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 속에 숨은 두려움

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 리뷰

by 담작가


유튜브 광고로 홍보할 때는 보고 싶었는데 넷플릭스 가입을 안했었다.

마침 1년의 무료 가입 기간이 끝난 상황이어서 고민 중이었는데,

고민만 하다가 여지껏 못볼 줄이야.

또 동생의 콩고물 덕분에 영화를 봤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많고 많은 영화 중에 뭘 볼까 하다가,

"아! 나 버드박스 보고 싶어!"

하고 삽화 담당에게 강력하게 밀어붙였더랬다.



버드박스
줄거리

한 여자가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지금부터 여행을 떠날 거야. 아주 힘든 여행이 될 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말해. 하지만 절대 눈가리개를 벗어서는 안 돼.”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여행을 할 건데 눈가리개를 벗지 말라니? 그들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위험천만한 여행을 시작한다.


안대 속에 숨은 두려움
숨은 의미 찾기

맬러리는 산부인과에 다니면서도 아이를 부정한다. 콩알만 했던 아이가 작은 멜론이 될 때까지도,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자세하게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맬러리 뱃속 아이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라이언’이라는 인물과는 안 좋은 끝을 맺은 듯하다. 그 때문에 맬러리는 아이와 가족을 이루는 게 두렵다. 엄마가 되는 것, 가족을 이루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현재 가장 무서운 일이다.

맬러리의 여동생은 그녀의 그림을 보며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여 있는데 아주 외로워."
"외로움은 부수적인 거야.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야."

어둠 속에서는 눈을 뜨고 있어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어둠은 만나지 못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이다. 맬러리가 말하는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이란, 한 몸에 있으면서도 떨어져있는 자신과 태아를 의미한다. 맬러리는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 두려워 집에만 처박혀 그림을 그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이는 커져만 간다.


그러던 중, 세상에 재앙이 일어난다. 사람들 눈에 환각이 보이고, 그 환각이 스스로를 죽이도록 만든다. 즉, 눈을 뜨고 바깥세상을 바라보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재앙을 피해 도망친 곳에서 맬러리는 톰을 만난다.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의를 베푸는 사람이다. 그가 임산부인 맬러리 곁을 맴도는 통에, 두 사람은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 중에서도 톰은 자신이 이라크에서 파병 중에 만났던 가족 이야기를 해준다. 전쟁 중에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아버지 이야기였다. 걱정이 된 톰은 가족을 매일 아침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그가 떠날 때, 가족은 목걸이 하나를 선물했다. 톰이 늘 목에 부적처럼 차고 있는 목걸이였다

"아직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있다고 믿고 싶어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톰이 차고 있는 목걸이는 믿음과 희망을 상징한다. 우리는 안다. 그 가족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그러나 톰은 믿음을 갖고 희망을 생각하려 애쓴다. 그 희망이 지금의 상황을 잊고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 가족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켜주고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어둠 같은 재앙 속에서도 사람을 살아가게 만든다.


무사히 살아남은 톰과 맬러리, 그리고 아이들. 톰은 아이들에게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며 시간을 보낸다. 여름에 보트를 타며 놀았던 것, 커다란 참나무 꼭대기에 올라갔던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헛된 환상만 심어준다고 생각한 맬러리는 톰에게 화를 낸다.

"왜 그런 걸 믿게 해?"
"뭔가 믿어야 하잖아. 믿을 수 있는 게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인데?"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살아남는 건 사는 게 아니야!(Surviving is not living!)"


톰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도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만 사는 것은 더 이상 삶이 아니라고. 그러나 맬러리는 반박한다.

"네 말을 들으면 애들이 죽게 되잖아!"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며 상황을 합리화한다. 아이들의 이름을 짓지 않고 ‘걸, 보이’라 부르는 것도,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대신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게 하는 것도. 모든 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지자면 톰과 맬러리는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맬러리를 통해서는 인간이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차단하는 모습을, 톰을 통해서는 그럼에도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믿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더 이상 지금의 은신처가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맬러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간다. 그러던 중,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환청에 놀라서 아이들의 손을 놓치고 만다. 맬러리는 허공에 손을 더듬으며 들려오는 환청에 대고 소리지른다.

"내 아이들 데려가지마!"

