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내리고, 당신이 기다리는 봄은 언제
열흘 만에 친정을 다시 찾았다. 가자마자 작은 방 한구석에 쌓인 물건을 정리하고 관목처럼 자랐던 벌개미취와 코스모스를 비롯하여 설악초와 결명자 마른 가지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겨우, 겨우 밥 두 끼를 같이 먹고 돌아왔다.
눈이 내렸다. 너무 춥고 아파 겨울이라도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엄마가 기다리는 봄을 생각하며 지난해(2024년) 봄에 썼던 글을 찾아봤다. 그동안 엄마는 더 자주 ‘아이구, 죽겄다’를 말하고, 분신 같았던 땅과는 더 많이 멀어졌다.
시골집 공기가 열흘 전과 확연히 다르다. 매화는 가지마다 물이 올라 꽃 피울 준비가 되었다는 걸 온몸으로 알렸다. 뾰족뾰족 순을 내민 수선화는 금방이라도 하늘에 그림이라도 그릴 태세다. 텃밭에 마늘도 질세라 덮어놓은 짚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번 꽁꽁 얼었던 움파도 연둣빛으로 살아나고 쪽파도 작은 키를 꼿꼿하게 세워 올렸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날숨보다 들숨이 길어진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 겨울이다. 엄마는 불편한 몸에 매달린 통증으로 사계절 춥다는 소리를 온몸에 달고 산다. 그러니 엄마의 주변이 모두 냉동실이다. 어떤 건 꽝꽝 언 얼음처럼 변한 것도 있다. 집에 가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있다. 냉장고에서 오래되거나 상한 음식과 과일 등을 찾아 버리는 일이다. 아직은 먹을 만하다고 괜찮다고 하지만, 결국은 버려질 것들이다. 당신의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주지 않으니 버릴 것이 점점 늘어만 간다.
아깝지만 버려야 할 음식물을 들고 퇴비장으로 가니, 작년 가을에 창고에 넣어두었던 늙은 호박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지인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남긴 한 덩이, 뭔가를 해 먹을 거라고 했으나 마음일 뿐이었던 거다. 늙은 호박은 꽃 피고 열매 맺었던 그 자리로 돌아갔다. 지난해에도 저렇게 버린 호박이 썩으며 씨앗이 싹을 틔워 수십 개의 애호박을 내놓았다. 호박에서 호박으로 이어지니 올해도 저 호박에서 또 몇 개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살아남아 애호박을 주렁주렁 매달 거다.
퇴비장을 등지고 서니 이번엔 밭에 무성하게 자란 냉이가 눈에 들어온다. 바구니를 들고 밭으로 갔더니 어제 다녀갔다는 목욕 봉사자들의 호미 자국이 선명하다. 열흘에 한 번, 목욕 봉사 오는 날마다 냉이를 캐 간다더니 그분들 저녁 밥상에도 냉이 향이 가득했겠다. 화수분 같은 밭이다. 가을에는 배추로 숨을 못 쉬던 냉이들이 겨울이 되자 코딱지 나물과 봄까치를 업고 땅속으로 길게 뿌리를 뻗었다. 풀이 무성하면 잎을 위로 뻗고 틈새가 보이면 잎도 맘껏 뻗는다.
뒷집 아저씨가 냉이 캐는 나를 보더니 휘청휘청 다가오신다. 이곳저곳 아프다던 아저씨가 올해 들어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얼마 전에는 운동할 겸 자전거를 타고 농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어지러워 논두렁으로 자빠지고, 한번은 연못 옆으로 고꾸라졌다는 이야기를 남 얘기하듯 한다. 어지럼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경험했기에 호미질을 멈추고 이야기를 한참 들어드렸다.
여든이 넘은 노인들이 사는, 나란히 줄 선 세 집은 마을의 가장 윗말에 속한다. 구순을 앞둔 노인들이 지키는 집은 주인과 같이 느릿느릿 낡아간다. 맨 윗집 아저씨는 수십 년 전에 알코올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당뇨합병증으로 눈이 보이지 않아 두 분 다 아무것도 못 하신다. 그러니 농사를 놓은 지 오래되었다. 그 댁 마당 앞의 논에는 소나무 묘목이 뿌리를 내려 이전에 벼가 자랐다는 걸 땅도 잊었을 만큼 변했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 오는 요양보호사가 아니면 두 분의 간병을 위해 아들이 직장에 다니기도 힘들 것이다. 가운뎃집에 사는 친정엄마도 거동이 어려워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아랫집 아저씨도 작년부터 생활 보호사가 자주 들른다. 올해는 농사도 버거워 손을 놓을 거라는데 그렇게 되면 아저씨가 짓던 엄마의 몇 마지기 논도 그냥 묵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그냥저냥 가장 건강한 아랫집 아저씨가 가끔 엄마의 기척을 확인하러 온다. 맨 윗집 아저씨의 말벗이 되어주는 것도 아저씨다. 그런데 이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요통에 어지럽기까지 하다니 마음이 쓰인다.
올해부터는 냉이가 지천인 이 밭도 생산을 멈춘다. 지난해 심은 들깨 농사가 마지막이었다. 동네 아주머니 부부가 마늘과 배추도 심었던 밭이다. 하지만, 아저씨가 지난겨울, 폐암 투병 끝에 떠나면서 아주머니도 이쪽 밭일에서 손을 놓았다. 엄마한테 들러 이야기 벗이 되었던 아주머니가 자주 오지 않으면 엄마는 더 심심해지실 거다.
하지만, 엄마는 그보다 먼저 멀쩡한 밭이, 땅이 놀게 된다는 걸 못 견뎌한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 된 지금은 그저 풀이 무성하기 전에 갈아엎을 궁리가 최선이다. 통증으로 달고 다니는 “아이구, 죽겄다.”는 당신 몸만이 아니다. 저 땅도 생산을 멈추면 죽는 것이라는 말이 ‘아이구, 죽겄다.’에 들어 있다. 이 봄, 내가 보기엔 땅은 이미 ‘생산’을 시작했다. 밭에는 작년에 떨어진 들깨 씨가 싹을 틔웠고 명아주며 봄까치, 냉이도 한 자리씩 차지했으니 말이다. 농사만 알고 살아온 팔순 노인들이 말하는 잡초들이다. 뿌리지 않아도 알아서 나고 자라 생을 반복하는 잡초를 보며, 이제는 그분들이 풀 같기를 바란다. ‘아이구 죽겄다.’를 받아먹고 살랑살랑 흔들리는 저 풀들처럼 말이다.
(2024년 초봄에)