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권과 혐연권

권리의 무게

by 그설미

터질 줄 알았다. 익명의 싸움이다. 흡연자가 흡연할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금연 아파트 지정을 위해 동의서를 모으는 과정에 올라온 글이다. 하지만, 꾸준히 흡연자들의 주의를 요구하는 말들이 나왔었다. 우리 집도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나 인상을 찡그리길 여러 번이다. 옆 동에서는 위층 누군가의 집에서 투척한 꽁초 무더기가 어느 집 베란다 지붕을 뒤덮었다고 했다. 관리소 직원이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 제거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흡연권을 주장한 사람이 그 동에 사는 것 같다고 한다. 나도 어쩌면 그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젠 주차장, 아파트 정원, 집안 어디서든 맘 놓고 피우겠다는 선언 아닌 선언을 할 정도로 화가 난 모양이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이웃과의 갈등도 있지 않았나 싶다.


흡연자가 별다른 제재 없이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며 내세우는 흡연권은 사실, 기본권이나 혐연권에 비해 열등한 권리라고 본다. 흡연자 입장에서는 속상하겠으나 비흡연자를 포함하여 흡연자의 건강과도 관련 있어서다. 건강에 좋은 거라면 담배 냄새를 피해 다니거나 숨을 참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흡연자를 무조건 혐오만 해서도 안 되겠지만 말이다.


이사한 지 석 달이 넘었다. 우리 아파트 옆구리에는 큰 공원 두 개를 연결하는 오솔길이 있다.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며 나무와 꽃을 보는 재미로 반려견과 함께 자주 산책한다. 오솔길 중간쯤 맞은편 아파트 쪽문에서 나오는 길에 긴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다. 처음엔 의자에 잠시 앉기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꽁초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조금 과장하여 꽁초가 산을 이루었다. 거기다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비롯하여 담뱃갑까지 버려지고 있다.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다. 아이들이 등하굣길에 이런 모습을 본다고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얼굴을 들 수 없다. 종량제 봉투를 들고나가 쓸어 담고 싶은데 마음뿐이다. 오지랖이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먼저 내게 그런 용기가 없는 까닭이다. 통이 마련되어 있으니, 거기에 버리든가 아니면 불을 꺼서 집으로 가지고 들어가 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모습들이 흡연자를 혐오하는 시선으로 만드는 걸 텐데, 권리 주장과 함께 의무도 다했으면 좋겠다.


흡연자에게 무조건 금연하라고 하는 것도 그들 말대로 기본권 침해일 수 있을까. 일부 지자체에서는 금연에 성공 지원금을 내걸기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금연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일 거다. 남편과 사위, 그리고 제부도 한때는 흡연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칼로 무 자르듯 단번에 금연에 성공했다. 다들 독하다고 했다. 그중 가장 독하기로는 제부를 못 따라간다는 데 모두 동의한다. 금연을 선언하고 날마다 담배를 샀던 금액만큼 저금통장에 넣어 그 돈으로 딸 피아노를 사 준 일화는 지금도 회자한다.


건강을 이유로 금연했다가도 다시 피우는 사람 이야기를 여럿 들었다. 친구 남편은 금연해야만 태어날 손녀들을 볼 수 있다는 특단의 조건을 내세웠는데도 아기들이 돌을 한참 지난 지금도 흡연자로 남아있다. 그만큼 끊기가 힘들다는 담배, 이왕에 피우는 거 떳떳해지려면 공공에 피해를 주는 곳에서는 조심하면 좋겠다.


지난번에는 몇몇 분이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부터 입에 담배를 물고 나간다는 목격담이 여러 번 올라왔다. 흡연자의 권리 주장 아래 댓글에 댓글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올라왔다. 아무리 익명성이 보장된다지만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서 더 심해지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창을 닫았다.

심란하여 오후에 다시 카페에 들어가 보니 오전에 올라왔던 글들이 모두 삭제되었다. 어쨌든, 원만히 잘 해결되길 바라며 어서 금연 아파트로 지정되어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 부스도 정식으로 마련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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