은연중에라도 마음을 쏟을까봐 아이들에게 모질게 대했지만,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아이들과 톰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자신은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엄마라는 것을. 겨우 찾은 보이는 다급하게 걸을 찾는 맬러리에게 말한다.

"걸이 맬러리를 무서워해요."

아, 걸이 정작 무서워한 것은 세상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두려워하고 겁내기보다는 기대하고 설레어한다. 아는 것이 없을수록 두려운 것도 없는 법이다.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어른들은 비참하고 무서운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마치 톰처럼. 옆에 있는 어른이 알려주는 세상이 곧 아이에게 똑같은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보다는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더 많이 알려준다. ‘아이들이 위험할까봐’라는 변명을 하며, 아이들에게 무서운 세상을 세습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모습이란.


맬러리를 움직이게 했던 무전 속 ‘릭’이라는 인물은 말한다.

"급류를 만나면 제대로 봐야 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시각장애인은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무언가 보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안전한 걸지도 모른다. 세상에 닥친 재앙, 악마의 형상을 한 무언가는 결국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게 아닐까. 릭이 말한 “제대로 봐야” 한다는 것은 내면의 두려움을 말한 것이다.

맬러리는 그제야 자신의 두려움을 직시한다. 이제 자신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이 아이들을 잃는 것이었다. 오로지 생존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엄마가 되어 가족을 이루고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버드 박스(Bird Box)’, 의역하자면 새장 쯤 될까? 영화 속에서 새는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하는 존재이다.

새가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맬러리 본인이다. 맬러리는 스스로를 새장 안에 가둔다.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두려워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또 하나는 인간 내면의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안의 두려움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위험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내가 그것과 부딪히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새장을 나가서 직접 겪어봐야만 한다.

결국 맬러리는 은신처에서 나와, 많은 공동체가 살고 있는 곳에 가게 된다. 오롯이 무전으로 짧은 대화만 해본 사람에게 찾아가 그들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비로소 맬러리는 박스에 담아온 새들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자신의 두려움이 해소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바깥세상의 재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무엇이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아마 개개인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각자가 두렵고 무서워하는 것은 다르니까. 하지만 '그것'을 보고도 멀쩡한 사람들은, 아마 그들 스스로가 타인의 두려움이기 때문일 것이다. 범죄자, 싸이코패스들은 타인이 자신을 보고 두려워하길 즐기지 않는가. 그것이 그들을 눈뜨게 만든 이유는 아닐까.

7D36E011-DC46-43A7-85AE-51CC102C243F.jpeg 게리가 그린 그림. 악령의 모습.


안대 속은 과연 안전할까?
감상평

솔직히 말하자면 신선한 영화는 아니었다. 아이디어도, 소재도 모두 이미 접해본 것들이었다. 분석한 걸 정리하는데는 오래 걸렸지만, 분석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하고자 하는 말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내게 다가왔던 이유는, 맬러리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두려웠던 것은 그저 맬러리가 죽을까봐, 톰이 죽을까봐가 아니었다. 맬러리가 급류에서 누군가가 눈을 떠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걸'에게 눈을 뜨라고 하지는 않을까. '걸'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모두 안대를 벗지 말자고 말한다.

A1D4DE26-CE85-4FB5-8412-8E496B109E0E.jpeg 맬러리가 숲속에서 아이들을 껴안고 있는 장면


다행히도 모두 살아남은 후, 맬러리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올림피아는 딸이 태어나면 공주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했다. 맬러리는 그 딸에게 '올림피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그녀는 올림피아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이를 지켜냈다. 아들에게는 '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 톰이 자신을 지켰듯, 자신도 이 아이를 지켜낼 것이라는 뜻일까.

이런 가슴이 따뜻해지는 스릴러라니, 마음에 든다.


영화는 대만족이다.

넷플릭스에 생각보다 볼만한 영화가 많은 것 같다.

저번에 봤던 허쉬도 그렇고, 앞으로도 볼만한게 많은 듯 해서 만족스럽다.

물론 조금 복잡하더라도 많이 고민하고, 잘만들어진 영화도 좋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영화가 느끼는 바가 더 많아서 좋다.

개인적으로는 산드라 블록이 너무 좋았다.(엉엉, 언니 날 가져요)

오션스8도 보고 싶었는데...ㅠㅠㅠ다음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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