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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출판사는 거르래

반박시... 님 말이 맞을까?

by 담작가

우연히 보게 된 그 목록은 며칠 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책 읽는 사람이라면 걸러야 할 출판사'라는 제목으로

출판사의 이름이 나열된 목록이었다.

거기엔 내 책을 출판한 출판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걸러야 할'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구태여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질이 나쁘다는 걸까.

마땅히 무시해도 될 만큼 별 볼일 없다는 걸까.

그것이 어떤 의미이든

나는 졸지에 '걸러져야 할'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가 되고 말았다.


내 인생에서 길지 않은 시간을 공들여 쓴 소설이다.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던져버릴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삶의 일부나 다름없는 분신을 떼어내는 일이었기에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결정했다.


사실 지금도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것들에 대한 미약한 후회가 남는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를 궁금해하며 미련을 가지는.


그렇기에 선택에 앞서 첫인상은 중요하다.

'첫인상'이라고 말에 사람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책으로서 자신을 보여주는 작가에게는

출판사 역시 자신의 얼굴에 해당한다.

그런데 '걸러야 할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라면,

나의 책 제목 아래 어떠한 출판사에 이름이 걸려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에 소속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걸러야 할 작가'라는 취급을 받게 되겠지.

그게 작가로서 나의 '첫인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더 노력해서 괜찮은 출판사를 갔어야지' 하고.

그런데 '괜찮은 곳'과 '걸러야 할 곳'의 기준은 뭔가?

너무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평가의 기준 아닌가?

개인의 판단을 굳이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가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는 심리는 무얼까.

오로지 나의 생각과 감정만이 정답이라는 건가.


나는 내 책이 부끄럽지 않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책을 만드는 일에 성실히 임했고

함께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어떤 이의 '걸러야 할 출판사 목록'에 의해

나의 결과는 낯부끄럽고 민망한 것으로 전락한다.

개인의 생각이니까,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

백 번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상처받은 마음까지 치유되지는 않는다.


물론 작은 생채기에 불과하지만,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도 꾸준히 쓰고 있지만,

타인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행위는 없어져야 할 문화 중 하나다.

당신이 말한 출판사에서 책임지고 일하는 직원들,

그곳에서 이름을 올리고 글을 세상에 낸 작가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모두,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보다는 백 배 낫지 않나?

어쨌든 무언가를 만들어 냈으니까.


소셜미디어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 쉽게 말하게 만든다.

생각한 것을 다 내뱉으라고 있는 공간이지만, 그렇기에 자중해야 한다.

때론 그렇게 가볍게 뱉은 말들로 간편하게 타인을 공격하게 되니까.


'반박 시, 님 말이 맞음'이라는 말이 있다.

반박 시... 과연? 당신 말이 맞을까?

한 번 더 생각해 보길 바란다.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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