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으로 기우는 몸과 마음, 말린 무차로 바로세워볼까
오늘 저녁은 무를 썰어 넣고 갈비탕을 끓였다. 발코니를 치우며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무를 찾아낸 덕분이다. 지난해 가을에 갈무리해 둔 건데 바람도 들지 않고, 무 본연의 맛을 잃지 않았다. 토막 낸 무를 보며 ‘무는 이래야지’라며 혼잣말까지 했다. 무를 볼 때마다 삼 년 전 무 생각이 나서다.
그해엔 배추 스물다섯 포기로 김장을 했다. 속이 꽉 차지 않은 것도 있어서 한 해 전보다 다섯 포기 정도 더 따오는 바람에 양이 늘었다. 양념은 해마다 하는 일인데도 할 때마다 처음 같다. 매번 무채를 썰며 시골에서 백여 포기 담글 때 양만 기억한다. 그러니 김칫소를 넣을 때마다 처음에는 조금씩 넣다가 중간쯤 되면 안심하고 듬뿍듬뿍 넣는다. 그해도 예년과 다를 바 없었다.
배추와 무, 파는 시골에서 챙겨 왔고 가까운 농수산 시장에 가서 생새우와 새우젓도 샀다. 잘 익은 대봉감도 두어 개를 갈아 양념에 넣었다. 시장에서 사 온 생새우 신선도가 좋지 않아서 새벽 배송으로 싱싱한 걸 다시 주문하기도 했다. 북어 머리를 삶은 물에 찹쌀풀까지 정성껏 쑤었다. 해마다 내년엔 안 담글 거라고 하면서도 심고 가꾼 친정엄마의 정성을 외면하지 못해 일 년 먹을 김치에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해에는 막 담근 김치를 남편 직장 동료에게도 몇 포기씩 보냈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동서를 비롯하여 음식 솜씨 좋은 동생과 배추 키운 엄마께도 한 통씩 보냈다. 김치통을 전하며, 김치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여름에 꺼내 먹으면 맛있을 거라는 부연까지 달아 보냈다. 정성 들여 담갔으니 당연히 맛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 집 김치는 담가서 바로 먹기보다는 몇 달을 숙성시킨 후에 꺼내야 맛있다. 여름엔 물에 담갔다 쌈 싸 먹으면 별미다. 친구들과 한창 산에 다닐 때는 물에 씻은 김치만 챙겨가도 별미로 환영받았다. 묵은지로는 김밥과 찌개, 찜에 부침개도 해 먹었으니, 김장김치는 최고의 반찬이면서 든든한 음식 재료였다.
그런데 그해 김치는 내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맛도 없는 데다가 이상한 냄새까지 났다. 물렀다면 소금이나 배추에 문제가 있겠다고 여길 텐데 그런 현상이 없으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김치통을 열면 공기 접촉을 피하려고 통에 넣은 비닐이 발효하며 생긴 가스로 팽창해 있어야 하는데, 비닐은 처음 넣을 때 그대로 김치와 한 몸이 되어 붙어있었다. 비닐을 벗겨내니 군내가 났다. 대체 무엇이 김치의 숙성을 방해한 것일까.
김장하던 날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다시 시계를 더 돌렸다. 친정엄마가, 직접 무씨를 사다 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올해 무는 물이 적어 맛이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러니 마을 아주머니가 우리 밭에 심은 무를 필요한 만큼만 얻어다 쓰라고 했다. 알았다고 대답은 했으나, 무가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 밭 무도 감당이 안 될 만큼 많은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무채를 썰어 고춧가루를 입혀놓으면 물이 흥건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었다. 원인은 무밖에 없었다. 김장김치에서 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때 알았다. 조선무, 왜무, 총각무, 열무만 있는 줄 알았지, 저장 무가 있다는 것도 무 품종이 4천여 가지에 이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맛없는 김장김치 이야기를 들은 친정엄마가 한마디 했다. “그거 봐라.”. 당신 말을 듣지 않은 결과를 가리키는 말인 ‘그거’, 그 결과물인 김장김치는 그야말로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양념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닭 갈비뼈의 살을 발라 먹듯이 삼 년에 걸쳐 야금야금 먹고 있다.
드디어 고기와 무가 어우러져 맛있는 갈비탕이 되었다. 사찰 음식의 대가이신 선재 스님은 ‘무는 모든 음식을 중화시켜 준다.’라고 했다. 오늘 갈비탕은 고기보다 무가 주인공이다. 무부터 꺼내 맛을 보니 들큰하다. 이렇게 무가 들어가 더 맛있는 음식이 있을 터, 이번 주 시골에 가면 땅에 묻어 놓은 무를 꺼내 와야겠다. 깍두기도 담그고 생채도 해 먹고 뭇국도 끓이고, 또 무말랭이를 만들어 덖어서 끓여 마시며 한쪽으로 기우는 마음도 중화시켜 봐야겠다.
2025.02.02 길마가지나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