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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Apr 17. 2020

악행에 대한 합리화가 없는 사회를 위해

소설 [밀실살인게임 2.0] 리뷰


밀실살인게임 2.0
줄거리

밀실살인게임을 즐기기 위해 모인 다섯 사람.

두광인, aXe, 쟌가 군, 반도젠 교수, 044APD.

화상채팅 너머 그들이 출제한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알아 맞춰라!


악행에 대한 합리화가 없는 사회를 위해
숨은 의미 찾기

  소설의 진상을 파헤치기 이전에 주의할 사항이 있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이전 편을 읽고 2편을 읽을 필요가 있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읽다보면 사건의 진상을 눈치챌 수 있다. 소설 주인공들의 말을 빌리자면,

"힌트를 제시하는 것은 곧 답을 제시하는 것과 같아."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읽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지금부터 읽으실 해석 및 논평에는 '밀실살인게임' 1,2편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읽는 재미를 뺏기고 싶지 않은 분이라면 책을 필히 읽고 오시길 바랍니다.*

  밀실살인사건게임 2.0에서는 이전 편에 비해 '밀실'의 범위가 보다 넓게 확장된다.

  살인게임이라는 끔찍한 비밀을 가진 동호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동요한다. 하지만 그 중에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신들도 동호회를 만들어 똑같은 취미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바로 이번 편의 주인공들이다.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가 얼마나 대담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편에서 나왔던 사람들이 갑자기 멀쩡히 살아서 함께 이야기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에 사람들은 의문을 느낀다. 알고 있던 내용은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평범(?)한 살인게임'을 이어나가는 게임 참가자들의 모습은 의문을 넘어 답답하기까지하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홀린듯이 책을 읽고있다. 속임수라는 걸 알면서도 끌릴 수 밖에 없는 묘한 매력이다. 그동안 '클래식'이라고 칭해지던 추리소설의 트릭들이 한순간 지루하고 진부한 것들로 전락해버린다. 그만큼 작가의 저력이 대단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개연성이 필요없다.

소설 속 살인 방법들이 실제로 가능한지 알아봐서도 안 되겠지만, 마네킹으로 실험을 할 필요도 없다. 이런 짓을 저지를만한 마땅한 동기도 없어도 된다. 이런 행동에 어떤 상징이나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들은 '이 트릭을 실험해보고자 사람을 죽였'으니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인물들은 더욱이 무섭게 느껴진다.

  어떠한 이유도 없이 '순수한 탐구심과 호기심'으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기발한지 겨루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다.

  소름끼치는 부분은 2편의 인물들이 이전 게임 참가자들을 똑같이 따라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말투나 행동, 분장만이 아니라 그들이 사용하는 트릭의 수법까지도 완벽하게 따라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뜻이다. 살인마에게 존경을 느끼는 인물이 완벽한 살인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라.

  세상에 쓸모없는 노력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싶다.


 1편에서 밀실의 존재에 대해 다뤘다면, 2편에서는 이 밀실이 전염성을 가지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작가가 인간의 선악문제를 따지고 드려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진 않았을 테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는 '밀실'에 대해서. 물론 표면적으로 '밀실'이란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공간'을 말하겠지만, 결국 깊게 들여다보면 인간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비밀은 온전히 개인만의 것일까?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자진해서 인간관계를 끊거나 맺지 않으며 살아갈 수는 있으나, 결국 우리는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맺어지고 끊어지는 인연이 아니더라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에게 유대를 느끼거나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 안에서는 '살인'이라는 끈이 많은 사람들을 유대하게 한다.

  1편의 두광인은 044APD를 두고말한다.

"나도 어느 새인가 그 녀석에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 우린 닮아 있었던 거야."

  추리소설과 탐정놀이를 즐기던 남매는 커서 살인마가 된다. 두광인은 오빠를 보며 추리와 살인에 대한 집착을 키우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 저지른 일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다. 더 많은 살인마를 양성한다.

  타인에 의해서 '밀실'에 보관될 '비밀'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참신한 듯 보이나, 사실 당연하다. 어린 아이가 누군가를 동경해서 그 사람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고 느끼는 것처럼. 쉽게 이야기하자면 '성무선악설'과 같은 것이다.


  '전염성'이라는 단어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 사람이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그 세 사람이 각각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누군가 밀실에 선행이라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이렇듯 좋은 예는 많고 많은데도 하필 작가가 범죄를 선택한 이유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아랫사람에게 불합리함이 이어지는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의 불합리함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유는, 실제로 조직원들이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고 계속 실행하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사람은 "나만 당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불합리함은 영원히 끊어낼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

  작가는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를 비웃는다.

"당신이 이런 상황에 놓이면 당신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놀랍게도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동조한다. 그들이 경찰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하고, 엄청난 트릭을 썼을 때는 감탄한다. 누구에게나 악행이 전염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우리는 무더기로 쏟아지는 자료 속에서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아야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 옳지 않은 것은 걸러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재밌는 건, 선행이든 악행이든 합리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이, 누구나 하는 일인데요, 뭐."

  선행을 한 사람이든,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든 이유를 물었을 때 비슷한 대답을 듣지 않는가?

  적어도 악행에 대한 합리화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늘 악행에 물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나 정도는 괜찮겠지, 라는 마음가짐은 환경오염에 대해 생각할 때만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 생활 어디에서든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정당한 처벌을 내리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악행을 걸러내야 한다.

  작가는 제목을 통해 이미 모든 걸 말하고 있다.

  제목은 밀실살인'사건'이 아닌 게임이다. 그 뒤에 '2'가 아닌 '2.0'을 붙였다. 게임의 버전이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이전 편과는 다른 밀실살인게임이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이자, 다른 인물들에게 이 게임이 전염될 것이라는 복선이었다.

  이 게임이 앞으로는 영원히 업데이트 되지 않기를 바란다.


범죄는 전염병이다
감상평

  솔직한 첫인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작가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은 그 기분, 오랜만이었다. 아마 책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에이, 이건 소설이니까'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 영화, 드라마. 모든 예술 작품들에는 우리네 현실이 녹아들어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도 많다. 세상에는 우리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 생각보다 많다. 출판된지 10년도 지난 책이지만 보아라.

  지금 이 시대에도 이 소설 같은 일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N번방의 범죄들을 생각한다.

  영상을 유포하고 즐긴 가해자의 대부분이 10대였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환경에 놓여있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변한다. 가해자에게도 사정이 있다는 헛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범죄는 어떤 이유로든 미화될 수 없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저지른 범죄에는 후천적 영향이 존재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N번방의 10대들이 노출된 세상은 추악하고 더러웠다.

  앞선 가해자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의 현장에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누구도 그들이 그곳에 드나드는지 몰랐고, 그렇게 쉽게 드나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곳이 있으리란 것도 외면해 왔을지 모를 일이다. 가해자들은 텔레그램이라는 '밀실' 속에서 '성범죄'란 비밀을 전염시켰다.

"나만 하는 게 아니잖아?"
"누구나 한 번 쯤 하잖아?"

  10대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 범죄에 전염된 건 수없이 많은 숫자 때문이었다.

  어른이라는 숫자, 전염된 사람들의 숫자.

  소설은 현실과 멀리 있지 않다.

  이 소설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모르겠다는 포기의 의미의 물음표인지, 혹은 또 다시 비밀스럽게 살인이 시작된다는 의미인지 몰라 두렵다. 그저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문이 굳건하게 닫혔다는 의미였으면 좋겠다는 나의 희망사항을 마지막 장에 묻힌 채 책을 덮었다.

  이 소설에서 나는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이유와, 나의 '사소한 악행'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당신에게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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