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놓쳤을 때

긴 머리와 민머리 사이 그 어디쯤

by 그설미

어제 전화를 해야 했다. 오늘 약속을 다음 주로 미루자는 말을. 오전 볼일을 보고는 배가 고프니 점심부터 먹자며 연락을 미뤘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 준비부터 서두느라 통화를 뒤로 물렸다. 그러다가 늦은 밤을 맞았다. 결국, 연락할 때를 놓치고 말았다.


기상예보대로 새벽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휘어진 소나무 가지가 곧 부러질 것 같은데, 눈은 늦은 밤에나 그칠 예정이라고 한다. 중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마스크는 기본이고 장갑과 모자에 목도리를 턱까지 감싸 올렸다. 마지막엔 신발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장화도 꺼내 신었다. 우산까지 들고 거울에 비친 차림새를 보니 보이는 거라고는 눈[目]밖에 없다.

길은 온통 빙판으로 변했다. 다져진 눈 위를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걸었다. 하얀 깃털 같은 눈이 우산을 비롯하여 나무와 도로, 건물 지붕 위로 내려앉았다.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했는데도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평소 같으면 눈썹이 휘날리도록 걸었을 길인데 거북이처럼 기어서 도착했다. 다행히 큰 도로는 제설 작업을 마쳐 차가 금방 왔다. 빈자리도 많아 환승 장소까지 편안하게 갔다. 전광판을 보니 환승할 버스가 5분 후 도착에 혼잡도가 ‘여유’다. 그런데 타고 보니 안내문과 달리 서 있는 사람이 많다. 전 정류장에서 여러 명이 탔나 보다.

한 정거장이나 갔을까. 내 앞에 앉았던 사람이 슬그머니, 아니 엉거주춤 일어났다. 이번에 내리나 싶어 옆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버스가 정차해도 내리지 않고 내 옆에 계속 서 있다. ‘나 더러 앉으라는 거였나?’ 살짝 고개를 돌려봤지만, 그녀가 창밖을 보고 있으니 눈 맞춤이 어렵다.

빈자리 의자 등받이에 ‘노약자와 임산부를 위한 자리’라는 노란색 글자만 도드라져 보였다. 아무래도 그녀가 내게 자리를 양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노약자석’이라는 안내문이 등을 찌르는 밤송이 같았을까. 그렇게 꽁꽁 싸매도 내 나이를 속일 수 없었거나, 약자로 보였거나 둘 중 하나겠다. 나는 중년도 노년도 아닌 어정쩡한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나이이다. 그러니 노약자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보다 젊어 보이는 그녀에게는 자리를 양보해야 할 대상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내어준 빈자리에 앉을 때를 놓치니 머쓱하기 그지없다. 모든 일이 다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또 한 박자 늦은 것 같다.


그동안 자리 양보를 받은 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괜찮다며 다 사양하지도 않았다.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안고 있는 학생으로부터 양보받았던 때도 있다. 그때 자리에 앉아서 미안한 마음을 덜어냈던 건 묵직한 내 장바구니였다. 그리고 염색 후 자라 나온 흰머리였다.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선 학생의 눈높이에 내 하얀 정수리가 보였을 거다. 몸이 아프거나 힘들어서 노약자석에 앉기도 했다. 그러다 더러는 일어나기도 했고 정말 내가 아플 땐 그저 창밖을 보거나 다른 사람이 먼저 양보해 주기를 바란 적도 있다.


버스를 타면 앞자리가 아닌 중간이나 뒷자리를 선호한다. 혼잡해질 것을 생각해 내리기 편한 위치를 찾는 이유도 있지만,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자리 양보가 필요한 사람이 타면 일어나는 것이 불편한 이유도 있다. 또 정류장마다 타는 사람을 보고 양보해야 할 대상이 겉모습만으로 가늠이 안 되는 점도 있어서다.


버스나 전철에서 젊은 사람 앞에 서서 양보를 기다리는 분들을 가끔 본다. 대개는 어르신이 타자마자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지만, 가끔 피곤해서 졸거나 휴대전화기를 보느라 앞에 누가 있는지 모를 때도 있다. 그럴 때 헛기침으로 일어나 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어르신도 가끔 보인다. 종일 업무에 지쳐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가방을 떨어뜨려도 모를 만큼 꾸벅꾸벅 조는 젊은이 앞에서 그럴 땐 내가 다 민망하다. 반대로 백발의 어르신이 엄마 손을 잡은 꼬마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누군가 ‘노인’과 ‘어른’의 다른 점을 말했다던데, 그이 말대로 본다면 전자는 노인이고 후자는 어른이 맞겠다.


어색한 분위기를 잊으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손님 없는 정거장을 멈추지 않고 달리던 버스가 섰다. 몇 사람이 탔다. 빈자리가 보이도록 슬그머니 옆으로 비켜섰다. 한 사람이 그녀와 나, 둘 사이의 빈자리를 채웠다. 내 느낌이었을까. 그녀와 나 사이의 공기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마스크 안으로 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몇 정거장만 가면 되니 괜찮다고 말하지 못한 건 그녀가 내리는 줄 알아서였다. 나중에라도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가 앉지 않으면 내가 앉는 것이 배려였을지도 모르는데. 왠지 어제부터 자꾸만 ‘때’를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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