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냉정한 여자로 살고 있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타인과 교류할 수 없다.
그녀는 남편이 죽으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가해인지
모르고 있었다. 결혼 생활 내내 너무 당했다고 여겼기에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관점은 달랐다.
그녀의 남편은 불행한 가정에서 성장했기에 부인에게
'따뜻한 정'을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 특히 부모님과
애틋한 정을 주고받으며 성장하지 못했기에 '정'을 주고받는
애착 관계가 어떤 것인지 경험하지 못했다.
아마 그녀의 남편이 편지 한 장 써 놓고 집을 나간 이유도
부인에게서 그토록 받고 싶었던 '따스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몸담고 있는 지리산 명상센터 '고운원'은 원래 옛 서당터 자리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쓰여있던 글귀가 있었다.
"입으로 가르치니 반항하고 몸으로 가르치니 따르네"
가정이란 부모가 자녀에게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인간관계 혹인 부부관계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몸으로 가르치는 산 교육의 장이다.
입으로 아무리 화목한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일러봐야
부모가 늘 싸우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무의식 안에서
남녀를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인식한다.
부부간에 의견 다툼을 어떻게 조율하고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몸으로 배운 적이 없기에
어른이 되면 성장하면서 보고 들은 대로 반응한다.
학교에서 도덕 교과서로 배운 내용은 현실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냉정한 여자로 살고 있었다.
대부분 형제 많은 집의 셋째 딸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자 애교가 많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께 애교 있게 다가간 적도 없었다.
한 번도 사랑받고 싶은 딸의 마음을 써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무의식 안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정을 주고받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한마디로 '냉정한 여자'인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서 부모와의 애착은 자녀의 전 생애에 걸쳐
타인과 관계를 맺고, 관계를 이해하는 정신적 표상의 근간이 된다고 한다.
그 애착관계 즉 정서적 유대감은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유아기 때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청소년기 때는 학교생활에서 힘든 점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이 분은 성장과정에서 마음을 이해받으며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에 부모님에 대한 감정이 차갑고 냉정했다.
무의식 안에서 '부모'라는 존재가 타인과 동일한 거리감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학교에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엄마, 나 이거 학교에 가져가야 해요... 안 그러면 학교 안 갈 거야.'
하며 울고 불며 떼를 쓰기라도 할 텐데
부모님을 자신을 보호해주고 마음을 이해해 주는 존재라
믿지 않았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것이 '사랑'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눈치 보며 참는 것 밖에 없었다.
남편의 가정폭력 그리고 외도에도 두려움에 떨며 참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참기만 아내로 인해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울며 불며 고함치고 싸우기라도 했으면
서로에 대한 증오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 역시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불만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아내와
소통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화를 내며
오직 분노로만 표출할 뿐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가정에서 배우지 못했다.
"상순님, 남편이 화를 냈던 건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표현이었어요.
'여보, 그렇게 화내니까 무서워요. 왜 그래요?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하면서 부드럽게 대화를 유도해가며 달랬다면 남편은 달라지셨을 거예요."
"하지만 상순님은 '네가 날 무섭게 했지. 그러니까 난 절대로
당신을 이해해주지 않을 거야' 하면서 남편이 왜 화를 내는지
괴로움이 무엇인지 단 일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그 순간 오직 두려움이라는 본인 마음밖에 몰랐어요.
그리고 두려움에 갇혀서 자신을 피해자로만 인식하고
남편의 사정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마음 안에서 버렸어요."
"이런 면이 상순님의 가해자의 모습이자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오직 본인 마음밖에 없는 것... 상대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상순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가난한 것을 알면서도 돈 달라고 할 때 아이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하지만 상순님의 어머니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았어요.
오직 '돈 없는데 왜 돈 달라고 해..'하면서 본인의 힘든 마음만 느꼈어요.
돈을 주고 주지 않고를 떠나서 아이의 힘든 마음을 이해해줬어야 했어요."
"우리 상순이 엄마가 미안해... 돈 안 가져 가면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엄마가 못나서 우리 딸 힘들게 하네...
이렇게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해 줘야 했어요."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피해자'
상대방을 두렵게 하는 사람이 '가해자'라고 여긴다.
그러나 무의식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직 자기 마음뿐인 사람이 '가해자'이다.
나로 인해 상대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오직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혀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가해자'이다.
따라서 수많은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남편은 가정에서 그렇게 화를 내면
식구들이 얼마나 무섭고 힘들어할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화를 내는 그 순간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혀
상대의 힘든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화를 낼 때 그 이면에 속상한 마음을,
아내로부터 이해받고 싶어 투정 부리는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오직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빠져 남편에 대한 미움만 키웠다.
아이들을 보면 똑같이 혼을 내도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그 두려움은 미움으로부터 온다.
'사랑받고 싶은 상대로부터 미움받는 두려움'인 것이다.
선생님이 혼을 내면 잘잘못을 떠나 무의식은 자신이 미움받는다고 느낀다.
미움받을까 봐 두려움이 적은 아이는 조금 무서워하다가
'선생님 죄송해요... 담에 더 잘할게요.'하며 곧잘 웃으면서 뛰어논다.
하지만 미움받을까 봐 두려움이 큰 아이는 무섭다고 울며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고 선생님이 밉다며
다시는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떼를 쓰기도 한다.
이 아이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미움받은 나'만 있기에 선생님을 '가해자' 자신을 '피해자'로만 인식한다.
"상순님의 이해받지 못한 내면의 어린아이는 자기 자신도 공격해요.
내 마음 또한 절대 이해해주지 않고 버립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돈 없어. 그냥 학교에 가' 할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창피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준비 다 해오는데 나만 그냥 가니까.."
" 그때 친구들한테 그 마음을 표현하셨나요?
'얘들아.. 나 우리 엄마가 돈 안 줘서 준비물 못 챙겨 왔어. 나 너무 챙피해.'
이렇게 속 마음을 말해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그냥 참고 아닌 척, 괜찮은 척 했어요.'
"상순님은 육체가 상순임이 아닙니다.
제가 늘 강의에서 이야기하지요. 마음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슬플 때는 슬픈 상순이, 기쁠 때는 기쁜 상순이, 수치스러울 때는
수치스러운 상순이가 존재하는 거예요.
상순님이 자신의 마음을 참고 표현하지 않을 때마다
'버림받은 상순이'는 계속 생겨났어요. 어떤 마음이 올라오던지 나는
나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버렸어요.
"그러니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를 몰라요.
늘 나를 외면하고 사셨기에 이제는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나의 마음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