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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도 지식도 없고요.

by 재스비아

아주 최근은 아니지만 어쨌든 비교적 최근까지 쓰는 걸 확인한 인터넷 용어이자 비속어로 '꼰대', '틀딱'같은 비속어와 비슷하게 쓰이는 말로 '딸피'라고 말하는 걸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나도 젊지 않기 때문에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에 접근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또 가장 최신으로 쓰이는 용어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ㅜ)

사실 '딸피'라는 말은 생각보다 더 예전부터 쓰였는데, 기존 사용되던 뜻은 게임 내에서 캐릭터의 체력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피(체력)가 딸막딸막 하다, 아슬아슬하다, 피(체력)가 달린다(딸린다)로 다른 유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자주 썼던 말이다.

(여기서 나는 옛날부터 저 말을 사용하던 1인으로서 예전에 사용하던 뜻대로 이 단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타인을 비방하려는 의도인 비속어로 쓴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나는 나이또래에 비해 경험과 지식이 '딸피' 그 자체인 것 같다. 물론 그것만 부족한 것은 아니나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것은 글쓰기에 최상의 조건이라는 것을 요즘 부쩍 더 느끼고 있기 때문에, 글쓰기와 관련하여 특별히 더 부족한 부분을 웅앵웅하고자 한다.

애기 때부터 타고난 내향형 인간으로 엄마 뒤에 달라붙어 엄마의 옷깃만 잡고 눈만 빼꼼 꺼내 세상과 소통(누군가 선물을 줘도 엄마 손으로 대신 받았음;) 한 나로서는 내 기준 일탈이나 생소한 경험을 하기 위해 도전하는 것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매일같이 죽치고 앉아 모르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는 명랑함을 안 누려본 건 또 아니다.)

성격을 포함해 환경적인 요소까지 들먹이며, 게으름을 피운 것에 핑계를 대는 사람으로 큰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경험도 지식도 무척 딸피이다.

딸피임을 인지했음에도 성장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기가 어려운데, 어릴 때 공부 안 하고, 책 안 읽던 내가 커서 갑자기 천재가 되어 공부도 잘하고 책도 열심히 읽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와, 여전히 여행 다니고 룰루리롤롤 할 경제적 여유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가 가장 큰 원인(핑계)인 것 같다.

TV에선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고집스럽게도 나는 그걸 보면서 그저 저분들이 대단하다고만 느꼈지 동기를 얻진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왕자가 좋아하던 상자보다 더 비좁고 숨구멍이 희미한 네모 상자 안에 갇힌 양도 아닌 시궁쥐새끼. 그게 내 모습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성장이 거의 끝나기 직전에는 상자 속을 벗어나긴 해서 상자에 더럽게 묻힌 코딱쥐 신세는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상자 속을 벗어나서도 여전히 상자의 지배력을 정신적으로 완전히 이겨내진 못했지만, 이제는 동네하천 주위를 돌아다니며 풀벌레 울음소리를 따라 하는 들쥐 정도의 크기로는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더 이상 핑계 대는 건 싫으니까 강제로 책도 읽게 하고, 글쓰기도 시키고, 공모 도전도 시키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들부터 나에게 시켜보고 있다.

경험과 지식의 딸피인 채로 살고 싶진 않으나, 경험과 지식이 글쓰기의 전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찍찍이에게도 순정이 있다.

지금은 풀벌레 울음소리라도 따라 불러본다.
삐르르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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