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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Apr 11. 2020

당신의 밀실에는 어떤 비밀이 있나요

소설책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리뷰

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줄거리
"화상채팅을 켜는 순간, 우리는 살인범으로 변한다."

두광인, aXe, 반도젠 교수, 쟌가 군, 044APD.

다섯 사람은 인터넷 상에서 만난 추리게임 매니아다.

서로에 대해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추리게임을 위해 모였을 뿐이다.

일반 추리게임과 다른 점은, 그들이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그에 대한 수수께끼를 푼다는 것.

스크린 너머의 진실은 무엇인가.


당신의 밀실에는 어떤 비밀이 있나요
숨은 의미찾기

  책의 제목은 왜 하필 '밀실'살인게임일까.

  물론 살인사건의 트릭을 두고 '밀실살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 있어서는 '인간의 내면=밀실'이라는 해석이 더 타당해 보인다.


  보통 추리소설은 보편적인 흐름을 가진, 작가와 독자 간 밀당 게임이다.

1. 범인이 누군지 모른 채, 인물들이 단서를 찾아서 맞춰가는 형식
2. 범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동기를 밝혀나가는 형식

  가장 일반적인 흐름은 두 가지다. 결국 추리소설은 '누구'가 아니라면 '왜'에 초점을 맞춘다. '어떻게'에 대한 부분도 추리소설의 재미를 가중시키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어떻게'를 통해 '누가', '왜' 죽였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어떻게'는 '누구'와 '왜'를 알아내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한 셈이다.

  그러나 우타노 쇼고는 온전히 살인을 '어떻게' 저질렀는지에 집중하기 위해 소설을 써내려간다.

  과감하고 대담한, 기발하다면 기발하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방법은 추리소설의 재미를 100%로 끌어낸다. '얼마나 기발하게 살인을 저질렀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만 일어나는 살인이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설정할 필요도 없고, 살인의 동기를 알아낼 필요도 없다.

  그렇게 탄생한 다섯 명의 살인범은 거부감 없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오해하지 마라, 독자가 살인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말이 아니니까. 사실 '오로지 재미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을 만드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런 인물을 통해 타당하고 설득력 있게 소설을 전개하는 일이다. 실제로 독자는 그들을 누구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서, 그들의 행동과 사상을 '이 사람이라면 그렇겠군'하고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이미 작가는 독자를 이기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두고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의 범주로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들은 오로지 순수한 추리게임의 재미를 누리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남보다 더 대담하고 기발하고 어려운 방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록 자신을 과시한다. 그들은 싸이코패스처럼 사람을 죽일 때 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 방법을 알아내지 못할 수록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죽이고 싶은 인간이 있어서 죽인 게 아니라, 써보고 싶은 트릭이 있어서 죽였지."

  책의 뒷표지에서 그들의 살인의도는 이미 드러나 있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과 탐구심 정도로 포장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어떠한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결과를 낸다면, 글쎄? 이 인물들을 옹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러나 독자는 자석처럼 이들에게 이끌린다.

  소설은 두광인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럼에도 마치 3인칭 시점처럼 보이는 이유는, 두광인 스스로가 다른 인물들을 화면 너머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들을 더 오싹하게 만드는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이 죽이는 사람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없듯이, 이 추리게임을 하고 있는 서로에 대해서도 어떠한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을 바라보는 독자의 심리는 점점 변화한다. 처음에는 그저 소설을 읽기 위해 상황을 받아들이지만, 점차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들에게 매료되는 것이다.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으면 자신도 답답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너무 쉬운 문제에는 맥이 풀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독자는 이들과 같은 사람으로 점차 물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누구나 인간이라면 비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보를 일직선으로 나열한다면,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지점과 그 누구에게도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지점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서, 자신의 개방성 정도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겠으나, 누구나 비밀 하나쯤은 가진다. 비밀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쩌면 깊은 내면 속에 자신도 모르는 비밀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이 비밀은 사람으로 하여금 양면성을 갖게 만든다.

  우리는 비밀을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가령, 내가 혼자있고 싶은 사람이라서 더더욱 사교적인 척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의외에 정보에는 무척 놀라면서, 자신도 그와 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망각하곤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양면성이 '인간성'에 반하는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다섯 인물과 비슷하다는 말을 바꿔 말하면, 이 인물들도 우리와 비슷하다는 말이다. 그들도 화상채팅을 벗어나면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길에서 스쳐지나가는, 그저 그런 아무나. 하지만 그들은 노트북을 켜는 순간부터 추리게임을 위해 살인을 즐기는 미친 사람들로 돌변한다.



  앞서 말한 '비밀'은 자신만의 '밀실'에 보관된다.

  작가는 밀실에 지닌 비밀이 '살인'이라는 다섯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당신의 밀실에 숨어있는 비밀은 무엇인지 넌지시 묻고 있다. 그리고 이 '밀실'에서 일어나는 살인으로 게임을 하는 다섯 인물을 두고, '밀실살인게임'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그럼 묻겠다. 당신의 밀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비밀이 비밀일 수 있을 때
감상문

  '밀실살인게임'이란 책이 출판 된지는 한참됐다.

  그럼에도 내 뇌리에는 강렬하게 박혀있는 소설이다. 한창 추리소설에 꽂혀 있던 학생 시절에 읽었던 수많은 추리소설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책을 꼽아보라고 하면 이 책은 무조건 꼽힌다. 그만큼 흥미로운 소재로 몰입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소설이다. 아직까지도 인기가 있는 걸 보면 그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짐작할 수 있다.

  밀실살인게임이라는 제목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N번방의 가해자들은 텔레그램 밖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밀실에 숨겨놓았던 비밀은 너무나 추악한 것이었다. 비밀을 갖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그 비밀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다른 이유는 필요없다. 단순하게 그것이 타인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라면 그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닌, 범죄이기 때문이다.

  비밀이 비밀일 수 있을 때란, 비밀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 한정된다.

  부디 사람들이 자신의 밀실에 있는 것이 비밀인지, 범죄인지를 스스로 꼭, 판단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여기는 약간 스포 있음*

(심하진 않으나, 아예 모르고 싶은 분들은 책 먼저 읽고 오시길 추천)

  제목에 붙은 '왕수비차잡기'라는 말은 일본의 장기에서 '체크메이트'와 비슷한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게임 동료들을 온전한 체크메이트 상태로 만들면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 상황을 두고 극한의 스릴을 느끼고자 한다. 그래서 왕수비차잡기게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이 우리와 같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과 함께 추리게임을 했던 사람들을 '동료'라 칭한다. 길을 다니는 아무나는 살해해도 아무렇지 않으면서, 이 동료가 죽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더 나아가 동료를 지키는 방법을 모색한다.   원래대로라면 이들은 '죽이기 위한 방법'을 찾을테지만, '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는 역설적인 장면을 통해 그들이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증명한다. 그들에게 인간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우리도 그들과 같은 '극한의 밀실'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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