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평범한 마법사인데요?

소설책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리뷰

by 담작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줄거리

고작 한 살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어 이모네 집에 얹혀 살게 된 소년, 해리 포터.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계단 밑 벽장에 사는 자신에게 편지가 온다.

페투니아 이모와 버논 이모부는 그 편지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지만, 편지는 끈질기게 해리를 찾아온다.

폭풍이 치는 밤, 아무도 없는 섬까지 도망간 그들에게 거인 한 명이 찾아온다.

자신을 해그리드라고 소개한 남자는 해리를 보며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할 '마법사'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평범한 마법사인데요?
숨은 의미 찾기

그런 때가 있다. 가끔씩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싶은 날들이. 더벅머리 소년과 함께 마법을 부리며 위대한 모험을 떠나고 싶을 때가. 그렇게 해리 포터와 마법학교 호그와트는 어느 새 나에게는 익숙한 사람, 익숙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놀랐다. 해리 포터 영화는 그렇게 많이 봐 놓고서, 책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해리 포터 덕후들은 영화에 나오는 내용 그 이상을 알고 있던데, 그런 지식은 아마 책에서 읽지 않았을까 싶었다. 영화에서 잘린 부분들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마법에 관련된 이야기를 읽으면서 심오한 상징과 의미를 찾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인정해야만 한다.나는 그토록 염원해왔던 호그와트 입학생이 아니라는 것, 나는 결코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

나는 결국 머글이라는 것.

나는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머글이므로, 마법사 세계에 대해 해석하는 방법 밖에는 그들의 삶에 다가갈 기회가 없다. 머글의 입장에서 바라본 해리 포터의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보도록 하겠다.

예전에는 거론된 적 없던 조앤 롤링의 여러가지 논란들이 최근에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작품에 대해서 작가와 시대적 배경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작품 자체로만 보자면, 정말이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밖에는 말 할 수 없다.

조앤 롤링이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소설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강자라고 할 수 있다. 갖가지 떡밥을 흥미롭게 뿌리는 방식이며, 그것들을 수확하는 능력까지... 소설계는 해리 포터가 나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아쉬운 건 이런 작품을 써낸 작가의 행보 뿐.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판타지라는 장르가 가진 장벽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판타지를 녹여낸다는 것은 사실 과감한 시도였을 것이다. 지금은 물론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문, 현실감 넘치는 판타지가 많이 생겼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인식이

'판타지=온전한 세계관'이라는 편견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해리 포터라는 작품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런던 킹스크로스역으로 이끌었던가. 9와 3/4 승강장을 향해 돌진한 많은 이들이, 해리포터가 왜 대단한 작품인지를 입증해주고 있다. 어쩌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승강장은 그냥 하늘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 하늘로 날아가서 무지개를 넘어가면 있다, 뭐 그런 식으로 학교에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현실에 있는 평범한 역을, 평범한 승강장을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다. 조앤 롤링은 평범한 머글들로 하여금, 자신도 이 곳을 지나 호그와트에 입학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의 기회를 준 것이다.

이 얼마나 친절하고 유쾌한 판타지인가.


하나의 세계관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힘들다. 무언가 한 가지 요소를 깨우치기 위해 그 전, 그 전의 것들을 다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C를 알려면 B를 알아야 하는데, 이 B를 알려면 A를 알아야한다, 뭐 그런 식이다. 대부분의 장대한 판타지가 장벽이 높은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나는 아직도 마블 세계관에 접근하지 못했다. 무언가 하나를 질문하면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열 개의 질문이 또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덕후가 될 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그 세계에 빠져들기란 힘든 일이다.

그러나 해리는 독자와 마찬가지로 '무'의 상태다.

제 생각엔 뭔가 큰 실수를 하신 것 같아요.
마법사라뇨, 제가 마법사라니 당치도 않아요.

영웅으로 추앙받는 주인공조차 모르는 세계라니. 어린 학생들과 함께 차근차근 알아가는 전개방식은 독자를 무장해제 시킨다. 그냥 주인공이 가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독자는 이 세계관에 매료된다. 세계관을 가르치면서 독자를 설득시키다니.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가장 어려운 일을 한 것이다.


게다가 해리포터는 성장물이기도 하다.

