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어린 왕자

소설 [어린 왕자] 리뷰

by 담작가
어린 왕자
줄거리

6년 전, 나는 사하라 사막에 홀로 떨어진 적이 있다.

어릴 적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렸다가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잔소리를 들은 후,

나는 화가가 아닌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

고장 난 비행기를 고치고 있는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한 소년.

"나한테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귀찮았던 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주었다.

"아니, 이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잖아. 나는 양이 필요해."

나는 깜짝 놀라 소년을 쳐다보았다. 이 작은 소년은 누구일까?


내가 만났던 어린 왕자
숨은 의미 찾기 - 고백

이 이야기를 뜯어내 분석하고 따져 든다면,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던진 물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책은 해석하는 것이 의미가 없으므로, 그저 진솔하게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해볼까 한다. 아마 나는 어린 왕자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 아마 어린 왕자가 나를 만나러 온 적이 있을 것이다.


아주 어릴 적의 나는 책을 좋아했다. 걸음보다 말이 빨랐던 것처럼, 나는 글을 금방 익혔다. 그리고 글의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들어서는 온갖 책들을 다 읽어 내려가곤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매료된 나머지, 나는 급기야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작 내 나이 8살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그런 어른이 존재하나 보다. 내 주변 어른들은 하나같이 나의 멋진 꿈을 비웃었다. 돈도 벌지 못하는 작가를 해서 무엇하느냐고. 그래서 나는 외교관이 되기로 결심했다. 똑똑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모두가 부러워할 직업을 갖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더 나이를 먹은 후에, 문득 교실 뒤 게시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학기 초에 담임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적어서 내라고 했다. 나는 지체 없이 '외교관'을 적어서 냈다. 그때 내가 적은 글씨가 붙어있었다. 그 글씨가 아주 낯설었다. 내 글씨인데 내 글씨가 아닌 것 같았다. 내 꿈인데 내 꿈같지 않았다.

그 순간 충격을 받아 약간 방황했다. 오랫동안 돌고 돌아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하지만 그냥 글을 쓰는 것이 아닌,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멋진 글을 내 손에 쥐고 세상을 평정할 거란 생각을 하곤 했다. 인정한다, 나는 장사꾼이 되어 있었다. 내 꿈의 무게를 재고 계산해서 금고에 가둬두기만 했다. 늘 바빴지만 왜 바빴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글을 계속해서 써 내려갔던 것만은 기억난다.

그러나 내 체질이 타고난 장사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계산하고 바쁘게 생활하는 것이 질렸다.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거울을 봤을 때의 내 모습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내가 아니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많이 갖지도 못한 그 모습에 절망한 나는 거울을 등지고 앉아 나를 외면했다.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서,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단다."

성실하게 살고 싶은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 부끄러워서, 나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성실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면 성실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그 당연한 답이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바로 그때, 어린 왕자를 만났다.

마음속에서 말을 걸어온 어린 왕자는 나를 혼내지도 않았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금방 사라졌지만, 그 잔상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그건 어릴 때의 나였다. 가장 순수한 나의 모습. 보이는 것을 손에 쥐기 위해 욕심을 부리던, 이루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주저앉은 내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그냥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좋으니까.

만약 누군가 내가 글 쓰는 것을 비웃어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으니까. 내게 중요한 무언가는 글 안에 있으니까. 이 글 너머에 눈으로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는 그 짜릿한 행복을 나는 계속 누리고 싶다.


가시 네 개 달린 장미를 안아주는 법
감상평

내겐 아주 오래된 장미 한 송이가 있다. 나는 그 장미에게 물도 주고 덮개도 씌워주었으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켜봐 왔다. 그리고 결국 알아냈다. 가시가 달린 장미는, 결코 다치지 않고는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을.

사실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달려있다. 심지어는 내가 누군가의 장미가 되고자 할 때에도, 우리는 가시를 세운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 모두 호랑이나 양을 쫓아낼 발톱이 필요하니까.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무조건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세우는 걸지도 모른다.

그 향기와 아름다운 자태, 모든 것들을 품기 위해서는 가시까지 끌어안아야 한다. 장미를 돌보게 된 이상, 내게는 장미에 대한 책임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장미의 의미는 다르다. 누구한테는 소중한 사람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포기하지 못할 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장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삶은 너무나 쓸쓸할 테니까. 담벼락에 오천송이 장미가 피어있더라도, 나만의 장미 한 송이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

그렇게 기꺼이 나를 기쁘게 해 준 장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온 힘을 다 해 안아주는 것 밖에 없다. 그렇게 조금씩 다쳐가며 장미를 안아주다 보면 알 것이다. 내가 찔려서 다칠지라도, 결국 장미는 내게 그것 이상의 가치를 준다는 걸 말이다.


렵게 생각하고 해체해서 분석하고 싶지 않았다.

힘차게 나아가기로 했지만, 어딘가 공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을 씻어내고 다시 나아갈 용기를 주는 책을 읽고 한 해를 시작하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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