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인데요, 퇴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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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정규직 공고에 지원했던 도서관에서 서류 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믿을 수 없었다.

기뻐서? 아니다. 지금 일하는 도서관에 입사할 때 썼던 자소서를 두세 시간 손본 게 전부였던 이력서로 덜컥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서 문항 중, 두 개 정도는 아예 손도 안 대고 부랴부랴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을 뽑는 자리였지만 서류 합격자는 40명 가량이었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 직장에 들어왔을 때도 이런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메일 제출이 안 된다는, 매우 구시대적인 방식에 짜증을 내며 이력서를 제출하러 갔을 때, 인사담당자가 그 자리에서 합격을 축하해줬기 때문이었다.

"저희 서류접수 15명까지는 무조건 합격이에요."

아뿔싸, 난 공고를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았다. 내가 지원한 부문은 당연히 면접을 안 본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아르바이트생도 면접을 보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당시의 나는 문헌정보학사를 따기 위해 사서교육원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었다. 생애 처음 이력서를 제출한 도서관에서 불합격 통보조차 없이 광탈시켰을 때, 나는 움츠러들거나 조급해하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였다.

암만 자기소개서를 잘 쓴다 한들, 아직 사서자격증도 없는 내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붙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문헌정보학사는 졸업을 해야 사서자격증이 발급된다.) 나는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었고, 특별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닌 아무개에 불과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편했다.




사실 난 너무나 일을 하기 싫었다.
직장인이 되기 싫었다.

나는 사서교육원에 다니기 전, 유명한 예술대학들의 문예창작과에 들어가기 위해 집에 틀어박혀 글만 썼다. 돈 안 되는 전문대 문창과 딱지를 떼고 전문성이라도 인정받아 작가 테크를 타보자는 도박성 심리였다. 하지만 새가슴인 본인 성격 탓에 올인할 수는 없어서 사서교육원을 함께 준비했다. 그 결과 예술대학은 몽땅 떨어지고 사서교육원만 붙었다. 그것도 선착순으로.

밥벌이는 하고 살자는 마음가짐으로 사서교육원을 다녔지만, 뒤로는 꾸준히 공모전을 준비하며 남몰래 작가로 살기를 염원했다. 그렇기에 마음껏 글을 쓰며 작가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지망생 생활을 포기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직장에 얽매여 지내다보면 이것들을 모두 잃게 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 와중에 면접관에게 창피당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 앞서 쓰고 있던 글도 내팽개치고 면접을 준비했다. 무엇이 중요한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언지. 그 땐 따질만한 정신도 없었고, 그런 처지가 아니기도 했다. 면접 준비를 너무 잘한 것이 취직에 대한 간절함으로 비춰졌는지, 그들은 나를 덜컥 합격시켰다.

그렇게 첫 직장에서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계약기간만 버티자는 생각이었다. 이왕 코인 샀으니 존버하다보면 떡상할 때쯤 빠질 수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그러나 어째서인지 나의 사서 코인은 점점 떡락해 나락으로 가버렸다. 결국 어느 지점에서야 느꼈다.

존버만 하다보면 죽을 때까지 존버만 하다 산다.

생동감 넘치는 삶은 못 살더라도 최소한 좀비가 아닌 사람으로는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제 이 지독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니, 탈출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정규직에 본능적으로 지원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함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류가 붙었을 때 기쁘지 않았던 이유는, 정규직이 되면 지독한 도서관 생활을 기약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를 땐 패기라도 있었지, 보고 듣고 느끼며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지금의 나는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다.

나는 면접 준비를 하지 않았고, 결국 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다.

두려웠다. 좀비처럼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딩의 생활패턴이야 익숙해지면 그만이지만, 도서관 사서로 사는 것이 작가의 삶과 얼추 비슷하다는 거짓 희망으로 자신을 속일 미래가 두렵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내일로 미루면서, 안정된 돈벌이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이 무섭다.

계속해서 정규직에 지원하는 것은 죽기 직전까지 일을 시키곤, 죽지 않을만큼의 월급을 주는 직장의 생태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나 생활은 안정적일지 몰라도 나의 정신과 마음은 늘 불안정하겠지. 정규직은, 남들에겐 꽃밭일지 몰라도 내겐 가시밭길이나 다름없었다. 어찌 그리도 뻔히 보이는 불행을 향해 자신을 내몰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영원한 퇴사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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