해리는 무기력하게 미소 지었다. (중략) 모자가 분류하는 어느 곳에도 자신은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만일 그 모자가 약간 소심한 사람들을 위한 기숙사를 언급했다면, 거기가 바로 자기가 들어갈 기숙사일 것이다.

해리는 더즐리 가족과 살면서 자신마저 자신을 무시한다. 호그와트에 가기 전부터, 자신이 마법사가 아니라 평범한 소년이라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같은 바보는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둥, 자신이 사람들을 실망시킬 거라는 둥. 마법사 세계에서의 해리는 아주 위대한 유명인사지만, 해리는 그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자신이 무엇에 대항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바로 불의다.

난 그저 조금 더 늦게 죽는 것 뿐이야. 왜냐하면 난 어둠의 세계로는 절대로 가지 않을 테니까! 난 반드시 오늘 밤 저 지하실 문을 통과할 거야. 너희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절대로 날 막지는 못해! 볼드모트는 내 부모님을 죽였어, 생각 안 나?

잘못된 것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불의를 막기 위해 맞서 싸우는 것. 그것은 누군가가 알려주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배우는 것이지. 해리는 자신에게 그 깨우침을 상기시키고, 주변인도 깨우치게 한다. 이 얼마나 그리핀도르 스러운지.

해리가 볼드모트(난 물론 이 이름을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위대한 마법사 덤블도어가 말했다. 모든 사물에는 정확한 이름이 있다고. 그 이름을 말하기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나는 볼드모트를 볼드모트라고 부를 테다.)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마법사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불의를 앞세워 나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자들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의 사촌 두들리를 생각해보라.

그래서 해리는 잘못된 것들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소년으로 성장하게 된다. 두들리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이모와 이모부가 차별대우하며 아동학대를 범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신을 소중히 알 줄 알게 될 것이다. 거만하거나 무례하지 않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해리 포터는 아주 인간적인 영웅이다.

이런 점에서 새삼 깨닫는다. 해리포터가 사실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였다는 것을. 모든 동화는 위대하다. 단순한 진리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도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해리포터와 함께 자랐다는 사실에 가슴이 새삼스럽게 벅차오른다.


호그와트행 급행열차
감상평

내용과는 별개로 이번에 해리 포터를 읽으면서 느낀 건데, 왜 조앤 롤링이 이혼녀라는 것에 사람들은 그토록 집착했을까.

해리 포터는 우리가 모르는 마법사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를 써낸 작가다. 그게 전부이다. 그냥 작가일 뿐인데, 해리 포터에 대한 광고를 볼 때마다 '이혼녀'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했던 것이 생각난다.

어릴 때는 그녀가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이라는 정도로 해석했지만, 이제는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여성이 갖는 사회적 지위가 거의 없을 적, 이혼여성이라는 타이틀은 반전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런 타이틀로 홍보하려고 하면 큰일나겠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 뇌를 비우고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절실하다. 아마 예술의 본질이라는 건 여기에서 나오지 싶다. 그냥 재밌는 것, 즐거운 것, 즐길 수 있는 것. 언제부터 예술이 어렵고 심오하고 복잡해진 거지? 예술의 목적은 한 가지다. 인간에게 정신적인 쾌락과 안정을 주는 것.

예술은 그냥 즐겨야 한다.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남은 한 마디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말이었다. 간단한 말이 감동을 주더니, 이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런 걸 읽다보면 내 창작욕구도 불타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이나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단순한 열정이 피어오른다.

내가 가끔 해리 포터를 정주행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어릴 적으로 돌아가게 할 뿐 아니라, 그 때의 마음까지도 생각나게 하니까. 어릴 때의 내가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느끼는 걸 남들도 느끼게 하고 싶어서였다. 나만의 이야기로 남들을 재밌게 웃기기도, 눈물나게 슬프게도 하고 싶었다. 해리 포터는 그 때의 그 다짐을 생각나게 한다.

요약하자면, 초심 잃을 것 같을 때 보면 좋은 작품인건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미래가 불투명해 보일 때마다, 내 꿈이 막막해보일 때마다, 호그와트행 급행열차를 타련다. 언젠가 머글에게도 호그와트를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까?

글 ㅇ없는 핼이.png

해리 포터 시리즈를 다 읽고 리뷰하겠지만, 주구장창 해리 포터만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책을 다 읽는 게 목표고, 가끔 막힐 때마다 비상 탈출구로 해리 포터를 찾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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