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 스승이 되는 시각, 모든 두려움엔 무늬가 있다
잠이 깼다. 꿈을 꾼 것 같다.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지 못한 조각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음식이라면 짬뽕 같고 비빔밥 같은 꿈은, 숙제처럼 두통만 남기고 잠을 데려갔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다. 두통과 새벽 두 시라니. 일 년 여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간호사의 귓속말에 눈을 떴다. 두 시에 영상 촬영이 있다는 말에 처음엔 낮인 줄 알았다. 다섯 명의 환자와 그들의 통증도 진통제로 잠이 든 시각이다. 살그머니 일어나 병동 복도를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새벽 두 시, 낮에는 온갖 사람의 사연을 싣고 붐볐을 네모의 공간에도 적막만이 가득하다.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멈추던 낮과 달리 8층에서 1층으로 수직 낙하하듯 내려갔다.
내 슬리퍼 끄는 소리와 이동식 링거 거치대의 바퀴 소리로 가득한 넓은 공간, 불쑥 두려움이 몰려온다. 사뿐사뿐 걸어서 응급실 앞을 지나는데 오늘은 환자가 적어 조용하다. 그날 간이침대에 누운 채 이동하며 들었던 다급하고 축축한 목소리들이 따라오는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응급실을 지나 영상실에 도착했다.
촬영 기사님이 이번엔 30분짜리라는 걸 강조한다. 중간에 정 힘들면 누르라며 작은 풍선 같은 걸 손에 쥐여준다. 귀마개까지 채우더니 움직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기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겁이 덜컥 난다. 또 다른 두려움이 스멀스멀 몰려와 온몸을 감싼다. 새벽 두 시라는 시각 때문일 수도 있겠다.
새벽 두 시는 남편이 출근하는 시각이다. 벌써 15년 가까이해 온 일이다. 그래서 늘 잠이 부족하다. 아들은 24시간 근무하고 이틀을 쉰다. 밤에 사건 사고가 없으면 눈 좀 붙일 텐데, 출동이 잦으면 밤잠은 고사하고 이튿날 아침 퇴근 시각도 없다. 그래서 밤잠을 잘 자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쓰인다. 동생도 이십 년 가까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 낮에 일정이 생겨 이동할 땐 늘 졸려한다. 가끔이지만, 동생이 운전하는 차에 타면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그럴 땐, 내가 운전을 계속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지금은 깨어있을 그들이, 먼 우주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병원에서의 나흘이 마치 한 달 같다. 구급차에 실려 와 응급실에서 다시 입원실로 그리고 작은 기계 속에 들어갔다 나오길 여러 번이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지만, 그도 알 수 없다. 원통형의 기계, 그 안에 누워있으니 이제 더는 작아질 수 없는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 인형이 된 것 같다.
도로 위 아스콘을 깨는 불도저 같은 소리로 시작한 기계음은 돌덩이를 부수는 소리로 돌변하더니 한참 이어진다. 기계 안에서의 30분은 너무 길다. 손에 쥔 풍선을 살짝 만져본다. 풍선을 누르는 대신 두려움을 잊기 위해 가끔 하던 대로 나무 이름부터 외기 시작한다. 다음은 꽃 이름으로 옮겨간다. 다시 산 이름으로 넘어가 이백여 개의 산을 돌아다녔는데도 검사는 계속되고 있다. 내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듯한 소리, 기계는 내 머릿속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도 읽어내는 것 같다.
바닥난 낱말놀이에 인내도 한계에 이르렀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으면 누르라는 탈출 가능한 도구에 생각이 모이기 시작한다. 누르고 싶을 때마다 심호흡하며 마음 다독이기를 얼마나 했을까.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러고도 시간이 한참 흐른 것 같은데 기계에서 꺼내줄 기미가 없다. 혹시, 촬영 기사님이 새벽이라 피곤하여 조는 게 아닐까.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불안해질 때,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잠시라도 그의 직업정신을 의심한 게 미안해진다.
검사를 마치고 다시 올라온 병실은 여전히 고요하다. 달아난 잠이 다시 올 리 없다. 살그머니 병실을 나섰다. 어둠에 잠긴 병동과 달리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은 불야성이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들과 길 건너 대기업 건물에도 불이 환하다. 저 안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밤을 잊고 일에 집중할까. 문득 고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라는 산문집 제목이 생각난다. 폭이 다른 여러 개의 ‘두려움’이라는 강을 건넜던 오늘 밤이 내겐 선생이었다. 집에서 만나는 불면과 느낌이 다른 건, 병원이라는 공간 때문일 거다.
시간마다 혈압과 체온을 재러 오던 간호사를 비롯하여 촬영실의 기사님, 응급실에서 동분서주하는 의료진들, 병원 맞은편 불 밝힌 건물 안의 사람들, 한창 밤을 지키고 있을 남편과 아들까지. 그들이 있어 나와 우리의 일상이 유지된다는 걸, 그래서 밤이 선생이라는 걸 깨달았던 새벽 두 시이기도 하다.
2023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