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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Apr 27. 2020

나는 차별을 예방하기로 했다

사회/인문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리뷰


선량한 차별주의자
줄거리

우리의 일상은 평등할까? 나는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일까?

이 책은 그런 질문을 시작으로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차별을 속속들이 찾아낸다.

그리고 그런 차별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나는 차별을 예방하기로 했다
숨은 의미 찾기

  프롤로그부터 충격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에는 사실 차별적인 요소가 숨어있다는 것.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나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 그 사람을 비하하는 단어이기도 하다는 것. 서문의 충격을 아직까지, 어쩌면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도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상대방은 나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는데, 내가 기분나쁘다고 느꼈던 적들.

  무의식 중에 배우고 사용하게 되는 차별적인 언어습관에 나 역시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주로 성별, 직종, 나이와 같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연하고 필연적으로 묶이게 되는 집단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에 살면서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않을 수는 없다. 모든 관계를 스스로 차단하는 사람이더라도, 현대사회에서 완벽하게 소외되기란 생각보다 힘들다. 온라인 상에서 맺는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인간이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어딘가에 소속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국가적으로, 그 다음으로는 가족적으로. 그렇기에 더더욱 차별을 인식하기란 어렵다. 그런 단위단위마다 차별적인 관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그런 일상 속의 불편한 지점들을 찾아내어 지적하는 편이다.

"너무 갔다."
"과민 반응 같아."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주로 듣는 말이다.

  어떤 대화 안에는 무수하게 많은 관계가 오간다. 상대방과 나는 단순히 사람vs사람일 수 없다. 그 사람을 정의내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보통 상대와 나를 나눌 수 있는 요소로는 나이, 성별이 있다. 혹은 학력일수도, 사는 지역일수도, 현재 직군일수도, 선택한 진로일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신체적 조건이나 부모의 유무, 성 정체성이나 성적 취향일수도 있다. 우리는 단순히 한 가지 요소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경험하고 선택한 삶이 전부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대화를 나눌 때는 현재 우리가 어떤 요소로 나누어져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간혹 대화를 하다가 위와 같은 말을 던지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그 일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맞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대화할 때 상대방과 나를 '해당 주제에 대한 경험 유무'로 가르면 간단하다. 대화 주체 간 한 쪽만 경험이 있을 경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상대를 쉽게 이해하지 못해도 문제가 없다. 자신이 똑같이 그 상황에 처할 때까지는 상대에게 공감할 필요가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대화 주제를 어떤 요소로 나눌 것인가'이다. 경험 유무로만 상대를 판가름하는 것은 위험할 뿐더러, 해당 대화는 영양가가 없어진다.

  A와 B가 성차별을 주제로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은 '성별'이라는 요소이다.

  성에 대해 서로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A와 B가 성적으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성차별을 느끼는 순간과 성차별을 인식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생각과 언동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그 지점에 대해 서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대화를 나눠야 한다. 더불어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합의점을 찾으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당 주제를 단순히 경험 유무로만 나눴을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A와 B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자신과 다른 성별의 집단에 소속되어 본 적이 없고, 당연히 그 집단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종종 이런 점이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남자는 군대, 여자는 임신'과 같은 말도 단순히 성별을 경험 유무로 따지고 들 때 발생하는 문제점이다.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아닌 이상 당연히 똑같은 경험은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 경험의 유무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만약 위와 같은 생각으로 타인과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 상대방에게 차별적인 언행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겪지 않았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겪을 일이 없으니까 생각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상대방은 불쾌한 감정을 소비해야 할 지도 모른다.


  어떤 주제를 바라볼 때, 그 주제가 나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 중 어떤 요소에 속하는지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 요소에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다수/소수), 내 입장은 어떠한지, 상대의 입장은 어떠하다고 하는지,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상대방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체험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경험보다 내 경험이 더 힘들다라는 것은 결국 갈등의 씨앗이 될 뿐이다. 서로의 경험 자체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해당 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이 가능해진다. 그 후 해당 경험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같이 살펴보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사회에 함께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작은 불편함까지도 굳이 걸고 넘어질 필요가 있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가 무지해서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언동을 했고 그래서 그 사람이 상처받았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왜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었는지 이유를 찾아 사과할 것이다.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차별을 예방하기로 했다.

  차별에 대해 저항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따지고, 생각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부분 실수를 하는 것은, 평소에 그런 자각이 없어서이다. 내가 차별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 스스로 의심하고 인지한다면 그런 실수가 일어날 일도, 누군가가 상처입을 일도 없다. 그렇기에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따질 필요가 있다. 그게 차별을 예방하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
감상평

  평소 차별에 대해 생각하며 산다고 착각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차별 당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예민하게 반응했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차별받을 위험이 없는 요소에 대해서는 일부러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상처입을 일이 없는 범위는 고민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오롯이 내가 상처입을까봐 불안한 지점만을 생각했다.

  이런 무의식적인 행위가 얼마나 차별적이었는지 느낀다.

  우리는 늘 이렇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늘 내가 속해있는 범주에서만 많이 알 뿐이다. 나의 우물 밖에는 더 큰 세계가 존재하고, 그 세계에는 더 많은 위험과 아픔이 도사리고 있다.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겠다는 것은 그래서 차별적인 행위다.

  내 일이 아닌 일에는 분노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건 명백한 차별이다. 나와 차별의 대상을 나누는 것, 그것도 차별인 것이다. 이 행위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내가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논리로 따지고 들면, 세상에 차별이 아닌 것이 없어."

  그런데 아마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배워와서 알고 있는 세상이 틀렸을 수도 있다.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고, 차별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세상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작은 움직임이라도 실천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맞다고 생각한 것들이 틀렸던 적은 너무나 많았다. 이 세상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움직이는 사람들은 아주 적었다.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에 조금씩 동참하면서 너도나도 세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전적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사회를 조금씩 바꿔오지 않았던가. 새로운 역사를 쓰지 않았는가.

시작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오랜만에 구매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내 생각을 조잘거리고 싶다. 내가 아는 것이 늘어날 때마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줄 책이다.



https://blog.naver.com/shn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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