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를 입기 위해서는 악마가 되야 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리뷰

by 담작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줄거리


기자를 꿈꾸며 뉴욕에 상경한 안드리아.

그녀의 생각처럼 취업은 쉽지 않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포하던 이력서 중 하나가 걸린다.

바로 패션 매거진 '런웨이' 총편집장 '미란다'의 비서 자리.

"그냥... 비서직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왜 지원했냐는 질문에 당돌하게도 대답하는 앤디.

당연히 아무도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랬는데!

세상이 뒤집어질 일이 일어났다. 미란다가 앤디를 자기 비서로 채용한 것이다.

일 년만 버티자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회사생활을 시작한 앤디,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자기한테 욕하지 못해 안달난 것 같은 상사에, 사사건건 비웃고 무시하는 선배, 회사 사람들은 자기가 지나가기만 해도 웃는다.

이 회사, 계속 다녀야 할까?


프라다를 입기 위해서는 악마가 되야 한다
숨은 의미 찾기


이 영화가 진짜 명작인 이유는, 어느 나이에 보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어린왕자를 세 번 읽으면 세 번째에는 울게 되더라는 말처럼. 이 영화도 취업 전에 보는 것, 취업 후에 보는 것, 상사의 자리에 올라간 후에 보는 것. 전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아, 물론 나는 아직 마지막 세 번째는 못 느껴봤지만.

영화에서 앤디의 감정 굴곡은 크게 세 구간으로 나뉜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에는 적응했지만 회의감을 느낄 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돌아봤을 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앤디는 기고만장해 있다. 원래가 잘나고 똑똑하고 1등 아니면 안 해 봤던 앤디는 자기가 취업이 안 되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래서 고고하고 우아한 저널리스트가 아닌, 고작 패션 잡지사에 자신이 이력서를 넣은 것 조차 자존심 상한다고 느낀다.

어쩌면 이 부분은 오랜시간동안 취업준비에 지쳐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요즘 청년들에게는 안 어울리는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시작은 항상 기고만장해 있지 않던가. 쉽게 비유하자면 고1 때는 내가 서연고 아님 안 갈거라고 생각하지만 고3때는 서울권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구리가 우물벽을 다 올라오고 나면, 우물 안을 들여다보며 내가 올라온 걸 보기 바쁜 것이다. 내가 이룩한 걸 자랑스러워하는 시기에는 자신이 원하던 게 아닌 것은 모두 시시하다고 느끼는 법이니까.

그러나 몇 번의 비웃음과 깔끔하지 못한 업무 처리 덕분에 미란다에게 된통 혼난 앤디는 나이젤을 찾아가 한탄을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돌아오는 대답은 그만두라는 말 뿐. 자신의 노력만큼 인정받고 싶다는 앤디에게 나이젤은 따끔하게 말한다.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이 수없이 거쳐 간 이곳을 위해 남들은 죽는시늉도 하는데
자기한텐 그저 스쳐 가는 자리잖아.
그러면서 미란다가 이뻐해 주길 바라? 이해도 해주고 칭찬해주고?"

그제야 앤디는, 자신이 자기 자리에 얼마나 충실하지 못했는지를 깨닫는다. 지금 자신은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기자자리에 앉아있을 누군가가 자신도 부러우니까. 자신과 똑같이 이력서를 내고, 자신과 달리 선택받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 자리를 비하하고 불평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앤디는 자신이 진정으로 노력해보지도 않고 우습게 여겼던 날들을 반성한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대로, 미란다에게 면접 때 말했던 대로 똑똑하고 빠르게 일을 습득해가기 시작한다. 일에 능숙해질수록 주변 사람들은 자신에게 서운함을 드러낸다. 스트레스에 찌든 앤디에게 나이젤은 말한다.

"한쪽이 잘되면 한쪽은 탈이 나지. 승진할 때쯤 되면 인생이 다 뒤집어질 거야."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뭐든 잘 하고 싶은데, 늘상 쉽지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며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 해야지'하면서 날만 보내는 게 대다수다. 그러다 보면 어느 한 쪽을 희생해야 하는데, 그런 건 보통 강제성이 없는 쪽이 희생당한다. 그래서 일보다는 가족을, 돈보다는 열정을 희생하는 편이 더 쉬운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앤디에게 네이트는 말한다.

"넌 항상 그렇게 변명하지. 마치 자기 결정이 아닌 듯이.(중략)
다만 네가 뭘 하든 초심을 지키길 바랄 뿐이야.
처음에는 '런웨이' 여자들을 조롱하더니 너도 똑같이 변했잖아."

그래, 사실은 우리의 결정이었다. 친구, 연인, 가족, 열정 모두 내가 외면하고 희생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내 결정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변론이지만. 어쩔 수 없었음에도 그것들을 지키지 못한 것 또한 자신의 잘못이다.

우리는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많은 어른들을 본다. 어릴 때는 '난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걷다보면 모두가 그런 길로 가는 선택에 놓이게 된다. 조금 더 안정적이고 확실한 현실,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이상. 지쳐가는 때에 주어지는 달콤한 선택지는 우리를 흔들리게 한다. 처음 한 두 번은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이 합리화 될 수 있지만, 계속해서 반복하다보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앤디는 에밀리대신 파리의 패션 위크에 참석하게 된다. 새로운 디자이너에 대한 사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미란다는 자기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오랜 동료인 나이젤을 배신한다. 미란다에 대한 존경심과 동정심을 갖고 있던 앤디는 이 일에 큰 충격을 받는다.

