮을 거 같은데? 좋아 이번 영화는 너로 한다!
라는 식으로 되었다.
기대한 것만큼은 못미쳤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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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보이
줄거리
:닉은 쾌활하고 모범적인 아이였다. 약물에 손을 대서 망가지기 전까지는.
닉의 주변인들은 모두 온 힘을 다해 그를 구제하려고 하지만 닉은 번번이 마약에게 지고 만다.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이 영화는 약물 중독자의 현실과 그 가족의 처절한 단면을 보여준다.
덧없는 헌신의 굴레
영화 속 숨은 의미 찾기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닉이 아닌 데이비드이다. 그는 영화 초반에 엄하고 보수적이며 다소 꼰대스러운 경향이 있었다. 모든 것에 출중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좋은 대학에 원서만 넣으면 척척 합격하는 아들을 기특하게만 여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거 같았던 아빠의 바람은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처참히 무너진다.
재활원에 들어간 닉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눈 데이비드는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아들의 말에 크게 실망한다. 그의 새 아내이자 닉의 새엄마인 캐런은 자기 주변인의 약물중독 치료도 오래 걸렸다며 그를 다독인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
"사방팔방 말하고 다니지 마."
"그러면 좀 어때서?"
"닉을 생각해야지. 계도 사회에 나올텐데 사람들이 알아서 뭐가 좋아."
사실 이건 핑계고, 데이비드는 닉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어디에 내놔도 아깝지 않은 아들의 타락한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않았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고 재활원에 닉을 가두고 희박한 성공률에 기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과거 순수한 아이이던 닉의 모습과 약에 찌들어 있는 닉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곤 한다. 같은 장소이지만, 닉은 너무나도 다르다. 더 다른 것은 달라진 닉을 바라보는 데이비드의 시선이다. 이런 작은 장면들을 통해 점점 무너져가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결국 강조하고 싶은 건 닉이 아닌, 데이비드인 셈이다.
몇 번의 희망과 절망이 반복되자, 마침내 데이비드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 시작한다.
가장 최악이라는 크리스탈 메스에 중독된 아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이것이 어떻게 왜 안 좋은지 조사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본다. 그렇게 아들을 설득하려 애쓰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거친 반응 뿐.
데이비드는 이미 영화 초반과 많이 달라졌다. 심장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아들을 이해해보기 위해 마약을 사와서 직접 해보는 장면은 충격적이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거의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의 표정보다, 상대방에게 아들의 상태를 고백하고 자문을 구하는 덤덤한 표정에 더욱 코끝이 찡했다.
가장 절정으로 감정이 치솟았을 때는, 데이비드와 캐런이 약물중독자의 가족들 모임에 나간 장면이었다. 한 엄마가 말하길.
"우리 프란시스가 일요일에 약물 과용으로 죽었어요. 그래서 애도하던 중에 뭔가를 깨달았어요. 저는 몇 년 전부터 애도하고 있던 거였어요. 그 애는 살아있을 때도 세상에 없었으니까. 산 사람을 애도하는 삶은 너무도 괴로운 삶이에요. (중략) 지금은 그 애가 아프지 않길 빌어요. 안녕, 프란시스."
우리가 아는 마약중독자 이야기는 대부분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며 드라마틱하다. 영화를 보기 전 예측했던 스토리도 그런 것이었다. 심각한 약물 중독에도 가족이 포기하지 않는, 나락에 빠진 스스로를 돌아보고 결국에는 이겨내는. 나는 내가 "뻔한 이야기"를 기대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의 "뻔한 이야기"는 이 영화와 같다. 지루할 정도로 뻔한 패턴과 예측할 수 있는 미래. 불안정하고 절망적인 감정들. 이 영화는 심각한 사회 문제인 약물중독을 고발하는 한편, 약물과 마주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가족들에게 밀착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I didn't cause it. I can't control it. I can't cure it."
"나는 그것을 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치료할 수 없다."
약물중독자 가족 모임에 쓰인 문구이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깊은 자책과 혼란에 빠져있다. 약물 중독으로 인한 피해자는 중독자 본인만이 아니다. 그의 가족도 깊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인 것이다.
그걸 느껴서인지, 데이비드가 닉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미련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 더 답답했을 정도로.
희망의 치사량
감상평
무엇보다 내가 가장 집중해서 보았던 인물은 캐런이었다.
나였다면 남편이 데려온 아들이 약물중독에 빠졌을 때, 저렇게 헌신할 수 있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녀는 강인하지만 부드럽게 아들을 달랬고, 우아하지만 절박하게 아들을 쫓았다. 자신의 현재 행복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닉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자신을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의 모습은 가슴이 아팠다.
영화는 처음 예상했던 이야기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에 지쳐갈 때쯤 깨달았다. 이게 바로 가족들의 마음이구나. 그리고 이게 결국 현실이구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서 재회한 부자는 그저 말없이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영화는 마지막에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닉이 8년째 약물을 끊고 있다는 자막을 띄운다.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닉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는 길고 긴 회고록을 펼쳐놓는데, 그 마지막은 다시 약물을 복용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인가.
헌신적인 사랑과 희망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야 할지, 끔찍할 정도로 지루한 절망의 소용돌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감정이 남았다.
씁쓸함과 무력감과 안타까움과 그리움.
가족이라는 희망은 늘 사람을 거만하게 만든다.
닉은 가족들이 자신을 붙잡아줄 거라는 희망 때문에 자꾸만 나락으로 몸을 던진다.
사실은 그들도 간신히 날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희망의 치사량을 넘어가면 뒤에 남는 것은 포기일 수도 있다.
계속해서 희망이 살아남을 거란 생각을 하는 건 우리의 오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