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만든 괴물

청소년 소설 [순재와 키완] 리뷰

by 담작가
순재와 키완
줄거리

순재와 키완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아이들이 순재를 찾으면 키완도 있었고, 키완을 찾으면 순재도 있었을 만큼, 두 사람은 각별한 사이였다.

그러나 이내 키완의 투덜댐을 견디지 못한 순재는 키완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수상한 아이, 필립.

필립은 특히 순재에게 냉랭하다.

필립에게는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어른들이 만든 괴물
숨은 의미 찾기

※스포주의 - 반전이 나오니(결말은 스포안함), 원치 않는 분들은 책을 읽고 오시길※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립은 기계였다. 80년 후의 키완이 만든.

9살의 순재는 10살을 맞이하지 못한 채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충격을 받은 키완은 자신의 온 생을 바쳐 순재와 똑같은 모습의 인공지능을 구현하게 되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필립이다. 키완은 필립에게 순재를 구하라는 임무를 주어 80년 전으로 돌려보낸다. 그렇게 해서 순재와 키완 사이에 필립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필립은 이를 상당히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자신같이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어낸 것은 인류역사의 한 획을 그은 것이나 다름 없다. 이는 어느 9살 꼬마의 희생으로 얻은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9살 꼬마의 목숨으로 더 많은 인류를 살릴 수 있다면, 당연히 순재가 죽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는 것이 필립의 입장이다.

"순재가 진정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도, 로봇도 아닌, 비정함 그 자체였다.
괴물은 우리 안에서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린다.
잡아먹히기는 쉽고, 떨쳐 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학생 때부터 들었던 말이지만, 여전히 몇 년을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말이 있다.

"생산적인 일을 해라."

사실 뭐, 이게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말일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 가치있는 일을 찾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생산성 있는 일을 하라는 의미라면 말이다. 하지만 내게 그런 말을 했던 어른들은 하나같이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그들에게 있어 재미로 책을 읽는 것은 비생산적인 것이며, 수학문제를 하나라도 더 푸는 게 생산적인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말들을 들으면 늘 의문이 들었다. 생산성 있는 일만을 한다면 그것은 사람인가?

어른들은 계산적이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결과'만을 납득하려 한다. 그리고 그런 결과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아이에게도 그대로 적용한다. 안타깝게도 그 시선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온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계가 되어간다.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 아이는 다시 기계같은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기계가 되길 강요한다.


순재와 키완은 공원에서 필립을 보고, 공원에 괴물이 산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괴물이, 필립이일 수도 있는 거잖아."
"너를 먹이로 점찍은 걸까?"

그래, 필립은 괴물이다. 비정하고도 잔혹한.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아이 하나쯤은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이게 괴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어른들은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한다. 늘 그래왔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계산된 미래만을 선호하지 않았던가. 넓은 집, 비싼 차, 높은 성적. 어른들이 아이에게 내거는 좋은 친구의 조건에 아이들의 감정 따위는 철저히 배제된다. 필립의 모습은 어른의 모습이다. 생산성을 앞세워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태도에 따른 사고방식.


1.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2. 순재가 죽음으로써 키완은 필립을 만들어냈다.
3. 키완이 인공지능을 만들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려면 순재가 죽어야 마땅하다.

어디 한 번 반박해 보시라. 마치 우리는 아닌 척, 아이들을 위하는 척 하지만 치밀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손익계산을 한 결과를 더 귀이 여기지 않는가. 한 번이라도 순재라는 소중한 친구를 잃을 키완의 슬픔을, 꿈을 펼치지 못하고 죽을 순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져본적은 있을까?


순재는 키완이 미래에 어떤 사람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키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제일 중요할 따름이다.

"순재야, 왜 키완이랑 놀지 않는 거야?"
순재는 목을 움츠리며 조그맣게 말했다.
"키완은....... 욕심쟁이야."
나는 그런 종류의 말이 순재 나이에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추리가 맞은 듯했다.
순재는 키완의 투정을 들어 주는 일에 지쳐 있었다.
웃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대게 중요한 문제 앞에서 아이들은 망설이지 않는다. 솔직하고 담백하며 적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도는 알고 행동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백 투 더 베이직'이라고.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욕심이 낀 렌즈를 닦아내고 아이의 시선으로 돌아가라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우리는 아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이것마저 누군가는 '아이들이 미래의 새싹이라서'라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 그래서가 아니다. 절대 아이들이 미래의 새싹이라서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난 성무선악설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본성에는 무엇도 없다. '무'에서 주변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자신만의 선악비율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인생을 덜 살아온 아이는 아직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중일 것이다.

어른에게는 그것을 더럽힐 권리가 없다.

우리가 아이의 마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어른으로서의 참된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살려야만 하는 친구란
감상평

책을 읽던 도중 충격을 받았다. 순재가 던진 순수한 한 마디 때문이었다.

사람을 만날 때 손익계산을 하며 만나야 한다면 그건 진정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그냥 비즈니스 관계일 뿐. 물론 모든 이해관계가 단순히 좋기만 할 수는 없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우리는 기브앤테이크가 확실한 선을 긋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즐거운 사람이 있다. 어릴 적 친구들은 보상을 바라고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만나서 이득이 없더라도 즐거울 수 있다. 이 관계 또한 유지하는 것이 쉬운 건 아니지만. 그냥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지, 그 친구의 이야기가 내게 얼마나 흥미로운지 따위가 관계 유지의 이유가 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릴 적 추억이 유독 즐겁게 미화되는 것은 단순히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의지할 누군가가 있었기에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 뿐이다. 졸린 수업 시간 이후에도 쉬는시간만 되면 눈비비며 꼭 멀리 앉은 친구 옆으로 간다든지,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집에 가다보면 괜시리 빙빙 돌아간다든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계산서가 없이 쌓아올린 관계는 형용할 수 없는 믿음과 애정이 담긴다.

그러나 결국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물들어간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시선에서 순재와 키완을 내려다보며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과연 순재는 10살이 될 수 있을까? 키완은 친구를 지킬 수 있을까? 결말은 스포하지 않았으니, 책으로 확인하길 바란다.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문체나 표현법이 너무 당선용 작품 같아서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느꼈다. 여전히 그런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이야기 만큼은 대상을 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메세지를 어떻게 던져야 할지 정확하게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아동소설이지만, 충분히 어른이 읽을 가치가 있다.

아니, 오히려 어른이 읽어야만 한다.

어른이 망각하고 있던 어른의 의무를 다시금 새기게 해주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밌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구조와 시원시원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청소년 문학의 탈을 쓴 성인문학 같다는 느낌?

확실히 아동문학은 범위가 성인문학보다도 넓은 듯...

최근 읽은 책 너무 오랜만에 업로드 하는 거라서 어떻게 마무리해야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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