다음 일정을 향해 가는 차 안에서 미란다는 앤디가 자신을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앤디는 자신은 함께 일하는 동료를 배신하는 그런 짓은 하지 못한다며 대꾸한다. 그러자 미란다는 단호하게 받아친다.

"벌써 했잖아. 에밀리한테. 넌 분명 앞으로 나아가기로 선택했어. 이런 삶을 원하면 그런 선택은 필수지."
"이게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요? 전 당신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요?"
"웃기지 마. 누구나 이런 삶을 원해. 다들 우리처럼 되길 원해."

그 말을 던지고 몰려드는 플래쉬 앞에 웃음지으며 나아가는 미란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고, 출판사 회장은 자신을 자르려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웃는다. 그런 미란다를 바라보던 앤디는 뒤돌아 가버린다. 자신이 한 쪽을 포기하면서까지 얻고 싶은 건, 남을 짓밟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앤디가 이력서에 주구장창 썼던 기사 이야기를 혹시 기억하는가? 경비 노조를 옹호하는 글. 그녀는 사회 어두운 곳을 파헤쳐 진실을 드러내고, 힘겨운 사람들을 응원하며 함께 살아가는 글을 쓰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있는 자리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곳이다. 누군가를 짓밟지 않으면 자신이 짓밟히는 곳, 빛나기 위해 아픔을 감추고 웃어야 하는 곳.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깨달은 앤디는 미란다를 떠난다.

미란다는 프라다를 입어서 악마인 것이 아니다. 프라다를 입기 위해 악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선택을 비하할 수는 없다. 자신이 악마가 되어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자리, 진심으로 자신이 하고 싶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 앤디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었던 것 뿐. 제목은 프라다라는 옷을 걸치기 위해서는 그만한 책임과 의무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새로운 면접을 본 앤디. 미란다가 면접관에게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남겼다는 걸 알게 된다.

"내게 가장 큰 실망을 안겨준 비서이다. 하지만 채용 안 하면 당신은 멍청이다."

면접을 보고 길거리에서 차에 타는 미란다와 마주한 앤디. 웃으며 인사를 던지지만 미란다는 무시하고 차에 탄다. 그러나 차에 타서 앤디를 바라보며 웃는 미란다. 그토록 유명한 마지막 장면의 의미는 해석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웃지 않는 미란다가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극찬'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미란다가 앤디에게 자신을 닮았다고 한 것은 아직 유효하다. 앤디는 자신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선택을 했다. 미란다는 그 선택을 존중하며, 응원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란다가 타고 있는 차가 지나간 반대 방향으로 앤디는 걸어간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가 선택한 길을 향해 나아간다.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던 이상에서 멀어졌다는 걸 깨달아도 과감하게 뒤돌지 못할 수도 있다.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는 않으니까. 행복보다 명예를, 열정보다는 돈을 더 비싼 값에 쳐주는 세상이 아닌가. 현실적으로 더 화려하고 안정적인 쪽을 택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누구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택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후회하지 않을만한 선택을 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길에서는 내가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물고 있다면, 고민되면서도 떠나지 못한다면 부디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내가 지금의 선택에 대해 책임질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을 테니까.


앤디가 프라다를 벗은 이유
감상평

영화에는 레전드로 회자되는 여러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이번에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은 몇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에밀리가 심한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면서도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다.

물론 앤디에게는 런웨이가 맞지 않는 곳이었지만, 에밀리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미란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말도 안 되는 수발을 들면서도 이 곳에 남아있기를 원한다. 때로는 지치고 질리고 때려치고 싶을지라도, 자신이 이 일을 사랑한다는 걸 상기하는 것이다. 온갖 명품과 파리 여행,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때문이 아니라 이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이 원하던 것이라는 점에서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두 번째는 앤디와 톰슨의 대화였다.

"하지만 남자였다면 사람들은 그녀를 존경했을걸요."

미란다도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을 것 같던 마녀에게도 가정이라는 허점이 있을 줄이야. 이혼 후 만난 두 번째 남편마저 미란다를 위한 희생이 싫다는 이유로 그녀를 떠난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지 알면서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미란다. 앤디는 그런 미란다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옹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는 왜 일과 가정 모두에 완벽해야 한다는 건지. 미란다가 가진 권력과 명예를 얻는데에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노력과 전쟁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쟁취한 자리에서, 가정에는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당하는 미란다. 이런 이중적인 잣대는 십여년 전 영화에서 뿐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미란다라는 캐릭터가 밉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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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마냥 어리던 학생 때는 그냥 재밌는 영화였는데, 지금 보니 이렇게 서글프고 공감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취업을 하고 영화를 보니, 앤디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곳쯤, 금방 지나갈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습게 생각한 곳이 얼마나 전쟁터 같았는지 깨닫고는, 나도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빈틈을 보이기 싫어서, 모든 것에 완벽해지려고 했다. 그렇게 익숙해진 후에는 나도 모르게 이 안정된 생활이 계속되길 원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글은 잊혀질 뻔 했다. 많은 고민의 시간을 거쳐 지금의 나는 글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예정이다.

아직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내 삶이 오롯이 나를 위해 쓰여지도록 살 것이라는 점다. 소중한 사람과 손을 잡고, 내가 원하는 모습의 미래를 그려 나가면서. 그렇게 살기 위해 살아가는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던지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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