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동] 리뷰
시동
줄거리
택일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반항아다.
자신을 한심하게 보는 엄마, 정혜와 있어봤자 싸움만 할테니 집을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택일.
같이 돈이나 벌자는 절친 상필을 떨쳐내고 발 닿는대로 향한다.
우연히 들린 장품반점에 배달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주방장 거석이형과 이를 갈며 지내면서 어느 새 장품반점 식구들과 정이 든 택일.
어느 날 상필에게서 온 연락 때문에 엄마에게로 한 달음에 달려가는데...
뇌를 아무리 비우려고 노력해봐도
숨은의미찾기
기대를 조금도 안 하고 봤지만, 그것보다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 가서 본 건 아니고, 티빙에서 대여로 구매해 봤는데...그 만원조차 아깝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구매가 14900원으로 더 싸서 구매하려다가, 한 번 보고 안 볼 것 같아서 대여한건데...구매했으면 더 아까웠을 듯.
원작 웹툰은 벌써 유료화된 바람에 아예 살펴보지를 못했다. 무료분만 살펴봤을 때, 도입부는 잘 살린 것 같았다. 주인공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열쇠일테니 주인공 얘기를 부실하게 했을 리는 없고. 전체적으로 주변인물들의 에피소드를 없앴다. 거석이형도 어떻게 보면 택일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인데, 그냥 암시하는 내용만 있을 뿐, 자세한 뒷 얘기가 부족하다.
영화 러닝타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랬다 하더라도 캐릭터만 남기고 캐릭터의 이야기를 없앤 건 과한 욕심으로밖에 안 보인다. 각색을 할 거였다면, 인물을 빼고 줄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터. 어느 인물에 집중할 것인지,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감독의 욕심이 부른 참사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 소경주라는 인물.
톡톡 튀는 빨간 머리에 재빠른 주먹, 도발적인 말투까지. 잠깐 본 게 전부지만, 원작을 철저히 살렸다. 문제는 캐릭터만 살렸지, 그 에피소드까지 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스쳐지나가기에는 아깝고, 큰 비중을 두기에는 부담스러운 캐릭터다. 어쨌든 거석의 비밀이 드러나는 계기를 만드는 인물이기 때문.
그렇다면 약간 아쉽더라도 캐릭터를 약하게 만들거나, 아예 다른 인물로 만들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욕심나는 캐릭터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려면 그렇게 했어야 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배달원 배구만.
영화에서는 거의 역할이 없다시피한 인물이, 원작에서는 개인 에피소드가 있다고 하던데. 이렇게 확 죽일 거였다면 차라리 소경주라는 캐릭터의 역할을 대신 부여하고 새로운 인물로 각색하는 게 나았을 거 같다. 그게 아니라면 에피소드 없는 그냥 평범한 주변인물로 두든가. 둘 다 사연을 주렁주렁 달고 있으면서 언급 한 마디로 끝나버리는 건, 캐릭터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다.
특히 택일과 경주는 티격태격하는 콤비 느낌을 잘 살려서 더 아쉬웠다. 경주와 구만의 역할을 합쳐도 될 뻔했단 생각이 드는 게, 복잡한 가정사가 비슷한 느낌이라서 더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문제는 상필이다.
허름한 건물로 면접 보러 들어갈 때부터 알아봤지만, 사채업자의 길로 빠지는 모습에서 택일과는 상반된다. 똑같은 길을 걷던 친구들이 갈림길에서 헤어져 가는 듯한 연출은 뭔가 아련했다. 중반까지는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후반에 감정선 처리가 하나도 안 된다. 조금 더 길고 섬세하게 다뤘어야 할 감정선을 대충 무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상필을 대충 넘기는 것은 택일(장품반점 식구들)의 비중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일텐데. 과감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상필은 없애는 게 맞았던 것 같다. 만약 상필이 없었다면, 굳이 사채업자들을 들먹일 필요도 없었고, 인물관계도도 훨씬 깔끔해졌을텐데. 할머니랑 같이 산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올드하고 진부하다.
작중 인물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가 작품의 완성도를 만든다는 뜻이다. 시동의 인물들이 끌어간 이야기의 모습은 잘 모르겠다.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다. 인생이 원래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라서 일단 시동을 켠다는 식의 해석은 성립할 수 없다.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방금 지나간 순간마저도 우리에게는 과거다. 영화는 관객에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전개시켜주되, 지나간 과거를 확실하게 정리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야기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고, 인물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선택지조차 알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난다. 이건 열린 결말이 아니다. 마법처럼 한 순간 뿅, 남은 먼지 털어버리듯 복잡한 이야기를 쓸어버리는 건 올바르지 못한 이야기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도 없이 대충, '해결됐습니다'하고서는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의 전개는 아주 곤란하다.
인물들이 직접 갈등을 해결한 게 아니라, 그냥 씬이 바뀌면서 전지적 감독 시점으로 해결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갈등을 해결한 사람은 거석 뿐. 그나마 마블리가 캐리했다는 말이 내게는 새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뇌가 복잡할 때 보면, 더 복잡한 영화
감상평
기대를 안 하고, 뇌를 비우고, 그냥 웃으려고 보는 영화라고 해서 봤는데 결론적으로 더 복잡해졌다.
B급 코미디를 만드는 게 사실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그 어떤 탄식도 하지 않게 만드는 영화를 만드는 게, 차라리 주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어떤 영화든 보다보면 뻔하고 진부한 클리셰가 있다. 그런 걸 보다보면 사람은 '아, 또야?'라는 생각을 절로 하기 마련이고.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아..."라고 탄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혹평을 하는 이유는 염정아느님을 겨우 그런 식으로밖에 못 썼다는 점에 있다. 악당의 뒷모습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따라가는 염정아. 그 때까지만 해도 "그래, 곽미향님. 아갈머리 좀 다 찢어발겨 주세요ㅠㅠ" 하고 있었다. 무언가 엄청난 사이다비가 내려올 기세.
그런데 그냥 엽기 코메디로 싸대기를 내리꽂는 순간 "아..."하고 말았다. 염정아가 배구를 했던 떡밥을 풀려는 건 알겠다. 근데 그 싸대기 한 방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게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물론 영화가 모든 걸 설명해주고 보여준다면 재미 없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현실감이 너무 없으면 보는 사람이 꼬투리를 잡고 싶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은 거다.
그 싸대기가 내리꽂는 순간 엄청난 실망감과 후회감이 밀려들어왔다. 리뷰 하려다가 말았던 해피 데스데이 투보다 더 괜히 봤다고 느낀 영화였다. 영화관 가서 돈 주고 볼 뻔한 걸 아껴서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너무 충격적이라 조만간 좋은 영화를 봐야할 것 같다.
7일 대여했는데 딱 한 번 봄.
영화 리뷰 때문에 잠깐 중간 돌려본 거 빼고, 가족들 누구도 다시 보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