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피지배, 그 편리함의 최후

소설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 리뷰

by 담작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줄거리

아사미는 어느 날과 다름없이 남자친구인 도미타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화들짝 놀란다.

도미타가 아닌 낯선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기 때문.

그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은 친절하게도 순순히 스마트폰을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다행히 스마트폰을 되찾았지만, 그 날 이후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냥,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


자발적 피지배
숨은 의미 찾기

 최근 패션계의 흐름에서 가방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거운 봇짐을 지듯이 큰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가방은 이미 오래전부터 작아지려는 시도를 거듭해왔다. 아니, 이제는 거리에서 작은 가방조차 메지 않고 맨몸으로 다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건 더 이상 가방을 수납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패션계에서 가방은 수납용품의 의미가 아니다. 악세사리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가방은 그토록 작아지는 것이다.

이유를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스마트폰의 발전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번거로운 지도도 필요없고, 무거운 사진기도 필요없고, 귀찮게 MP3 같은 음악재생기계를 따로 들고다닐 필요도 없다.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결제까지 할 수 있으니 지갑조차 필요없다.

어지간한 물건은 스마트폰으로 대체 가능하다. 그러니 가방의 존재가 퇴색될 수밖에.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스마트폰이 없으면 우리는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마트폰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내 개인정보가 길바닥에 뿌려진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기에 단순히 나 뿐만이 아닌 내 주변인의 정보까지도.

최근 스마트폰들은 대부분 보안을 위해 생체정보를 통한 잠금장치가 탑재되어 있다. 더불어 스마트폰이 건강을 관리해준다는 명분으로 내 심장박동이나 운동량까지도 체크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조차도 께름칙하다.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단순한 숫자 나열을 입력하는 것을 넘어서 내 신체를 도려내 바치는 기분이 든다. 작게는 내 생체정보로 내가 모르는 쇼핑을 하는 것부터, 크게는 위험한 계약서에 지장을 찍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 생기는 것이다.

 나야 사이버 범죄에 당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편이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과한 경계심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장난처럼 "어차피 내 개인정보는 다 털렸는걸?"이라고 말한다. 개인정보가 남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위험하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정보를 손에 쥔 자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것.


소설에서는 GPS가 위험을 주기도, 구원이 되기도 한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GPS를 켜지 않는다. 어쨌든 위험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내가 방문한 위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에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실상, 나에 대한 정보를 스마트폰만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스마트폰은 기계다. 기계는 특정 인물을 위해 비밀을 지켜주지 않는다. 암호와 코드만 입력하면 누구든 내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과연 누가 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소설에서는 싸이코패스 범죄자로 서술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의 발명으로 인해 정보는 더 큰 힘을 갖게 되었다. 정보는 돈, 힘, 권력, 명예, 곧 모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스마트폰에 입력한다.

결국 스마트폰은 성수인 척 하는 독인 셈이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다는 명목으로 비밀까지도 모두 스마트폰에 보고해야만 한다. 더 우스운 것은 많은 사람이 그것에 지배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점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편리함의 대가
감상평

솔직히 반전은 예상했다.

안 읽어본 사람들을 위해 스포일러를 자제하고 말하자면, 일부러 반전을 찾으려고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읽다보면 '아~'하게 되는 지점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작가는 놀라운 반전을 원한 것 같지만. 독자가 소설에 대해 아무것도 믿지 못할 정도로 경계심을 갖게 만들어 놓고는 속이려고 하다니. 대담한 시도였다고 본다.


스마트폰 자체에 대한 공포보다는,
범인이 나의 '감정'까지도 컨트롤할 수 있겠다는 공포가 더 컸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생겼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게 올바른 정보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스스로 판단해야만 한다. 그게 정보의 무서운 점이자, 정보가 힘인 이유다.

내가 틀린 정보를 갖고서도 안심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힘을 거머쥔 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그들만 알고 있다면, 감정적으로 나를 안심시키고 뒤에서는 나 몰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는가? 우리는 늘 의심해야만 한다. 그게 우리가 자유라는 권리를 갖는데에 대한 책임이자 의무이다.

스마트폰의 편리함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 편리함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인지, 지배자를 위한 것인지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내가 어떤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지, 내가 어디에서 안심하는지를 누군가 알고있다면 더 이상 나는 안전하지 않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예측할 수 없는 혁명이자,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짐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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