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럼에도 쓴다

어여쁜 글자를

by 담작가

글을 쓰는 행위가 회의적이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씀으로 바뀌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어떤 글자도 내 손가락으로 내려앉지 못하고 허공을 맴돈다.

지난 한 달여의 시간이 그랬다.


고작 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난무했다.

글자를 쓰고 있노라면 심장이 왈칵 열리는 것만 같아서,

차마 글을 쓰기가 두려웠다.

더 단단하게 쌓아 올리기 위한 글자들의 눌림에

짓이겨지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번번이 눈을 감았다.


글을 쓰는 일이 나조차 위로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을 위로하는 글을 쓸 수 있겠느냐고.

아름답고 예쁘고 희망적이고 맑고 투명한 글자들이

이렇게나 질척이고 끔찍하고 폭력적이고 암울한 세상에

같이 더럽혀지는 것 말고 대체 어떤 쓸모가 있겠느냐고.


그럼에도 나는 쓴다.

계속 써 내려가는 글자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대도

멈춰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어느 한 곳에 머무른 마음을 힘껏 잡아당겨서

다시 오늘의 내게로 데려온다.

삶은 멈춘 적이 없다, 그러니 글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숨소리처럼, 심장박동처럼.


어딘가에 멈춰 선 마음들이

다시 숨 가쁜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어여쁜 글자들을 써야지.

고작 할 수 있는 다짐이라곤 그것뿐.


눈물을 삼키자, 아직 내 차례는 오지 않았으니까.

삼킨 눈물로 무럭무럭 자란 글자들을 쓰자.

조금은 축축할지언정 햇살과 바람만 있다면 천천히 말라갈 테니까.

기다리자, 아침이 오지 않는 새벽은 없으니까.

다시 고요한 희망을 쓰자.

더럽혀진대도 내가 쓰고 싶은 글자는 희망이니까.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빗 속의 타자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