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작은 슬픔의 조각들
사막
강수량이 적어서 식생이 보이지 않거나 적고, 인간의 활동도 제약되는 지역.
사막하다
1. 아주 약하다.
2. 가혹하여 조금도 용서함이 없다.
내가 가장 처음 가보았던 사막은 집 앞 놀이터였다.
동네 아이들만을 위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막에 신고 간 운동화에서는 평생 모래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우리 집 현관에는 내가 벗어둔 운동화 탓에
언제나 모래알이 버적버적 밟혔다.
내 작은 운동화는 아무리 털어내고 또 털어내도
엄지발가락 끝에 비비적거리는 모래알이 늘 있었다.
<심장개업> 에서 모래가 드넓게 펼쳐진 환승, 사막은
사람에 따라 아름다운 천국으로도, 끔찍한 지옥으로도 표현된다.
그래서 '사막하다'라는 말은 재미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은 풍경도 다르게 느껴지듯이
'약하다'는 말과 '가혹하다'는 상반된 두 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전혀 다른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이 가혹하게 구는 것은 그만큼 약하다는 증거이니까.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용서하는 일은 마음이 온전할 때나 가능하다.
우리는 마음이 너무 아플 때 '마음이 산산조각 났다'라고 표현한다.
이미 부서져 버린 마음으로 어찌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 넓은 사막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모래알이 과연 어디서 왔으려나.
모래가 그 자리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았겠지.
어디선가 깎이고 깨진 부스러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을 테니까.
그러니 모래알은 사실 슬픔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굴러 떨어지고 바람에 긁혀서 떨어져 버린, 우리 마음의 일부분 말이다.
상대를 용서할 수조차 없이 잘게 쪼개진 영혼의 조각들이
사막에 흘러들어 간 건 아닌지.
환승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이 모여서
사막이라는 슬픔의 바다가 되어버린 것이다.
꼭 사막에 다녀오지 않아도
운동화에서 늘 작은 모래 부스러기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언제나 신발 밑창에 슬픔을 고이 간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먼지처럼 붙어있는 작은 슬픔들이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가 버렸으면.
슬픔의 바다에 몸을 뉘이고 그곳에서라도 서로 위안이 되었으면.
저의 첫 장편소설 [심장개업]이 출간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전 참고 : 네이버 사전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