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책상 구석에 모아두었던 편지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오래된 다짐 중 하나였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생각이 났을 때 바로 하지 않으면
결국 미루고 미뤄 먼지 쌓인 마음들을 방치하고 말 것이었다.
한 때는 친하게 지냈지만 이젠 연락처조차 모르는 친구,
영원할 것처럼 굴었지만 결국엔 미운 감정을 뱉고 돌아선 친구,
어린 나는 가본 적조차 없는 지역에서 마음을 주고받던 친구,
흐릿한 기억을 겨우 더듬어야 떠오르는 친구까지.
별 것도 아닌 '친구'라는 두 글자를 위해
차곡차곡 쌓인 글자들의 뭉치를 버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펼치고 읽고 다시 닫고.
반복되는 행위 속에는 오롯이 순수한 정성만이 가득했다.
미움도, 증오도, 질투도, 비아냥도, 험담도 없는
축하와 고마움과 미안함과 약간의 서운함만이 존재했을 뿐.
과거 그 어느 순간에 머물러버린 마음들이 손을 흔들수록
죄책감에 젖어 묵직해지는 마음을 애써 외면해야 했다.
쓰레기통 앞에서 한참을 숨을 고르다가
겨우 결심하고 봉투 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어떤 마음은 너무나 두툼해서,
차마 손가락으로 짓이겨 찢지도 못할 만큼 커다래서,
조금은 울고 싶었다.
보고 싶다거나, 후회한다거나.
차라리 그런 마음이면 좋았을 걸.
이제는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길,
누군가와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길,
어디선가 제발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기를.
알지도, 묻지도, 혼자 떠벌리지도 못할 흐리멍덩한 질문들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는 오후.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